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강씨세가의 뒷산은 오래전에 버려졌다.
사람들은 그곳을 흑요봉이라 불렀다.
검은 돌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었다.
십 년 전 산사태로 사람이 둘 죽은 뒤로는 아무도 오르지 않았다.
그날 이후 흑요봉은 지도에서도 지워졌다.
장로들은 그 산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가면 안 되는 곳'으로만 전해졌다.
강도윤은 그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훈련장을 쓸 수 없었다.
"서열 10등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관리인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잠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목소리에는 미안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당연한 일을 말하는 투였다.
영맥 서열은 강씨세가 아이들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밥을 먹는 순서도, 방을 배정받는 순서도, 스승을 고르는 순서도.
1등부터 10등까지, 열 명 중에서 강도윤은 가장 아래였다.
그리고 벌써 1년째, 그의 영해는 조금도 넓어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의 영해는 매달 조금씩 커졌다.
그의 것만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마치 벽에 부딪혀 더는 자라지 않는 나무 같았다.
훈련장 문 앞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안에서는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기합 소리도 섞여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등지고 돌아섰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산을 택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아무도 그를 지켜보지 않는 산.
손끝이 시렸다.
가을바람이 산 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옷깃을 여미고 계속 걸었다.
발밑에서 젖은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숲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산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한때는 이랬지 않았다.
강도훈이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형, 나도 그거 가르쳐줘."
그렇게 조르며 손을 잡아끌던 어린 동생이 있었다.
강현빈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웃던 시절도 있었다.
"도윤 형님은 뭐든 잘하실 거예요."
그런 말을 진심으로 믿던 눈이 있었다.
지금 그 둘은 그를 알아보지도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시선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마치 벽에 걸린 낡은 그림을 보듯이.
아무 감정도, 아무 관심도 없이.
생각을 지우려는 듯 그는 걸음을 빨리했다.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비틀거리다 겨우 균형을 잡았다.
숨이 조금 가빠졌다.
산길은 점점 가파라지고 있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끌어올렸다.
손바닥에 나무껍질의 거친 감촉이 남았다.
능선을 넘자 냄새가 달라졌다.
흙냄새.
젖은 이끼.
그리고 쇠 냄새 같은 무언가.
피 냄새는 아니었다.
피 냄새라면 그도 알았다.
훈련장에서 코피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코끝에 닿은 것은 분명 낯선 냄새였다.
비릿하지도, 역하지도 않은.
오히려 서늘한 쪽에 가까운 냄새였다.
마치 오래된 청동기를 코 앞에 가져다 댄 것 같았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그는 냄새가 짙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밑의 흙이 조금씩 무르게 변했다.
비가 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땅이 젖어 있었다.
절벽 아래, 흙이 크게 무너져 있었다.
최근에 산사태가 한 번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너진 흙더미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드러낸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 사이로 무언가 반짝였다.
금빛이었다.
그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다시 보아도 금빛이었다.
흙더미 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아니었다.
빛 자체가 흙 사이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발밑이 물러서 자칫하면 미끄러질 것 같았다.
한 걸음씩, 균형을 잡으며 내려갔다.
흙을 걷어내자 사람의 형체가 드러났다.
온몸이 금빛으로 뒤덮인 시신이었다.
피부인지, 갑옷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얼굴의 윤곽은 뚜렷했다.
눈은 감겨 있었다.
숨은 없었다.
하지만 부패한 냄새도 없었다.
마치 방금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도윤은 숨을 멈췄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었다.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귓속에서 쿵, 쿵, 울리는 것 같았다.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로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아이가 발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건 서열 10등이 손대서는 안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은 그 자리에 뿌리를 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몸이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뻗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까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귓가에서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다가가라고.
손을 뻗으라고.
손끝이 금빛 시신의 손에 닿았다.
웅—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뼈를 타고 올라오는 울림이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그것이 팔을 타고, 어깨를 지나, 머릿속까지 퍼져나갔다.
강도윤의 눈앞이 하얗게 지워졌다.
점.
선.
소용돌이.
문(門).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그의 머리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속도였다.
누군가의 손이 검을 쥐고 있었다.
손등에 흉터가 여러 개 나 있었다.
누군가의 눈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은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했다.
"대승, 비법."
말이라기보다는 각인이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지는 낙인 같았다.
불로 지진 것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동시에 서늘했다.
모순된 감각이 동시에 몸을 관통했다.
강도윤은 뒤로 넘어졌다.
등이 흙바닥에 부딪혔다.
숨이 턱 막혔다.
한참 동안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범한 하늘이었다.
그런데 몸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마치 작은 물결이 몸속 어딘가에서 일었다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가슴께가 뜨거웠다가, 다시 서늘해졌다가.
그는 숨을 몇 번이고 골랐다.
호흡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상체를 세우고,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아주 희미한 금빛 잔상이 남아 있었다.
숨을 들이쉬자 잔상이 사라졌다.
그는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펴 보았다.
평소와 다른 것은 없었다.
겉으로는.
다시 시신 쪽을 보았다.
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흙더미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 손을 뻗었던 자리조차 흙만 남아 있었다.
그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다시 봐도 같았다.
강도윤은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앞을 응시했다.
방금 있었던 일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속에 남은 감각은 분명했다.
그것은 절대 헛것이 남길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여럿이었다.
산길을 익숙하게 밟는 소리.
가볍고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였다.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비웃는 듯한, 낮고 거친 웃음.
강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다시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이곳에 있는 걸 들키면 안 됐다.
금지된 산이었다.
그리고 그는 방금, 이곳에서 뭔가를 겪었다.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을.
능선 위로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옷깃에 금실로 수놓은 문양이 햇빛에 반짝였다.
서열 상위권에게만 허락된 문양이었다.
강도훈이었다.
그의 뒤로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서열 6등과 서열 7등.
셋 다 강도윤보다 어렸지만, 셋 다 강도윤보다 위였다.
"여기서 뭐 하냐."
강도훈이 물었다.
목소리에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투가 섞여 있었다.
비웃음을 참는 듯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에 묻은 흙을 털며 천천히 일어섰다.
아직 다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금지된 산에 몰래 들어왔다는 걸 장로님들이 알면."
강도훈이 웃었다.
"재밌어지겠는데."
뒤에 선 두 사람도 웃었다.
낮고, 조롱기가 섞인 웃음이었다.
서열 6등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서열 10등이 훈련장도 못 쓰니까 여기까지 기어올라 왔나 봐요."
서열 7등이 맞장구쳤다.
"흑요봉에서 뭘 배우겠다는 거야? 여긴 짐승도 안 산다는데."
강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무언가가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온전히 붙잡기가 힘들었다.
강도훈이 몇 걸음 다가왔다.
발밑의 무너진 흙더미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산사태가 또 났나 보네."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었다.
강도윤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기를 바랐다.
강도훈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경멸도 아니고, 관심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시선이었다.
"어차피 여기 있어도 얻을 거 없어."
강도훈이 몸을 돌렸다.
"내려가자."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지나가며 강도윤을 스쳐볼 때, 한 명이 나지막이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능선 너머로 멀어졌다.
웃음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강도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다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온몸 깊은 곳에서 아주 낮은 울림이 다시 느껴졌다.
웅—
마치 무언가가 깨어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강도윤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울림은 심장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이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같지 않았다.
그는 흙더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텅 빈 자리였다.
그런데도 그의 몸속에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