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문난 악녀, 주막집 알바생

3화

소문이 도는 속도는 언제나 진실이 도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서연은 그해 겨울 내내 확인해야 했다.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부터 별당의 시비들 사이에서 낮게 떠돌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안채 마루를 건너 부엌으로, 부엌에서 다시 대문 밖으로 새어 나가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는 저택을 드나드는 상인들의 짐수레에 실려 한양 사교계까지 흘러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손을 거칠 때마다 조금씩 살이 붙었다. 저녁상을 걷어찼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시비를 매질했다는 이야기가 되었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서연이 이수아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말까지 나돌았는데, 정작 그날 서연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았었다. 사실과 소문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서연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한양 사교계 아녀자들 사이에 도는 말은 이러했다. 온성가의 막내 영애는 성정이 사납고 버릇이 없어, 착한 셋째 언니를 그늘에 두고 홀로 관심을 독차지하려 든다는 것이었으며, 반대로 셋째 영애는 그 모든 수모를 묵묵히 견디는 인품 좋은 규수로 칭송받았다. 어느 안방마님의 다과회에서는 이수아를 두고 '가문의 자랑'이라 부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데, 화로 곁에 둘러앉은 마님들이 다투듯 그녀의 인품을 칭송하며 찻잔을 부딪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서연의 이름을 꺼내자 좌중은 일순 냉랭해지며 혀를 찼다고 했다. 명가의 자랑과 명가의 수치. 두 언니는 같은 집에서 태어났으나 사교계라는 저울 위에서는 이제 완전히 다른 무게로 매겨지고 있었다. 그 저울의 기울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아였다. 그녀는 자신이 세운 무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는데,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는 손짓 하나, 말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는 각도 하나까지도 계산된 것이었다. 그 연기의 목적이 단순히 서연을 깎아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궁으로 가져가려는 데 있다는 것을, 서연은 뒤늦게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세자빈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자리를 노리는 사대부가 규수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 그 경쟁 속에서 완벽한 평판이란 곧 무기였고, 수아는 그 무기를 서연을 깎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온화하고 인자한 언니의 자리는 누군가 사나운 동생 노릇을 대신 해 주어야만 완성되는 자리였고, 서연은 그 역할에 아무런 동의도 하지 않은 채 배역을 맡겨진 셈이었다. "언니,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서연이 처음으로 낮게 입을 열었을 때, 상 위에 놓인 국그릇에서 올라오던 김이 잠시 멈춘 듯했다. 수아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곧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서연아, 나는 널 탓하는 게 아니야. 다만 네가 힘든 걸 밖으로 풀 곳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나는 이해해." 그 말투는 나무라기보다 다독이는 투였고, 그래서 더 효과적이었다. 곁에 앉아 있던 둘째 언니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고, 시비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상을 물렸다. 그 말이 오히려 상 위에 앉은 다른 이들에게는 수아의 관대함으로 들렸고, 서연의 항변은 도리어 언니를 몰아세우는 무례함으로 들렸다. 아버지 이정헌은 그 자리에서도 말없이 수저를 놓았을 뿐이었는데, 정무에 지쳐 있는 그에게는 딸들 사이의 갈등을 헤아릴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는 잠시 서연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짧은 눈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서연은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서연은 오랫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반박은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소용이 있을까. 이 집안에서는 진실이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서연은 이미 여러 번 확인한 터였다. 전생의 기억 속에서도 이런 종류의 억울함을 완전히 해소할 방법을 찾은 적은 없었다는 걸, 서연은 씁쓸하게 되새겼다. 그때도 사람들은 진실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했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진실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도 지금도 분명한 한 가지는, 이런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자신이 깎여 나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명예를 되찾으려 애쓰는 대신, 이곳을 떠나는 일에만 힘을 쏟기로 했다. 명예. 그런 것은 두 해 뒤 이 집을 나서는 순간 아무 의미도 없어질 것이었다. 창밖으로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지, 처마 끝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소영은 그 결심을 듣고 한참을 서연 곁에 앉아 있었다. 화로의 불씨가 사그라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소영은 몇 번이고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아가씨, 그래도 너무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마침내 소영이 조심스레 묻자, 서연은 옅게 웃으며 항아리를 어루만졌다. 그 항아리는 오래전부터 서연이 아끼던 것이었는데, 겉면에 새겨진 무늬가 낡아 희미해져 있었다. "억울한 건 그때 가서 풀어도 늦지 않아요." 서연의 대답은 짧았으나, 그 안에 담긴 결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영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이불을 끌어다 서연의 어깨를 덮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소영이 방을 나서기 전, 문틈으로 들어온 찬바람이 등불을 흔들었다. 서연은 그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두 해라는 시간을 다시 헤아려 보았다. 두 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소문이 부풀어 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 두 해 동안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될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 결의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가혹한 방식으로 시험대에 오를지, 그날 밤의 서연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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