‹ 목록으로 천 년 잠든 그대를 부르다

5화

이튿날 아침, 학원 대강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신족 사자 방문 및 우수학생 격려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붉은 바탕에 금박으로 새겨진 글씨였다. 강당 문 앞에는 평소 보이지 않던 경비 인력들이 서 있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에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진짜 검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강당 뒤쪽 구석에 서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낡은 회색 로브의 후드를 살짝 눌러쓴 채였다. "오늘 신족 대표가 온다는데." 서은채가 내 옆에서 말했다. "게다가 족주 소천 님도 함께 오신대."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순간 몸이 굳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소천. 신족 내전이 끝난 뒤 새롭게 세워진 족주였다. 5500년 전, 내가 봉인당하던 그날의 결정을 내린 이들 중 하나였다. 그 얼굴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차가운 눈빛과 단호한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설마 오늘, 나를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나는 생각했다. 강당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먼저 들어온 것은 이강수, 나의 아버지였다. 35, 36세쯤의 외형을 유지한 그는, 국자형 얼굴에 또렷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신족 사자의 예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짙은 남색 도포에 금색 띠를 두른 차림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화려한 백색 도포를 입은 노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족주 소천이었다. 키가 크고, 백발을 뒤로 넘긴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보다는 오히려 위엄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강당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고개를 숙였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지는 정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숨을 죽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오늘 이 자리는." 원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청명 마법학원과 신족 사자단 사이의 우호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원장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신족 앞에서 긴장하는 것은 원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천이 천천히 강당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씩 지나갔다. 그의 시선이 잠깐 내 쪽을 지나쳤을 때,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후드를 눌러쓴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5500년 전의 내 얼굴을,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강수가 학생들 앞에서 짧게 인사말을 했다. "청명 마법학원의 우수한 학생들을 만나 기쁩니다."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안에 담긴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 그는 강당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사말이 끝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짧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몇은 소천을 향해서도 고개를 숙이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 행사가 끝나고, 다과회가 이어졌다. 강당 한쪽에 마련된 원형 테이블 위에는 은쟁반에 담긴 다과가 놓여 있었다. 신족 자제들과 대마도사 가문 자제들이 우선적으로 소천과 이강수 주변에 모였다. 그 중심에 이천호가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남색 예복을 입은 그는, 평소보다 더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족주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천호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천이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천화영춘결을 3단계까지 익혔다고 들었다." 소천이 말했다. "기대되는 인재로군." "감사합니다." 이천호가 자만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어깨가 눈에 띄게 펴져 있었다. 최설이 이천호 곁에서 눈치를 주며 낮게 속삭였다. "이 녀석아, 그렇게 나서면 어떡해." "예의를 좀 지켜." 최설이 작게 말했다. "이모, 왜 그래요." "이런 자리에서 눈에 들어야 나중에 도움이 되죠." 이천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최설은 붉은 의복 자락을 살짝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조카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어쩔 수 없다는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저 아이는 이제 시작이다.' 나는 생각했다. '권력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이.' 이천호의 눈빛에는 순수한 야망이 담겨 있었다. 아직 그 야망이 무엇을 대가로 요구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순진함이었다. 다과회가 끝날 무렵, 이강수가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는 나를 강당 뒤편 복도로 데려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낡은 창문 너머로 다과회장의 소음이 멀게 들려왔다. "서하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격식을 갖춰 대답했다. "세 번째 약초의 위치를 알아냈다." 이강수가 말했다. "화룡산이 아니라 북쪽 설산에 있다는 정보야. 도현이가 알아낸 거다." "형은 괜찮으신가요." 나는 물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거의 살해당할 뻔했지만, 살아 있다." 이강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신족 안에도 우리를 감시하는 눈이 늘어나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슴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천호는." 이강수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소천 곁에 붙기 시작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호가 소천의 눈에 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조심해라." 이강수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봉인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소천이 먼저 알게 될 거다." 그의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예."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가 자리를 떠난 뒤, 나는 복도에 혼자 남았다. 창문 너머로, 다과회장에서 이천호가 소천의 곁에 서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웃음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웃음이었다. 권력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젊은 시절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 순간, 등 뒤에서 낮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서." 돌아보니 서은채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반쯤 먹다 남긴 다과 접시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눈빛에는 의심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방금, 네가 그 대인과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봉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복도의 공기가 갑자기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서은채의 눈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 시선이,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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