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서은채가 탄 마차가 왕성 서문을 지나는 순간, 바퀴가 돌길의 이음새를 밟으며 낮게 덜컹였고, 그 진동은 마차 안의 침묵을 미세하게 흔들어 놓았다. 그 옆을 지키던 근위기사 강도영은 창밖을 힐끗 내다보며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는데, 그것이 그녀의 평소 모습이었으므로 서은채도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다만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강도영의 손이 검자루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다. 손가락 마디가 검자루의 가죽을 눌렀다가 다시 풀어지는,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었지만 서은채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서은채가 낮게 말을 건넸다.
"긴장이 아닙니다." 강도영이 짧게 답했다. "경계입니다."
그 대답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서은채는 그것이 강도영 특유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 캐묻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왕성으로 이어지는 대로가 펼쳐졌는데, 예전 같았으면 성녀의 귀환을 반기며 창가로 몰려나왔을 백성들이 지금은 문틈으로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커튼 뒤에서 새어 나오는 눈빛들이, 마치 짐승을 관찰하는 듯한 조심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마차가 왕성 정문 앞에서 멈추었을 때, 강도영의 눈매가 순간적으로 굳어지는 것을 서은채는 분명히 보았다.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시선이 예전과 달랐다. 존경 대신 의심이, 예의 대신 경계가 담긴 시선이었다. 병사들의 창끝이 미묘하게 서은채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데, 그것은 예를 갖춘 자세가 아니라 언제든 무언가를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였다.
"뭔가 달라졌군요." 서은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강도영은 대답하지 않은 채 마차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바깥의 서늘한 공기가 마차 안으로 흘러들었고, 그 공기 속에는 익숙한 왕성 특유의 향—오래된 석재와 향유가 뒤섞인 냄새—대신 낯선 긴장감이 배어 있는 듯했다. 서은채가 내려서자 병사들이 창을 조금씩 고쳐 잡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경례가 아니라 경계의 몸짓이었다. 서은채는 그 광경을 담담히 눈에 담으며 걸음을 옮겼고, 강도영이 반보 뒤에서 그녀를 따랐다. 그 거리는 언제나 그러했듯 정확했으나, 오늘은 유독 그 반보가 더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느껴졌다.
회랑을 지나는 동안 지나치는 시녀들과 관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서은채의 등에 꽂혔다가 재빨리 피해졌다. 몇몇은 서은채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는데, 그 인사는 존경의 표시가 아니라 시선을 피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였다.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불길한 소문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듯한 태도였다. 회랑의 기둥 사이로 쏟아지는 오후의 빛이 대리석 바닥에 길게 늘어졌으나, 그 황금빛조차 서은채의 발걸음을 따라 서늘하게 식어가는 듯했다. 서은채는 그것을 모른 척 지나쳤으나, 속으로는 이미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또 시작이군.*
국경에서 돌아올 때마다 늘 그랬다. 마물을 물리치고 돌아오면 처음엔 환대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소문이 그녀의 발밑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웃음소리, 다음엔 등 뒤에서 들리는 속닥임, 그리고 마침내는 대놓고 피하는 시선들. 이번엔 그 속도가 유독 빨랐다. 마차에서 내린 지 몇 걸음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회랑 전체가 그녀를 향해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강 기사." 서은채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국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왕성에서는 어떻게 전해졌을 것 같습니까."
강도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 침묵의 길이가 평소보다 길었는데, 서은채는 그 안에서 강도영이 무언가를 고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본 그대로 전해졌다면 다행이겠지요."
"본 그대로가 아니라면?"
"영애께서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렸다는 식으로 말이 돌 겁니다."
서은채의 걸음이 그 순간 짧게 멈췄다. 발끝이 대리석 바닥의 균열에 닿았다가 다시 떨어졌는데, 그 미세한 정지는 회랑을 지나던 시녀들의 눈에도 포착될 만큼 뚜렷했다. 강도영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날 밤, 영애께서 진영을 비운 것은 부상병을 옮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렇게 전해질 거라 생각합니까."
"사실보다 소문이 빠른 곳이 왕성입니다."
그 말을 뱉는 강도영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씁쓸한 무언가가 배어 있었는데, 서은채는 그것이 단순한 관찰자의 냉소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강도영은 마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유독 목소리가 낮아지고, 시선이 아주 잠깐 먼 곳을 향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순간에도 강도영의 눈동자는 회랑 저편, 아무것도 없는 벽면의 한 지점을 향해 있었는데, 마치 그곳에 지나간 어떤 풍경이 여전히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 기사는……" 서은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물에게 원한이 있습니까."
강도영의 발걸음이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서은채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검자루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손등의 힘줄이 미세하게 곤두서는 것이 보였다.
"어릴 적, 마물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었습니다." 강도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감정을 배제한 듯한 어조였으나, 그 담담함이야말로 오래 억눌러온 상처의 흔적처럼 들렸다. "그래서 이 검을 들었습니다. 그뿐입니다."
"미안합니다, 함부로 물었군요."
"아닙니다. 영애께서는 알아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강도영이 서은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평소의 무심함 대신 낮게 타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래 눌러둔 불씨가 아주 잠깐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저는 영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물을 막는 것을 지키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영애께서 마물의 편에 섰다는 소문이 진실이라면, 저는 가장 먼저 검을 들 겁니다."
서은채는 그 말에 담긴 냉철한 경고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 어조에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종류의 신의가 배어 있었으므로, 서은채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강도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심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원한과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이 곧 그녀가 검을 드는 유일한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서은채가 짧게 답했다. "그날이 온다면, 나 역시 강 기사의 검 앞에 서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회랑을 걸어가는 두 여인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나란히 울렸는데, 그 소리마저도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서은채의 걸음은 느리고 곧았으며, 강도영의 걸음은 절제된 채 조용했다. 회랑의 끝에서 서은채의 처소가 보였고, 그 문 앞에는 이미 낯익지 않은 시녀 몇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은채를 향해 허리를 숙였으나, 그 인사에는 미묘한 지체가 있었다. 마치 숙이기 전에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그런 지체였다.
서은채는 그들의 표정에서 예의 바른 미소 아래 감춰진 경계를 읽어내며, 왕성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이미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처소의 문고리는 차갑게 손끝에 닿았고, 그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팔뚝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성녀라는 이름은 늘 이런 식이었지. 필요할 때는 떠받쳐지고, 불편해지면 가장 먼저 내쳐지는.*
그녀는 처소 문을 열며, 오래도록 눌러왔던 씁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자신은 늘 누군가에게 이용되거나 의심받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등 뒤에서 강도영이 문 앞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는 마치 뱀이 자리를 옮겨 몸을 사리는 것처럼 소리도 없이 조심스러웠다. 서은채는 문턱을 넘으며, 오늘 밤 왕성 어딘가에서 자신을 향한 소문이 또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무겁게 가라앉은 처소의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