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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보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났다. 그동안 나는 매일 새벽 마당에 나갔다. 확률연산으로 동작을 미리 그려두고, 몸이 그 그림을 따라가도록 반복했다. 지치면 쉬고, 근력이 조금 붙으면 강도를 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사흘은 죽는 줄 알았다. 확률연산이 아무리 정확하게 그림을 그려줘도, 몸이 그 그림을 못 따라가면 그냥 넘어지는 거였다. '이게 리듬게임에서 판정은 다 보이는데 손이 안 따라가는 그 느낌이구나.' 열 번 그려주면 여덟 번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계속했다. 어차피 남은 목숨, 여기서 안 하면 언제 또 하겠나 싶었다. 박우현은 매일 아침 냉수 한 대접을 들고 와서 나를 지켜봤다. 처음엔 그냥 지켜보기만 하더니, 며칠 지나자 슬쩍 자세를 고쳐주기도 했다. "도련님, 무게중심이 너무 앞으로 갑니다." "어, 그런가?" "예. 그리고... 그 넘어지는 방향이 매번 똑같으신 걸 보니, 저건 확률이 아니라 도련님 다리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건 좀 아프게 정확한 지적이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박우현의 얼굴에 걱정 대신 다른 게 떠올랐다. "도련님, 손끝이 예전과 다릅니다." 그가 어느 날 그렇게 말했다. 나도 느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건, 확률연산을 실전에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는 뜻이었다. 확률연산은 계산만 해줄 뿐, 그 계산대로 움직일 체력이 없으면 그냥 종이 위의 필승 전략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보름 동안, 필승 전략을 실행할 다리를 만든 거였다. 시험날, 나는 가문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은 넓은 마당에 원형 돌바닥을 깐 구조였는데, 관람석에 앉은 어른들의 표정이 벌써부터 시큰둥했다. "저 아이도 나오는 거야?" 누군가 소곤거렸다. "작년에도 3초 만에 나뒹굴었잖아." "올해는 5초는 버티겠지, 뭐." "그건 너무 기대치가 높은 거 아니야?" '다들 나에 대한 평가가 확고하네.' 심지어 3초에서 5초로 올려준 사람조차 비웃는 투였다. 그 정도로 내 지난 3년치 평판은 바닥을 파고 있었다. 임재현이 팔짱을 끼고 앞줄에 서 있었다. 임서윤도 그 옆에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재밌는 구경거리를 발견한 듯했다. 가끔 옆의 시녀에게 뭔가 귓속말을 하고, 시녀가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대충 내용은 짐작이 갔다. "장자님, 몸도 안 좋으신데 굳이 나오실 필요가..." 시험을 주관하는 장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장로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더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였을 테니까. 매년 열리는 시험에서 내가 이겨본 적이 없으니, 다들 이번에도 몇 초 만에 끝날 거라 생각했을 거다. 시험 방식은 간단했다. 상대와 겨루어 세 번 이상 유효타를 맞으면 패. 내 상대는 임재현이었다. 하필. 명단이 붙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 서니 새삼 실감이 났다. 가문 내에서 나이대가 맞는 몇 안 되는 상대 중, 하필 가장 자신만만하고 가장 나를 무시하는 녀석이 걸린 거다. '이것도 확률이라면 몇 퍼센트였을까.' "이거 재밌게 됐네." 임재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가 좀 봐줄까?" "봐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정중하게 답했다.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거 봐주면 오히려 손해인데.' 봐준다는 건 힘을 아낀다는 뜻이고, 힘을 아낀다는 건 동작이 더 예측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확률연산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력으로 와주는 게 고마운 일이었다. 장로가 시작을 알렸다. 임재현이 먼저 뛰어들었다. 오른쪽 어깨를 살짝 내리고, 왼발을 축으로 회전 자세를 잡았다. [확률연산 발동] [예측: 우측 상단 대각선 공격, 확률 94%] 94퍼센트. 웬만한 카드게임에서는 이 정도면 확정 승리로 걸어도 될 확률이었다. 고스톱에서 패 다 보고 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몸을 살짝 왼쪽으로 틀었다. 임재현의 주먹이 내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다. "뭐야!" 임재현이 눈을 크게 떴다. 관람석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운이 좋았네." 임재현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발차기. [확률연산 발동] [예측: 좌측 하단 로우킥, 확률 88%] 나는 뒤로 반보 물러났다. 발끝이 허공을 갈랐다. "이... 이게 왜..." 임재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 연속으로 완전히 헛수였으니 당연했다. 관람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저거 봤어? 예측한 것처럼 피하네." "우연 아니야?" "우연이 두 번이나 겹치나?" "세 번째도 우연이면 인정할게." 임서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손가락이 옷자락을 슬쩍 움켜쥐는 게 보였다. 임재현이 이를 악물었다. 연달아 세 번, 다섯 번, 공격을 퍼부었다. 주먹, 발차기, 손날, 다시 주먹. 