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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강서연을 만난 것은 뜻밖의 장소였다. 세가 후원, 오래된 배나무 아래였다. 그곳은 원래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정원사조차 발걸음을 뜸하게 하는 구석. 배나무는 수십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무 밑동은 이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세가의 다른 곳들이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과 달리, 이곳만은 방치된 듯 잡풀이 무성했다. 강도윤은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왜 하필 이곳일까. 동생은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세가의 장녀로서 받아야 할 시선과 기대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자주색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파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머리카락도 함께 흩날렸고, 그 모습이 마치 그림 속 인물처럼 정적이었다. 강도윤이 다가가자 그녀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오빠." 강서연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꾸밈이 없었다. 세가 사람들 앞에서 짓는 예의 바른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오직 오빠 앞에서만 보이는, 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강도윤이 물었다. "오빠 기다렸어." "나를?" "응. 올 것 같았거든." 강도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강서연은 늘 그런 식이었다. 예감이라고도, 확신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어떤 것을 종종 말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은 대부분 맞았다. 작년 겨울, 그녀는 아무 근거 없이 셋째 숙부가 곧 자리에서 물러날 거라 말했다. 그리고 보름 뒤, 숙부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세가의 어른들은 그것을 우연이라 치부했지만, 강도윤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생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감각. 두 사람은 나란히 나무 아래 앉았다. 땅에 닿은 옷자락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오후의 해는 배나무 잎사귀 사이로 비스듬히 비쳐,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만 들렸다. 사각. 사각.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마치 누군가 숨을 고르듯. 강서연이 먼저 침묵을 깼다. "요즘 안색이 안 좋아." "그런가." 강도윤이 짧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그렇게 티가 났는지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했지만, 특별히 달라진 점을 찾지 못했었다. "밤에 잠을 못 자지." 강도윤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느껴져." 강서연이 담담히 말했다. "오빠한테서 뭔가 달라진 게 느껴져. 얼마 전부터." 강도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소매 안쪽, 붉은 선이 다시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말을 듣고 반응하듯.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손으로 감쌌다. "달라진 거 없어." 그가 짧게 대답했다. 강서연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의심이 아니라 걱정이 담겨 있었다. 파란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마치 표면 아래 숨겨진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오빠." "응." "나 오빠 못 믿는 거 아니야." "알아." "근데 숨기려고 하지 마. 적어도 나한테는." 그 말에는 힘이 있었다.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었다. 그러나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무게가 있었다. 강도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숨겨야 할 이유는 많았다. 세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서열 십 등의 자질을 가진 그가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것은 조롱거리가 되거나, 아니면 더 위험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연 앞에서는. 그는 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 "…알겠어." 그가 나직이 답했다. 강도윤은 소매를 슬쩍 걷었다. 붉은 선이 팔뚝 위에 그대로 드러났다. 빛을 받은 선은 미묘하게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피부 아래 흐르는 무언가가 배어 나오는 것처럼. 선은 팔뚝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손목 근처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강서연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목소리에 놀람이 그대로 묻어났다. "모르겠어." 강도윤이 나직이 말했다. "산에서, 무언가를 만졌어. 그 뒤로 이렇게 됐어." "산에서? 언제." "한 달 전쯤. 훈련하다가 길을 잃었어. 이상한 동굴이 있었고, 그 안에서…" 그는 말을 멈췄다. 그 안에서 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빛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형체 없는 무언가가 그의 팔을 스쳤던 순간을. 그것은 말로 옮기는 순간 거짓처럼 들릴 것 같았다. "뭘 만졌는데." 강서연이 재차 물었다. "정확히는 몰라. 만졌다기보다는, 닿았다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그 뒤로 이 선이 생겼어." "아팠어?" "아니. 그런데 다치면 낫는 게 이상하게 빨라." 며칠 전 훈련장에서 검에 손을 베였을 때를 그는 떠올렸다. 상처는 깊었다. 피가 제법 흘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상처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강서연은 손을 뻗어 그의 팔뚝 위 선을 살짝 짚었다. 그녀의 손끝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잠깐이었다. 그 순간, 강도윤의 몸속에서 울림이 일었다. 웅— 전보다 훨씬 크게, 뚜렷하게. 그것은 마치 몸 안쪽 깊은 곳에서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진동은 팔뚝에서 시작되어 어깨로, 그리고 가슴 안쪽까지 퍼졌다. 강도윤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강서연도 그것을 느낀 듯 손을 떼며 숨을 들이켰다. "방금 그거." "나도 느꼈어." 강도윤이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같은 것을 느꼈다는 사실이, 말보다 먼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강서연의 얼굴에는 이제 걱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놀람과, 그 놀람 아래 깔린 다른 감정. 확신에 가까운 무엇. "오빠." 강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진지했다. "나 확신해." "뭘." "오빠는 흑암귀도로 가지 않아." 강도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세가의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미래와 정반대였다. 영맥 서열 10등. 1년째 영해가 확장되지 않는 최악의 자질. 그 끝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흑암귀도. 세가에서 가장 낮은 자질을 가진 이들이 결국 향하게 되는 곳. 그곳으로 가는 순간, 세가의 이름을 이을 자격도, 후계의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진다. 강도윤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다. 받아들였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동생의 말이 그 받아들임을 흔들어놓았다. "근거가 뭐야."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모르겠어." 강서연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알아. 그런 알게 되는 순간이 있어." "이상한 소리다." "이상해도 사실이야." 강서연은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근거를 대라고 다그쳐도, 그녀는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오빠를 믿어.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강도윤은 그 눈빛 앞에서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근거 없는 확신 앞에서, 그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이 그의 가슴 어딘가를 붙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세가의 모든 사람이 그를 실패한 자질로 취급하는 이 순간에도, 동생만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서연아." "응?"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럼 뭐가 되는 건데." 강서연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몰라. 그냥 오빠는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 "모호하네." "응. 근데 확실해." 두 사람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번의 침묵은 앞서의 것과 달랐다. 무거운 질문이 두 사람 사이에 걸려 있었고, 그 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배나무 뒤편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마른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였다. 강도윤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순간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그는 소리가 난 방향을 응시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배나무 뒤편은 그저 우거진 그늘일 뿐이었다. 잡풀이 무성한 그 사이로, 사람의 형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강서연도 그쪽을 응시했다. "뭐지." "모르겠어." 강도윤이 소매를 서둘러 내리며 일어섰다. 붉은 선을 가리는 것이 먼저였다. 누구의 눈에 띄었을지 모를 상황에서, 그것만은 감춰야 했다. 숲 안쪽 그늘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바람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강도윤은 몇 걸음 나아가 배나무 뒤편을 살폈다. 낙엽이 쌓인 바닥에는 발자국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흔적은 숲 안쪽으로 이어지다가 곧 사라졌다. "누가 있었던 것 같아." 그가 낮게 말했다. 강서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에도 긴장이 서려 있었다. "우리 얘기, 들렸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강도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느낌.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그의 등줄기에 남았다. 배나무 잎이 다시 사각거렸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 속에 섞인 무언가가 있었다. 소리 없는 시선. 형체 없는 존재. 강도윤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확신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강서연이 그의 팔을 살짝 잡았다. "돌아가자." "응." 두 사람은 배나무 아래를 벗어났다. 그러나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강도윤은 뒤통수에 닿는 시선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지만, 그때마다 보이는 것은 흔들리는 나뭇잎뿐이었다. 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들은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오늘, 붉은 선을 보았다. 그리고 흑암귀도로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두 가지 사실이 어디로 흘러갈지, 강도윤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불확실함이,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그림자로 그를 덮어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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