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퇴혼 소식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진문 전체에 퍼졌다.
바람보다 빠른 것이 소문이라 했던가. 대전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연무장을 돌아 취사간을 거치고, 그마저 못 미더워 하는 이들의 입을 타고 잡역각까지 굴러떨어지는 데는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잡역각 안에서는 그 소식이 더 빠르게, 더 잔인하게 돌았다. 원래도 위아래 없이 떠들어대는 자들이었으니, 남의 불행만큼 좋은 안주가 없었다. 강도현이 마당을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림이 따라붙었다. 등 뒤에서, 옆에서, 심지어 그가 다 지나간 뒤에도 목소리는 끈덕지게 이어졌다.
"저놈이었지, 설 소저한테 버림받은 놈."
"쓸모없으니 버렸다던데. 하긴 잡역이나 하고 있으니 뻔하지."
"불쌍하다면서도 참, 저럴 때 보면 고소하기도 하고."
말들은 하나같이 날이 서 있었으나, 강도현은 그 어느 것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걸음의 속도만 조금 더 일정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눈을 마주치면 저들의 즐거움에 살을 붙여주는 꼴이 될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서해는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잡역각 관리인이라는 직함이 그에게는 작은 권력이었고, 그 권력을 휘두를 명분이 생긴 오늘은 그에게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강도현."
그가 불렀다. 목소리에 이미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강도현은 삽을 내려놓고 다가갔다.
"예."
"오늘부터 뒷산 도랑 정비다. 물길 막힌 데 다 뚫어놔."
"거긴 두 명이 할 일인데···"
"혼자 해."
서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친절해 보였지만, 실은 날카로운 못이 숨겨진 미소였다.
"약혼도 깨진 놈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시간 남을 텐데."
주변에 있던 잡역 제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참새가 그 웃음소리 사이에서 유난히 크게 낄낄거렸다. 그는 마치 자신이 서해의 오른팔이라도 되는 양,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얹었다.
"형님, 저 도련님 요즘 얼굴이 아주 볼만하지 않습니까. 예전엔 그래도 콧대는 있었는데."
"볼만하지, 폐인이 폐인다워지는 거니까."
서해가 팔짱을 끼며 강도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뭐, 원래도 별거 없었지만."
강도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꾸할 힘조차 아끼고 싶었다. 도구를 챙겨 뒷산으로 향했다.
'익숙해질 만한 일인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익숙하다는 말이 맞았다. 잡역각에 들어온 이래로 이런 조롱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오늘은 유독 가슴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마도 그 소문의 진원지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까웠던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설 소저. 한때는 약혼자였고, 지금은 그저 지나간 인연이 되어버린 이름.
뒷산 도랑은 낙엽과 진흙으로 반쯤 막혀 있었다. 지난 장맛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썩은 낙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삽을 박아넣을 때마다 차가운 진흙물이 손목까지 튀어 올랐다.
'퍽.'
삽날이 돌부리에 부딪히며 손이 저려왔다. 강도현은 잠시 손을 털고 다시 삽을 잡았다. 손바닥에는 이미 굳은살이 박여 있었으나, 오늘의 노동은 그마저도 아프게 만들었다.
'혼자서 이 도랑을 다 정비하라니, 서해도 참 대단하다.'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불평은 사치였다. 잡역 제자에게 불평이란 더 큰 벌을 부르는 초대장일 뿐이었다. 강도현은 묵묵히 삽을 놀렸다. 진흙을 퍼내고, 낙엽을 걷어내고, 물길이 트일 때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잠깐씩 위안을 얻었다.
'물이라도 잘 흐르는구나.'
작은 성취였다. 그런 작은 것에서라도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들었던 말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파고들어 손을 떨리게 할 것 같았다.
해가 기울어가는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차가운 산바람에 식어갔다가, 다시 움직임과 함께 뜨거워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에는 팔의 감각이 무뎌져, 삽을 쥐고 있는 것인지 놓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작업은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물길이 트이고, 막혀 있던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 갈 때, 강도현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끝났다.'
끝났다는 안도감보다는, 그저 하루가 지나갔다는 무감각한 느낌이 더 컸다.
