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밤, 윤재는 또 그 꿈을 꾸었다.
처형대. 낮게 깔린 안개. 군중의 함성이 뒤섞인 소음. 그리고 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든 소하의 얼굴.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첫 번째 꿈에서는 소하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뭉개진 형체였을 뿐, 그것이 소하라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꿈에서는 그녀가 무언가 외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입술만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그런 종류의 침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그녀의 눈이 정확히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윤재는 잠에서 깼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같은 장면인데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어.'
그는 침대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예지몽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완전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하나의 결말을 향해 조금씩 더 자세한 정보를 흘려주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퍼즐을 한 조각씩 던져주는 것처럼.
'그럼 다음 꿈에서는 뭘 보게 되는 거지? 그녀가 보고 있던 게 뭔지 알게 되나?'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윤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방 안의 어둠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왜 지금 다시 선명해지는 거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저택에 낯선 마차가 도착했다. 문장이 새겨진 문짝, 검은 칠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값비싼 마차였다. 서한 자작가에서 보낸 사절이었다.
윤재는 응접실 밖에서 대기하다가 우연히 대화의 일부를 엿듣게 되었다. 견습 집사의 신분으로 응접실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문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목소리는 충분히 들려왔다.
"공작님, 혼약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나누고 싶습니다." 사절의 목소리였다. 예의를 갖췄지만 속에는 다른 계산이 깔린 말투였다.
"소하는 아직 어리네." 공작의 답은 단호했다. "당장 정할 일이 아니지."
"하지만 자작가에서는 미리 관계를 다져 두고 싶어 하십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서로 익숙해지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공작은 대답 없이 잠시 침묵했다. 문밖에서 듣던 윤재는 그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없어 손톱을 씹었다.
윤재는 그 대화를 들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게임 속 기억 중 하나가 다시 겹쳐졌다. 소하의 파멸이 시작되는 시점이, 어떤 혼약과 관련이 있었다는 흐릿한 조각이었다. 정확한 인물도, 정확한 시기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혼약'이라는 단어가 파국의 첫 페이지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혼약이 문제였나?'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소하의 운명은 이미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움직임은 결국 예지몽 속 처형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마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윤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그날 오후, 윤재는 소하의 방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평소와 다른 진지한 태도에 소하도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인형을 안고 있다가 슬며시 내려놓고 윤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심각해?" 그녀가 물었다.
"아가씨." 윤재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제가 아가씨께 여러 가지를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가르쳐? 뭘?"
"예절, 화술,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윤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아가씨가 앞으로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요."
소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여섯 살 아이에게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말이었으니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되물었다. "나 휘둘리는 거 없는데."
"지금은 몰라도 됩니다." 윤재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가씨도 알게 될 겁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소하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윤재를 쳐다보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여섯 살 아이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었다. 그녀는 곧 다시 인형을 집어 들고 딴짓을 시작했다.
***
그날 이후 윤재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견습 집사로서의 의무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소하 옆에 붙어 지내며, 자신이 기억하는 게임 속 지식과 전생의 학문적 소양을 총동원해 그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예절 교육은 겉치레였다. 진짜 목적은 소하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놓는 것이었다. 뒤틀린 벽을 허물고 다시 쌓아 올리는 작업이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 대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일. 그것이 윤재가 생각한 진짜 수업이었다.
"오늘은 이 시를 외워야 해요." 윤재가 책을 펼치며 말했다.
"싫어. 재미없어." 소하가 즉각 반발했다. 팔짱까지 낀 채로.
"외우면 사탕 드릴게요."
소하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였다. "거짓말하면 안 돼." 여섯 살 아이의 협상이란 이런 식으로 단순했다. 사탕 한 알에 시 한 편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결의가 서린 얼굴이었다.
"약속하죠." 윤재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소하는 잠시 그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한 척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시를 더듬더듬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발음이 뭉개지고 순서가 뒤엉켰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냈다.
윤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승부들이 쌓여, 언젠가 그 처형대의 장면을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사탕 한 알, 시 한 편, 그리고 오늘 하루의 대화.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커다란 운명의 방향을 틀 수 있다고, 그는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할지, 윤재는 아직 절반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서한 자작가의 사절이 다시 저택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공작이 아니라, 소하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전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