동작이 점점 거칠어지고, 그만큼 빈틈도 커졌다. 나는 확률연산이 그려주는 그림을 그대로 따라갔다. 피하고, 흘리고, 다시 피했다.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이거 뭔가 도박판에서 콜만 하는데 계속 이기는 느낌이네.' '딜러가 패 다 보여주고 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지나.' 관람석의 웅성거림은 이제 웅성거림이 아니라 거의 함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빼고 지켜봤다. 스무 번쯤 공격이 오갔을 때, 임재현의 숨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반면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지만 아직 서 있었다. 정확히는, 서 있는 게 아니라 서 있으려고 발가락에 힘을 다 주고 있는 상태였다. [경고: 신체 근력 한계 도달까지 남은 시간 30초] 서둘러야 했다. 30초 뒤엔 확률연산이고 뭐고 다리가 먼저 접힐 판이었다. [확률연산 발동] [예측: 임재현, 지친 상태에서 무리한 정면 돌진 확률 76%] 동작을 보니 곧 무너질 자세였다. 호흡이 흐트러지고, 어깨가 처지고, 발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친 몸으로 이길 방법을 찾다 못해, 결국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승부를 걸어올 거라는 뜻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스텝으로 그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원 소유자의 기억 속 팔방류 기본 초식, 그 안에 있는 견제 동작 하나. 딱 그거 하나만 썼다. 화려할 필요도 없었다. 확률연산이 그려준 길로만 정확히 걸어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손날로 임재현의 팔목을 가볍게 쳤다. "윽!" 임재현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지며 그대로 넘어졌다. 연무장에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적이었다. 장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손을 들면서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승... 승자, 강준서!" [임무 완료] [가문 내 인지도 대폭 상승] 관람석은 순간 조용했다가, 곧 폭발했다. "저게 그 둔재라고?" "3년 동안 코피만 흘렸다던 그 아이 아니야?" "내공을 하나도 안 썼는데?" "근데 저거 봤어? 한 번도 안 맞았어. 스무 번을 넘게 공격을 받았는데." "임재현 도련님 얼굴 좀 봐라. 저건 진짜 당황한 얼굴인데." 소문의 씨앗이 그 자리에서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뿌릴 씨앗이면, 크게 뿌리는 게 이득이니까. 소문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음에 내가 뭘 하든 사람들이 눈여겨볼 거고, 그게 결국 나한테는 무형의 자산이 될 터였다. 임재현이 바닥에 앉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이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조롱이 아니라, 경계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벌레 보듯 하던 눈빛이, 지금은 낯선 사람 보듯 하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가 낮게 물었다. "수련이요." 나는 손을 내밀며 웃었다. 임재현은 그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일어났다. 바닥을 짚은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모양이었다. "수련만으로 이게 된다고?"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저도 좀 놀랍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반은 진심이었다. 확률연산이 아니었으면 나도 3초 만에 나뒹굴었을 게 뻔했으니까. 임재현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옷을 털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는 게 보였는데, 그게 뭔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관람석 뒤편, 임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처럼 재밌는 구경거리를 봤다는 얼굴이 아니었다.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저건 뭔가 다음 수를 두러 가는 얼굴인데.'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생각했다. 소문은 이미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걸 어떻게 굴려야 할지, 그게 새로운 판이었다. 그리고 판이 커질수록, 나를 보는 눈도 늘어날 거였다. 그중 몇 개는 분명, 호의적이지 않은 눈일 터였다. 박우현이 다가와 조심스레 어깨를 붙잡아줬다. "도련님, 다리가 후들거리십니다." "어, 알아. 근데 방금 그거... 봤지?" "예. 훌륭하셨습니다." "그치? 나도 내가 이길 줄은 몰랐는데." 박우현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마디를 더했다. "다만... 오늘부로 도련님을 보는 눈들이 많이 바뀔 겁니다. 좋은 쪽으로만 바뀌는 건 아닐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슬쩍 지웠다. 임서윤이 나가버린 방향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문 너머로 사라진 그 뒷모습이, 왠지 오래 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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