그가 잡역각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다른 제자들은 저녁을 다 먹고 흩어진 뒤였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등불 몇 개만이 흐릿하게 켜져 있었고, 그 아래로 남은 밥과 국이 식은 채 놓여 있었다.
식당 한쪽 구석에 남은 밥을 챙겨 먹으려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그대로 있어."
참새였다. 뒤에 서너 명의 잡역 제자를 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낮에 보았던 웃음이 남아 있었다.
"뭐야."
"뭐긴, 인사하러 왔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비꼬는 말투에 낮게 웃는 소리가 섞였다. 뒤따르던 자 하나가 팔짱을 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도련님이라니, 그 말도 이제 안 맞지 않냐. 파혼당한 잡역 놈인데."
"맞다, 맞아. 그냥 도현이라고 불러야지."
강도현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것이 분노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할 말 있으면 해."
"할 말이야 많지. 설 소저한테 버려진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서."
참새의 눈에는 진심으로 궁금한 기색마저 있었다. 그것이 더 화가 났다. 이 조롱이 그저 심심풀이가 아니라, 저들에게는 진짜 즐거움이라는 사실이.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지금 손을 쓰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을 알고 있었다.
'참아라. 여기서 손을 대면 끝이다···'
잡역각에서 손찌검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문제 삼을 이는 서해일 것이고, 그 판결은 언제나 강도현에게 불리하게 내려질 것이다. 그것이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의 규칙이었다.
"그냥 넘어가."
"넘어가라니, 우리도 서 관리인 명령이라 그래."
참새가 웃으며 다가섰다. 그의 발끝이 강도현의 그릇을 걷어찼다. 밥그릇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쨍그랑.'
그릇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텅 빈 식당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 실수. 미안해서 어쩌지."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커졌다. 누군가는 손뼉까지 쳤다. 강도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지만, 곧 다시 무기력하게 가라앉았다.
'여기서 손을 쓰면 안 돼.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이내 차갑게 식었다. 그는 그 감정을 삼켰다. 삼키는 것에는 이제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려 그릇을 주웠다. 흩어진 밥알과 국물을 손으로 대충 쓸어 담았다. 참새는 그 뒷모습을 향해 낄낄거리며 침을 뱉었다. 뒤따르던 자들도 하나둘 그를 따라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강도현은 젖은 손을 옷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배는 여전히 고팠으나, 이제 먹을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텅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을 나서는 길, 강도현은 담벼락 옆 그늘에서 낯선 시선을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시선이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먼저 등줄기로 느껴지는 법이었다.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적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어둠을 응시했다.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설가에서 붙인 사람일까, 아니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으나 어느 하나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답을 얻지 못한 채, 강도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잡역각의 작은 방에 돌아와 몸을 눕히자, 온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삽질로 저려온 팔과, 온종일 서 있던 다리, 그리고 마음 어딘가에 남은 오늘의 잔재까지.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잠은 오지 않았다.
벽에 걸린 낡은 목함을 그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버지 강천호가 사라지기 전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작은 씨앗 하나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목함을 손에 들었다. 낡은 나무의 결을 손끝으로 쓸었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여전히 그 작은 씨앗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겉보기엔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그저 작고 단단한 씨앗이었다.
'만물모근이라 했던가···'
아버지는 그것을 남기며 짧게 말했었다. '언젠가 반드시 쓰일 날이 올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강도현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씨앗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았다.
'만물모근이라 해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닌데.'
지금 필요한 것은 씨앗이 아니라, 이 조롱을 멈출 힘이었다. 서해의 비웃음에도 대꾸할 수 있는 힘, 참새의 발길질에도 물러서지 않을 힘. 하지만 씨앗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힘도 주지 않았다.
그는 목함을 다시 서랍 깊숙이 넣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런 막연한 유산에 기대고 싶은 마음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달이 흐릿하게 떠 있었다. 구름이 얇게 걸쳐진 밤하늘 아래, 달빛은 방 안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창턱에서 멈춰 있었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도 도랑을 정비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궂은일을 맡게 될 것이다. 내일도 누군가는 그의 등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고, 참새는 또 어떤 방식으로 시비를 걸어올 것이다. 그런 하루가 또 다른 하루로, 그리고 또 다른 하루로 이어질 것이다.
'익숙해지겠지.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담벼락 그늘에 남아 있던 그 시선은, 강도현이 방으로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