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행사가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서윤은 백작가의 오래된 서류 보관실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이 모든 오류의 근원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보관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퀴퀴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살마저 뽀얗게 부유하는 먼지 알갱이들에 가려 힘을 잃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이서윤은 옷자락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서가와 서가 사이를 오가며 낡은 상자들을 하나씩 끌어내렸다.
'분명 어딘가에... 이 오류의 시작점이 있을 거야.'
수십 년치 등록 서류라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방대했는데, 어느 상자는 곰팡내가 진동했고 어느 상자는 곤충의 사체가 눌어붙어 있었으며, 그럼에도 이서윤은 손끝이 시커멓게 물들도록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확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팔이 저리고 눈이 뻑뻑해질 무렵, 그녀는 마침내 낡고 누렇게 변색된 혼인 서류 원본 한 장을 찾아냈는데, 그 문서에 적힌 이름은 놀랍게도 강태호의 이름과 그의 젊은 시절 배우자, 즉 이서윤의 조모의 이름이었다.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서류를 촛불 가까이로 가져갔는데, 두 이름의 이니셜과 필체가 어딘가 이서윤 자신의 등록 서류와 기묘하게 겹쳐 있었고, 그것을 발견한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감각이 가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갔다.
담당 서기가 수십 년 전 오래된 문서를 새 문서에 옮겨 적으며 이름란을 통째로 잘못 병합했다는 사실이, 서류 하단의 작은 낙서 같은 정정 표시를 통해 드러났는데, 그 표시는 마치 누군가 서둘러 지우려다 만 흔적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거였구나... 오래전 착오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였어.'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이서윤은 안도와 동시에 서늘한 분노를 함께 느꼈는데, 자신의 삶을 뒤흔든 이 모든 소동이 결국 누군가의 부주의한 필기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억울하면서도, 동시에 이제는 명확한 증거를 손에 쥐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걸로 끝을 봐야 해. 반드시.'
그녀는 서류를 품 안에 조심스레 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다리가 저려 잠시 휘청거렸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지난 몇 달간 자신을 옭아맸던 의문의 실마리가 풀렸다는 묘한 해방감이었다.
그러나 이 증거를 관청에 제출한다 해도 정정 절차 자체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등록 서류의 정정이라는 것은 원래 담당 부서의 검토와 승인, 그리고 상위 기관의 확인이라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이었고, 그 절차가 짧아도 수개월, 길면 반년 넘게 걸린다는 것을 이서윤은 이미 백작가의 관리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사교계에 이미 퍼진 '기혼자' 낙인과 '실패작'이라는 평판은 여전히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는데, 서류 하나로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사람들의 입방아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끈질기게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뼈저리게 겪어온 터였다.
행사 당일, 연회장에 들어선 이서윤은 참석자들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느꼈는데,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모여 있던 귀부인들의 눈빛은 마치 진귀한 구경거리를 발견한 듯 노골적이었고, 몇몇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그녀를 향해 수군거렸다.
"경영은 잘한다지만, 여자로서는... 쯔쯔."
그 말이 귀에 박히는 순간에도 이서윤은 애써 표정을 다스리며 발표 자리로 걸어나갔는데,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들이 마치 바늘처럼 살갗을 찌르는 듯했지만, 그녀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손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청하 백작령의 세수와 생산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밤을 새워가며 정리한 그 종이 뭉치는 그녀가 이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이기도 했다.
'괜찮아.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녀가 자료를 펼쳐 보이며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연회장의 웅성거림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곡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이 할 이상 증가했다는 대목에서는 몇몇 상인 대표들이 눈을 크게 뜨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세수 증가율이... 저 정도라니. 인근 영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 아닌가."
누군가의 낮은 감탄이 들려오는 순간, 이서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눈길을 돌렸는데, 관료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자료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정도 성과라면... 남작가나 자작가의 경영 자문으로도 충분히 손색없겠군요."
그 말이 이어지는 순간, 이서윤은 자신이 처음으로 이 자리에서 존재를 증명해내고 있다는 실감을 느꼈으나, 그 안도가 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이도현이 다가와 짝짝 소리를 내며 손을 마주쳤는데, 그 태도는 여전히 도발적이었다.
짝짝.
박수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연회장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이서윤 쪽으로 쏠렸는데, 이도현의 입가에는 여전히 그 익숙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역시 누나답네. 그런데 누나, 성과랑 결혼은 별개 아니야?"
그 말속에 숨은 조롱을 모르지 않았기에, 이서윤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는데, '너는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사람을 깎아내려야 속이 시원한 거니.'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삼켰다.
그 말에 답하려던 순간, 연회장 한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애님,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돌아보니 윤아라가 조용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화려한 장신구 하나 없이도 단정하게 정리된 옷차림과 곧게 세운 자세에서 묘한 기품이 느껴졌고, 그 시선에는 조롱이 아닌 묘한 흥미와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영애님이 찾는 조건에... 제가 아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예상치 못한 제안에 이서윤은 순간 말을 잃었는데, '이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의문이 스치기도 전에, 윤아라의 표정에서 진심 같은 것을 읽어낸 그녀는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저택에서 급히 달려온 시종 하나가 연회장 안으로 뛰어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영애님! 백작님께서... 지금 바로 오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부름에 이서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강태호가 이런 자리에 급하게 사람을 보낼 만한 일이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종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이 가쁜 듯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이서윤의 머릿속에는 온갖 불길한 상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윤아라가 건넨 말도, 이도현의 조롱도, 조금 전까지 그녀를 향해 있던 감탄 어린 시선들도 모두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고, 이서윤은 자료를 품에 안은 채 서둘러 연회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이제 또 다른 종류의 궁금증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