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생하니 마녀 만렙이라니

4화

이순영의 집, 저녁 무렵. 화로 불빛이 낮게 흔들리는 부엌에서, 나는 등 뒤로 문을 닫으며 숨을 골랐다. 어제 산에서 겪은 일들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것처럼 저릿저릿했다. 정화수를 만들어낸 그 순간의 감각, 재료들이 서로 반응하며 옅은 푸른빛을 뿜어내던 그 장면이 눈앞에 자꾸만 떠올라 나는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가마솥에서 올라오는 국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순영은 나무 숟가락으로 국을 젓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왔어? 저녁 다 됐다." 나는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병을 꺼냈다. 옅은 푸른 액체가 담긴 그 병을 식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유리병 표면에 서린 물기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순영의 시선이 병에 고정되었다. 국 젓던 손이 멈췄다. "이게 뭐니, 서리야." 목소리에서 이미 뭔가를 감지한 듯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벼르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이 말을 어떻게 꺼낼지 고민했는지 모른다. "정화수예요." 나는 겨우 입을 뗐다. "제가 만든 거예요." 이순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숟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화로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너, 어제 산에 다녀왔다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누가 엿들을까 겁내는 사람처럼 부엌 안을 한 번 둘러보기까지 했다. "설마 그 마녀 시험이라는 걸 정말로 치른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엄마, 저 마녀예요. 진짜로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침묵이 흘렀다. 화로의 장작이 타닥,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작은 소리마저 부엌 전체를 채우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이순영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이 끓어 넘치는 소리, 화로 속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만큼 그 침묵은 길고 무거웠다. 나는 그 침묵이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이 세계에서 마녀라는 존재가 얼마나 애매한 취급을 받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약초 팔아 생계 유지하는 정도는 봐줘도, 진짜 힘을 드러내면 배척당하기 십상인 자리. 마을 사람들이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도, 등을 돌리는 순간 수군거림이 시작되는 걸 나는 지난 몇 년간 지켜봐 왔다. 이순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손에 쥔 숟가락을 내려놓고, 대신 앞치마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서리야." 이순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엄마는 무섭다." "뭐가요?" "마을 사람들이 마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너도 봤잖니. 우물가 아주머니들이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그녀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거칠고 갈라진 손이었지만 따뜻했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익숙하면서도 새삼스러웠다. "네가 그런 힘을 가졌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널 이용하려 들거나, 아니면 배척하려 들 거야. 둘 다 무서운 일이야." "저번에 건너 마을에서 마녀 하나가 쫓겨났다는 얘기도 들었지. 밭에 가뭄이 들었다고, 그 여자 탓이라고 몰아붙였다더라. 아무 증거도 없이." 이순영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오래 눌러왔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네가 그런 일을 당할까 봐, 엄마는 매일 밤 잠도 못 자." 나는 그 손을 꽉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떨림이 전해졌다. "저 알아요. 그런데 엄마, 저는 그냥 숨어 사는 것보다, 아무도 저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강해지는 쪽을 택하고 싶어요." 이순영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시선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읽혔다. 두려움, 걱정,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알 수 없는 무언가. 나는 4년 뒤의 화재에 대해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는 미래고, 말한다 해도 이순영이 믿어줄 리 없었다. 오히려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걱정만 더 살 게 뻔했다. 대신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말만 했다. "제가 만든 이 정화수, 상처에 발라보실래요?" 이순영의 손목에는 며칠 전 부엌칼에 베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붉게 부어오른 자국이 소매 밑으로 살짝 비어져 나와 있던 걸 나는 이미 며칠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상처가 별거 아니라며 넘기려 했지만, 밤마다 은근히 얼굴을 찌푸리는 걸 나는 다 봤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를 걷었다. 상처 부위가 화로 불빛에 드러났다. 벌겋게 부어오른 살갗, 그 주변으로 퍼진 열기. 나는 병을 열었다. 옅은 푸른빛이 병 입구에서 흘러나오며, 그 특유의 서늘한 냄새가 부엌 공기에 섞여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만약 이게 우연이었다면, 만약 어제의 그 일이 그저 운이 좋았던 한순간이었다면 어쩌지. 그런 불안이 잠깐 스쳤지만, 나는 그대로 액체를 상처 위에 살짝 흘려보냈다. 따끔거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순영의 표정은 오히려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어, 안 아프네. 오히려 시원한데." 그녀는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상처 부위를 살폈다. 그 눈빛에 담긴 놀라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상처 주변의 붉은 자국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치유는 아니었지만, 분명한 효과였다. 부어올랐던 살갗이 조금씩 가라앉고, 열기도 서서히 식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어제의 폭발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지나갔다. 이건 진짜였다. 내가 만든 정화수가, 실제로 사람의 상처를 낫게 하고 있었다. 이순영은 한참 동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안도와 놀라움, 그리고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 네가 그런 아이라면, 엄마가 뭘 더 말릴 수 있겠니."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손목을 다시 소매로 가리면서도, 그녀는 몇 번이나 그 부위를 힐끔거렸다. "대신 조심해야 해. 절대로 사람들 눈에 대놓고 드러내지 말고." 이순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이런 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어야 해. 알겠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최강의 마녀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4년 뒤 이 마을에 닥칠 재앙에서 어머니를,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이순영이 잠든 뒤에도 나는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병 속의 남은 액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우연이 정말로 법칙이 될 수 있는지,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재료를 다시 정리하며, 이 정화수 조합을 소규모로 몇 번 더 재현해 보기로 결심했다. 우연이 아니라 법칙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손끝으로 마른 약초를 하나씩 매만지며, 어제 산에서 있었던 순서를 떠올렸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었는지, 어떤 순서로 섞었는지, 그 모든 걸 다시 되짚어야 했다. 그리고 그 증명이 성공한다면,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몰랐다. 그 다음 단계가 나를 마을 전체의 눈앞으로 끌어낼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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