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사교계 데뷔 무대는 이서윤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리였는데, 청하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처음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날인 만큼, 그녀는 새벽부터 오순영의 손에 몸을 맡기고 단정하게 매만짐을 받아야 했다.
똑, 똑, 똑.
창밖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고, 그 소리를 들으며 이서윤은 눈을 감은 채 오순영의 손끝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감각에만 온전히 집중하려 애썼는데,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온갖 예상들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오늘만 잘 넘기면 돼... 오늘만.'
그렇게 되뇌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오순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무릎 위에 가만히 겹쳐 올려두었다.
은은한 금빛 실로 수놓인 드레스가 그녀의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마치 가을 들판에 노을이 스며든 듯한 그 은근한 광택은 촛불 아래에서 한층 더 깊은 빛깔을 뿜어냈으며, 가을 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청회색 눈동자는 오늘만큼은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단단하게 빛났다.
거울 앞에 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오순영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가씨는... 정말 누구보다 아름다우세요. 그러니 오늘 어떤 시선이 쏟아지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마세요."
그 말에 이서윤은 옅게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도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마차가 연회장 앞에 멈춰서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밀려드는 웅성거림이 먼저 그녀를 맞이했는데, 연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서윤은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예상보다 훨씬 노골적이라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부채 뒤에서 오가는 속삭임이 귀에 닿을 듯 말 듯 스치고 지나갔다.
"저 영애가... 그 서류 사건의 주인공이라던데."
"할아버님과 혼인이라니, 세상에."
"경영 수완이 뛰어나다고는 하던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여자로서는..."
뒷말이 흐려졌지만, 이서윤은 그 문장이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소문이 이미 발보다 빠르게 사교계 전체를 돌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 예상은 했잖아.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
속으로 되뇌면서도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웠을지는 스스로도 짐작할 수 있었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근육 하나하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으로 청하 백작가의 장부를 처음 손에 넣었던 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재능 있는 영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고, 상단의 거래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낸 그녀의 수완에 감탄하던 상인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모든 성과가 무색하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규정하는 단어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신부.'
그 사실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세상은 그녀의 능력보다 그녀의 혼인 상태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한 젊은 백작가의 자제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옆에 있던 어머니의 눈짓에 슬그머니 방향을 돌리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이서윤은 오늘 이 자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확인시키려는 자리인지 완전히 깨닫고 말았는데, 그 젊은 자제의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간 곤란한 표정과, 그의 어머니가 딴 곳을 보며 부채로 입가를 가리는 모습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그것은 청하 백작가의 경영 성과를 인정받는 자리가 아니라, '기혼자'라는 낙인을 사교계 전체에 공표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서윤은 잔을 손에 든 채 애써 태연한 걸음으로 연회장을 가로질렀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시선들이 등 뒤에서 따라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시선의 무게가 마치 드레스 위에 켜켜이 쌓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바스락.
부채가 접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낮게 퍼졌고, 이서윤은 그 소리의 방향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회장 한편에서 유쾌하게 웃고 있던 이도현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는데, 한 살 어린 의붓오빠답지 않게 여유로운 태도로 그녀의 옆에 서서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누나, 오늘 아주 인기가 많네. 다들 누나 얘기만 하잖아."
조롱기가 잔뜩 섞인 그 말에 이서윤은 애써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답했다.
"관심을 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
"그런데 그 관심이 '경영 능력은 뛰어나나 여자로서는 실패작'이라는 평판이라면, 그래도 나쁘지 않아?"
이도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표현은 이미 사교계에서 돌고 있던 것이 분명했고, 그 말을 직접 들은 순간 이서윤은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주고 말았다.
'실패작이라고... 누가 그렇게 정한 거지.'
분노와 수치가 동시에 밀려왔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대신 오히려 더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도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신랑감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그게 뭐가 문제지?"
그녀의 반박에 이도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는데, 그 표정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것과 닮아 있었다.
"그래, 두고 보자고. 근데 누나, 조건에 맞는 신랑감이... 정말 있긴 할까?"
그 질문 속에 숨겨진 냉소를 이서윤은 놓치지 않았는데, 이도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겉으로는 다정한 오빠처럼 굴다가도 결국은 그녀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말을 골라 던지는 데 능숙했으므로.
그 말과 함께 이도현이 시선을 돌린 곳에는, 화려하지 않지만 유독 정갈한 인상을 가진 한 여성이 조용히 서 있었는데, 은빛에 가까운 담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틀어올린 그 모습이 마치 잘 정돈된 자수처럼 고요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으며, 옅은 미소를 띤 입가와 차분하게 내려앉은 눈매가 주변의 소란과는 무관하게 홀로 정적을 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이서윤이 그 시선을 따라가는 순간, 이도현이 낮게 웃으며 던진 한마디가 연회장의 소음 사이로 또렷하게 박혀들었다.
"저 사람이 앞으로 내 혼약자가 될 사람이야. 상헌 남작령의 윤아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순간 가슴 한구석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뻐근하게 조여오는 것을, 그녀는 애써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