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견습 집사, 운명을 바꾸겠습니다

3화

황보소하의 전담 견습 집사가 된 지 반년이 지났다. 윤재는 이제 어엿한 견습 집사 명찰을 달고 소하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아침에는 소하가 눈을 뜨기 전부터 방 앞에 서 있었고, 밤에는 소하가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소하와 붙어 지내는 셈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소하는 소문 그대로였다. 사용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미 '작은 폭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차가 식었잖아." 소하가 컵을 밀어냈다. 방금 내온 차였다. "다시 가져와." "네, 아가씨." 윤재가 담담히 답하며 컵을 치웠다. 그날만 세 번째였다. 처음엔 너무 뜨겁다고, 두 번째는 너무 연하다고, 세 번째는 이제 식었다고 했다. 사실 컵에 손을 대보면 온도는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윤재는 아무 말 없이 새 차를 끓이러 갔다. 다른 하녀들은 이런 순간마다 몸을 떨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어린 시녀 하나가 소하의 화를 견디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 뒤로 시녀들 사이에는 소하의 방에 들어가기 전 서로 눈치를 보며 미루는 관습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소문이 부풀려질 만한 재료가 넘쳐나는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윤재는 다르게 보고 있었다. *** 소하가 차를 밀어내는 이유는 단순한 억지가 아니었다. 윤재는 우연히 그녀의 손을 보게 된 적이 있었다. 소매가 살짝 걷힌 순간, 손등에 남은 오래된 화상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작았지만 흉터의 결이 깊었다. 뜨거운 것에 대한 지나친 반응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이거 어떻게 생긴 상처예요?" 윤재가 한 번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었다. 소하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신경 쓰지 마." 짧고 단호한 답이었지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소매를 끌어내려 흉터를 가렸다. 그 동작이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더 눈에 걸렸다. 윤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저택의 오래된 기록을 몰래 뒤졌다. 서고 구석, 먼지 쌓인 장부들 사이에서 소하가 어릴 적 지냈던 별채의 인사 기록을 찾아냈다. 정식 서류에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하녀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때 그 유모 있잖아, 손이 좀 매웠지." 나이 든 하녀 하나가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다. "매웠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윤재가 되물었다. 하녀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소하의 어머니는 그녀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공작은 정무에 파묻혀 딸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어린 소하를 돌본 것은 유모와 하녀들뿐이었다. 그중 몇몇은 나이 많은 하녀들의 표현을 빌리면 '손이 거친' 사람들이었다. 윤재는 며칠에 걸쳐 조금씩 조각을 맞췄다. 저택의 오래된 요리사에게 슬쩍 물어보고, 정원사에게도 지나가는 말처럼 캐물었다. 다들 말을 아꼈지만, 그 침묵 자체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학대였구나.' 윤재는 그 순간 게임 속 파편적 기억 하나가 선명하게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소하가 어린 시절 겪은 방치와 학대, 그것이 성격을 뒤틀어 놓았고, 그 뒤틀린 성격이 결국 파멸로 이어졌다는 것. ***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어." 윤재는 그날 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혼자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절반만 사실이야.' 소하가 잔인하고 방자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건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아이가, 세상을 향해 먼저 이빨을 드러내는 법을 익힌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윤재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단순히 죽음을 막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쌓아 올린 성벽 전체를 다시 지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건 은혜를 갚는 수준의 일이 아니야.' 목숨을 건 일이었다. 소하의 성격을 바꾸려는 시도가 소하 본인의 반발을 살 수도 있었고, 저택 내 다른 세력들의 견제를 받을 수도 있었다. 게임 속에서 소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력이 누구였는지, 윤재는 아직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파편뿐이었다. 붉은 방, 깨진 유리, 소하의 마지막 표정. 그 표정이 어떤 감정이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원망이었을까, 후회였을까, 아니면 그저 무감했던 걸까. '알아내야 해. 그리고 막아야 해.' 윤재는 천장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소하 곁에 붙어서, 그녀가 조금씩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 다음 날, 소하는 여느 때처럼 윤재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 "넌 왜 이렇게 굼벵이야." 신발 끈을 매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죄송합니다." 윤재가 답했다. 하지만 이번엔 속으로 조금 웃었다. '이 정도로 짜증 내는 건 오히려 다행이야. 아무 감정도 없는 것보단.' 소하는 그런 윤재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투덜거렸다. "느려, 느려. 그렇게 손이 굼벵이 같으면 어떻게 시중을 들어." "명심하겠습니다." 윤재는 끈을 다시 매며 대답했다. 속도는 그대로였다. 소하는 팔짱을 끼고 창밖을 노려보다가, 이내 정원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비 한 마리가 창턱에 앉았다 날아간 게 이유였다. 정원은 오후 햇살로 가득했다. 소하는 나비를 쫓느라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모습만 보면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윤재는 몇 걸음 뒤에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걸었다. 그러다 소하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자갈길에 무릎이 긁혔다. 다른 하녀들이 놀라서 달려오기도 전에, 소하는 곧장 윤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파." 그녀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윤재는 서둘러 무릎을 살펴보았다. 대단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소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계속 윤재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다른 하녀가 소독약을 가져오는 동안에도, 소하의 손은 윤재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윤재가 상처를 소독하며 물었다. "아프다고 했잖아." 소하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평소의 날카로움이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일 뿐이었다. 그 순간 윤재는 확신했다. 이 아이는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하게. 그리고 그 절박함이야말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새삼 일러주고 있었다. 윤재는 소독을 마치고 붕대를 감으며, 문득 소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그친 소하의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의존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인지, 윤재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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