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국경의 성녀, 궁정의 마물

5화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물결처럼 연회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치 수면 위에 돌 하나가 떨어져 파문이 번지듯,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를 향했고, 서은채 역시 그 흐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목하린이었다. 연한 라일락빛 드레스를 두른 그녀는 화려하다기보다 청순한 인상을 풍겼는데, 그 청순함이 오히려 연회장 안의 모든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무기가 되었다. 사뿐사뿐, 그녀의 걸음걸이는 물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마치 물뱀이 잔잔한 수면을 가로지르는 듯한 그 우아함에 지켜보는 귀족들의 눈에는 이미 동경과 호의가 가득 차 있었다. "목 영애께서……" "전하께서 정말 저 아이를 택하셨다는 게 사실인가요?" "어머, 저 청순한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가는군요." 주위의 수런거림이 커지는 사이, 세자 이현이 목하린의 손을 잡고 연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함께 서는 순간, 연회장 안의 시선은 완벽하게 그들에게 집중되었고, 방금 전까지 서은채를 향하던 관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서은채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손끝이 미세하게 차가워지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드레스 자락 속으로 숨겼다. 강도영의 도움으로 겨우 붙잡았던 미약한 주도권이, 그녀가 등장한 순간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쉽게 뒤집히는군.* 몇 마디의 웅성거림과 몇 걸음의 우아한 걸음걸이로, 자신이 몇 달간 쌓아온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서은채는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이것이 궁중이라는 곳의 본질임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씁쓸함은 남았다. 이현이 목하린을 곁에 세운 채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이전에 서은채를 바라볼 때 없던 부드러움이 있었는데, 그것이 서은채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짐은 중요한 발표를 하고자 한다." 이현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연회장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그 정적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공간을 가득 채웠다. 촛불의 흔들림마저 멈춘 듯한 그 순간, "짐은 대현공작가의 영애 서은채와의 혼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연회장 안의 모든 시선이 다시 서은채에게 쏟아졌다. 시선들은 화살처럼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으나, 서은채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았다. 속으로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순간이 마침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드디어 오는군.* "그 이유는……" 이현이 말을 이었다. "최근 국경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은 이 나라의 세자로서, 의혹이 남은 자와 앞으로도 함께할 수 없다." 낮은 감탄과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연회장을 훑고 지나갔다. 몇몇은 안타까운 시선을, 몇몇은 노골적인 조소를 서은채에게 보냈다. 부채 뒤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귀족 부인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무대극처럼 서은채의 눈앞에 펼쳐졌다. 서은채는 그 모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이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정적 속이었다. "전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연회장 전체에 또렷하게 울렸다. "그 의혹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자리에서 밝혀주실 수 있습니까." 이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이미 알려진 바가 있지 않은가."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정식으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서은채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와 이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주변 귀족들의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전하께서 저를 의심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이 많은 이들 앞에서 명확히 말씀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연회장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시위에 걸린 활처럼, 누구 하나가 조금만 움직여도 터질 듯한 긴장이었다. 이현은 잠시 대답을 미루었는데, 그 침묵의 틈을 목하린이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전하." 목하린이 이현의 팔을 살며시 붙잡으며 나섰다. 그 손짓은 부드러웠으나, 서은채의 눈에는 마치 뱀이 먹잇감을 향해 서서히 조여드는 것처럼 보였다. "서은채 영애께서 이렇게까지 격앙되시는 걸 보니, 오히려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혹여 제가 무언가 오해를 산 것은 아닌지……" 그 말은 겉으로는 겸손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서은채는 목하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청순하게 내려앉은 그 눈매, 그 아래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 서은채는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저 얼굴 뒤에 숨은 것이 무엇이든, 오늘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목 영애." 서은채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당신이 은밀히 전했다는 그 증언, 그 시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목하린의 표정에 아주 잠깐, 균열 같은 것이 스쳤다.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입가의 미소가 순간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식간에 슬픔으로 위장되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병중이라……" 목하린이 손수건을 들어 눈가를 살짝 눌렀다. 그 동작마저 완벽하게 계산된 듯 우아했다. "병중이라기엔 지나치게 시기가 절묘하군요." 서은채의 말에 연회장 안이 다시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고, 몇몇은 은근한 미소로 서은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강도영이 그녀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와 서며 낮게 속삭였다. "영애,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압니다." 서은채가 짧게 답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목하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을 겁니다." 강도영은 더는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이 허리춤의 검자루로 슬며시 옮겨가는 것을, 서은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 전, 연회장 입구 쪽에서 또 한 번 커다란 소란이 일었다. 이번에는 문이 거칠게 열리며, 근위병들이 다급히 뛰어들어와 이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연회장 안의 시선들이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이현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극적인 순간이 이런 방식으로 끊긴 것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왕성 서쪽 별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감지되어……" 병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회장 창밖으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저 밤안개인 줄 알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질적인 색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검은 기운이었다. 그 안개는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가며 창문 틀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 기운을 느낀 순간 서은채의 등줄기가 얼음처럼 굳어졌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순식간에 몇 도는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 기운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기운이었다. 마치 오래전 잊었던 악몽의 한 조각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감각. 서은채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서은채가 고개를 돌려 목하린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청순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슬픔은 이미 자취를 감춘 채였다. 그러나 그 미소 아래로, 아주 잠깐 눈동자의 색이 검붉게 번지는 것을 서은채는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목하린은 다시 이현의 팔에 매달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서은채의 뇌리에는 그 검붉은 눈동자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연회장 안은 이제 다른 종류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스캔들에 대한 흥미로운 웅성거림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고, 몇몇 귀족들은 이미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며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검은 안개는 여전히 창밖에서 스멀스멀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으며, 그 정체를 아는 이는 이 자리에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단 한 사람, 서은채만이 예외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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