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5500년 전, 6월.
신족 마을 외곽의 전각에서 한소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각은 마을에서 가장 낡은 건물이었다. 기와 몇 장이 깨져 있었고, 마루에는 오래된 물 얼룩이 지도처럼 퍼져 있었다.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게 편했다.
"오늘은 뭐 배웠어?" 한소이가 물었다.
"화염 계열 3식." 나는 대답했다. "그런데 잘 안 돼."
"보여줘봐." 그녀가 말했다.
나는 손끝에 마력을 모아 작은 불꽃을 만들었다. 불꽃은 몇 초 만에 흩어져버렸다.
"다시 해봐." 그녀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더 빨리 흩어졌다.
"음, 확실히 별로네." 한소이가 웃으며 말했다.
"...위로가 안 되는데." 내가 말했다.
"위로할 생각 없었는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손바닥을 펴게 하더니, 자기 손끝에서 만든 불꽃을 그 위에 살짝 얹었다.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이렇게 힘을 빼야 오래 유지돼." 그녀가 말했다.
그 대화가, 그 시절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신족 사회에서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아버지 이강수는 내가 화염 계열 수련에서 형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 때마다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그 침묵이 어떤 꾸짖음보다 무거웠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했지만, 신족의 규율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녁상 앞에서 어머니가 슬쩍 내 밥그릇에 반찬을 더 올려줄 때마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형 이도현은 이미 신족 내에서 다음 세대 지도자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가 마을 어귀를 지나갈 때마다 어른들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고, 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한소이의 집안 사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관심 없어."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감사원의 딸이면 감사원처럼 살아야 한다고만 하지."
"...그럼 넌 뭘 하고 싶은데." 내가 물었다.
"난 그냥."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누구의 딸도 아니고, 누구의 무엇도 아닌 채로."
"그게 가능해?" 내가 물었다.
"모르지."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상상하는 건 자유잖아."
그녀는 전각 마루에 누워 깨진 기와 틈으로 보이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별 보여? 나는 언젠가 저 별처럼 아무한테도 묶이지 않고 떠 있고 싶어."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누군가와 진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해 가을, 신족 사회 안에서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장로파와 개혁파 사이의 갈등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두 파벌의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정치적 다툼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 이강수는 장로파 쪽에 서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 우리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요즘 마을 분위기가 이상해." 한소이가 어느 날 말했다.
"그런가." 나는 대충 대답했다.
"진짜야. 우리 아버지도 요즘 밤늦게까지 회의만 해." 그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며칠 전에는 서류 뭉치를 들고 나가시더니 새벽에야 들어오셨어."
"별일 아니겠지." 내가 말했다.
"그럴까." 그녀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나는 그때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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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신족의 힘을 제대로 발현하는 법을 익혔다.
그날은 눈이 조금 내렸다. 전각 지붕에 쌓인 눈이 바람에 조금씩 흩날렸다. 나는 며칠째 같은 자세로 손끝에 마력을 모으는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드디어!" 한소이가 내 손끝에서 커진 불꽃을 보며 소리쳤다. "봤지, 내가 계속 응원해서 그런 거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 웃음을 보고 더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눈 쌓인 전각 마당에 퍼졌다.
"이제 4식도 배울 수 있겠다." 그녀가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직 멀었어." 내가 말했다.
"멀긴 뭐가 멀어, 방금 봤잖아." 그녀가 눈을 흘겼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내 가족에 대해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형은 나랑 달라." 나는 말했다. "형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런 게 어디 있어." 한소이가 말했다.
"진짜야. 아버지도 형만 보고, 어머니도 형 걱정은 안 해."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존재였어."
"넌 그냥 다른 방식으로 잘하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런 말, 아무도 해준 적 없는데." 나는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계속 해줄게."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 어깨에 자기 어깨를 살짝 부딪히며 웃었다.
"약속." 그녀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가락을 잡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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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와, 나는 강송의 서재에서 아홉 칸의 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서재는 좁았다. 책장 한쪽 벽면에는 오래된 지도들이 겹겹이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손으로 그린 지형도와 낡은 나침반이 놓여 있었다.
"두 번째 약초는 화룡산 절벽에 있어." 강송이 말했다. "수호 몬스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해."
"알겠어." 나는 대답했다.
"절벽 동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게 안전해. 서쪽은 낙석이 많아." 그가 지도 위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덧붙였다.
강송이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천호가 이번 학기 편입생으로 들어온 걸 알고 있나?" 그가 물었다.
"알아." 나는 짧게 대답했다.
"조심해. 그 아이는 아직 뭘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강송이 말했다.
"...알게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내가 물었다.
강송은 대답 대신 지도를 접었다.
나는 그의 말에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이천호가 다른 신족 자제들과 함께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웃음소리는 5500년 전 겨울, 전각 마당에 퍼졌던 웃음소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그해 겨울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의 끝에는, 아직 말하지 않은 어떤 밤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