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향냄새가 먼저 났다.
조금 전과 같은 향인데, 더 진했다. 방금 막 피운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방금 막 피운 게 아니라 계속 피워지고 있는 냄새였다. 끊이지 않고, 일정하게.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었다. 나무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낡은 천장. 몇 초쯤 멍하니 바라보다가, 산신각 안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닥은 딱딱했다. 등이 배겼다. 누군가 나를 여기까지 옮겨놓았다는 뜻인데, 그 과정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서웠다.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에서 통증이 확 올라와서 다시 주저앉았다.
"으."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오는 신음이 참 클리셰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였으면 여기서 흑화 엔딩곡 깔릴 타이밍인데.
무릎을 내려다봤다. 찍혔던 상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피딱지도, 멍도 없었다. 그냥 깨끗했다. 마치 애초에 다친 적 없었다는 듯이.
손으로 무릎을 쓸어봤다. 감촉도 멀쩡했다. 흉터 하나 없이, 그냥 원래 피부처럼.
이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지금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은 '와, 다행이다'인데, 실제로 느껴지는 건 오싹함이었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있었다.
산신각 문턱에 기대선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은색 머리카락이 저녁 바람에 흔들렸다. 백색 로브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이 이 산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옷만 갖고 걸어 나온 것처럼. 등산복도 아니고, 무속인 복장도 아니고, 그냥 이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옷이었다.
청록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투명해서, 마치 그 뒤가 비쳐 보일 것 같았다. 형광등 불빛이 흔들릴 때 유리 위로 반사되는 것 같은 색이었다.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저렇게 오래 눈을 깜빡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을 셌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셀 때까지도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등줄기를 따라 찬물이 흐르는 느낌이 났다.
"저기………."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당신이, 그, 구해준 거예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계속 지켜보기만 했다. 정확히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손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집요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내 손을 내려다봤다.
그제야 나는 내 손에 뭔가 쥐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손가락을 펴 보았다.
붉은 보석이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 안쪽에서 뭔가 은은하게 맥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장처럼.
두근.
손바닥에서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진짜 심장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손금을 따라 그 박동이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보석을 조명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봤다. 안쪽에서 뭔가 실 같은 게 움직였다. 아주 가늘고, 붉은.
"이게 뭐예요?"
물었다.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사람 말 하면 좀 대답을………."
대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리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이 산신각 마룻바닥은 원래 삐걱거리는 게 정상이다. 내가 아까 들어올 때도, 도망칠 때도 이 나무판자들이 뻑뻑 소리를 냈었다. 그런데 저 사람 발밑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비현실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사람이라면 어딘가 한 군데는 어긋나 있어야 정상인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콧날의 각도도, 눈썹의 곡선도, 입술의 위치도. 마치 누군가가 '이상적인 얼굴'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조각해낸 것 같았다. 3D 렌더링 값이 완벽하게 맞아버린 캐릭터 같기도 했다. 근데 그게 오히려 소름 돋았다. 사람은 그렇게 완벽하면 안 된다.
그의 손이 내 손 쪽으로 다가왔다.
보석을 향해서였다.
손가락이 길었다. 손톱은 투명했고, 손등에는 핏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돌려줘야 합니다."
처음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억양이 이상했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처럼 또박또박했다. 문장 사이 쉼표까지 발음하는 느낌.
"이게 뭔지 설명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손을 슬쩍 뒤로 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몸이 먼저 판단을 내린 거였다. 놓으면 안 된다고.
그의 눈빛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찰나였다. 놓쳤으면 못 봤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봤다. 그 흔들림 속에 뭔가가 있었다. 짜증? 당황? 아니면 그것도 아닌, 훨씬 낡은 감정.
"위험합니다. 당신에게."
"나한테 위험하면, 그냥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이 헛나갔다. 논리가 하나도 없었다. 나도 안다. 근데 이상하게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내가 아니라 손바닥에 있는 그 박동이 대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내 말을 곱씹는 것처럼.
정지된 몇 초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그 사이, 향냄새가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짙어진 게 아니라 내가 그것에 더 예민해진 거겠지. 숨을 쉴 때마다 향이 코 깊숙이 파고들었다.
"당신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
"그럼 이해시켜주면 되잖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 짧게 설명해요. 요약본으로."
내가 봐도 어이없는 말이었다. 이 상황에 무슨 요약본. 근데 그는 그 말에 반응했다. 정확히는, 반응이라기보다 다시 그 짧은 눈빛의 흔들림이었다.
"돌려주세요."
그가 다시 말했다. 손을 조금 더 뻗었다.
그 정지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상한 걸 느꼈다.
이 사람, 아니 이 존재는 나를 구한 게 아니라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느낌.
구조는 그냥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라는 느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왜 산신각 안에 나를 옮겨놨을까. 왜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왜 이 보석은 내 손에 쥐어져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 사람은, 구해준 사람답지 않게 이렇게 담담할까. 마치 이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손끝이 저렸다. 붉은 보석을 쥔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이.
저림이 점점 손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저기요."
목소리에 힘을 줬다.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 됐다.
"내 손 왜 이래요."
그는 내 반대쪽 손을 봤다. 그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아주 조금이었다. 눈썹이 살짝 좁혀졌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 미세한 변화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이 완벽하게 정돈된 얼굴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라면, 그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닐 게 분명했다.
"손을 펴세요."
그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다급함 같은 게 느껴졌다.
"왜요, 뭔데요."
"지금."
그 한마디에, 나는 손을 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