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청년은 인간이 아니었다

5화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순간, 이상한 게 손끝에서부터 시작됐다. 축축했다. 늑대의 숨이 아니라 손바닥 안쪽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먼저 느껴졌다. 뜨거웠다. 손바닥, 붉은 보석을 쥔 그 손이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두근, 두근, 두근. 맥동이 점점 빨라졌다. 심장 소리인지 보석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안에서 뭔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뛰고 있었다. 마치 작은 동물 한 마리를 움켜쥔 것 같았다. 아니, 동물이 아니라 심장 그 자체를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죽기 직전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대단한 정신머리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아빠를 생각했다. 죽도를 처음 잡던 날, 손목이 시큰거려서 놓고 싶었던 그날. 아빠가 뒤에서 손목을 잡아주며 했던 말. "무서울 때 눈 감으면 진다. 눈 뜨고 있어야 이겨."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대단한 격언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초등학생한테 겁주지 말라는 잔소리였는데.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늑대의 이빨이 코앞까지 왔다. 침이 튀었다. 뜨거운 숨이 뺨을 스쳤다. 짐승 냄새, 피 냄새, 그리고 뭔가 타는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손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쩌 억―. 소리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손바닥에서부터 팔, 어깨, 온몸으로 뻗어나가는 뜨거운 파장. 뼈 속까지 저릿한 게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얼음물에 몸을 담갔다가 뜨거운 목욕물에 들어간 것처럼, 극과 극의 감각이 동시에 몰아쳤다. 손을 들어 늑대의 아가리를 밀쳤다. 그런데 그냥 밀친 게 아니었다. 손바닥에서 붉은 열기가 뿜어져 나와 늑대의 얼굴을 그대로 태웠다. 캬아아악―. 놈이 뒤로 튕겨 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검은 털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고기 굽는 냄새 비슷한 게 코를 찔렀다. 속이 뒤집힐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뿌듯할 상황이 아닌데.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화상 하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뜨거운 게 손 안쪽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마치 태양을 하나 삼킨 것 같았다. 뭐야, 이거. 영화에서 이런 능력 가진 사람들 많이 봤는데, 정작 내가 이렇게 되니까 감흥이 하나도 없다. 그냥 어이가 없다. 손바닥에 불이 붙어도 안 뜨거운 게 정상인 건가. 생각할 틈도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리에 힘이 이상하게 넘쳤다. 조금 전까지 후들거리던 다리가 지금은 바위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힘으로 차 있었다. 심지어 발끝이 땅을 딛는 감각조차 평소와 달랐다. 흙이 아니라 스프링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늑대가 다시 일어섰다. 얼굴 한쪽이 타버린 채로도 눈빛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사나워진 것 같았다. 상처 입은 짐승이 제일 위험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그가 내 앞을 막아섰다. "물러서요." "싫어요." 대답이 저절로 나왔다. 내 목소리 같지 않게 단단했다. "저놈이 노리는 게 저인 거잖아요. 그럼 제가 싸워야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제가 지금 제일 잘 아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저놈 눈이 저만 보고 있잖아요." 그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흔들림이 아니라, 뭔가 다른 감정이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표정.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당신은 아직………." 말을 끝내지 못했다. 늑대가 다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가 재빨리 옆으로 몸을 틀었지만, 이번엔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이미 각성한 힘을 한번 써 보십시오." 각성. 그 단어가 귓가에 박혔다. 각성이라니. 만화나 게임에서만 나오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 내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 웃으면 진짜 미친 사람 같을 것 같아서 참았다. 손바닥에 다시 열기가 모였다. 이번엔 내가 의도해서 모은 거였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던 감각처럼, 몸이 저절로 그 힘을 끌어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기운이 실처럼 새어 나왔다. 마치 손 안에 작은 화로 하나를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늑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한 걸음. 두 걸음. 놈의 발톱이 흙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번개와 불꽃이 부딪히려는 순간,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은………." 그 말끝이 이상하게 잘렸다. 마치 하려던 말이 더 있었는데 삼킨 것처럼. 뭘 삼켰을까. 궁금했지만 물을 틈이 없었다. 늑대의 발톱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나는 뜨거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서 열기가 실처럼 흘러나왔다. 늑대의 눈이 그 열기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짐승도 두려움을 아는구나,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숲 저편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의 것이었다. 여러 명. 발소리가 규칙적이었다.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낙엽을 밟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손전등 빛이 나무 사이로 흔들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찾았다!" 낯선 목소리가 외쳤다. 그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표정보다도 굳어 있었다. 심지어 늑대와 마주쳤을 때보다 더. "이런……." 그가 내 팔을 붙잡았다. 차가운 손이 아니라, 뭔가 급박함이 묻어 있는 손이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떨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저들은 누구예요?"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요, 지금 늑대보다 저 사람들이 더 문제인 것 같은 표정인데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나를 끌어당겼다. 손전등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흔들리는 빛무리가 마치 여러 개의 눈동자 같았다. 늑대는 여전히 우리 사이에 있었고, 놈도 그 빛을 의식한 듯 낮게 그르렁거렸다. 셋. 다섯. 아니, 더 많은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건, 그가 저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세 갈래의 위협 속에서, 나는 뜨거운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맥동이 다시 빨라졌다. 누구를 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그 열기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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