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빙염제의 숲속 신부

2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온기였다. 몸이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담요 여러 겹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무를 태우는 냄새와 낮은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장은 나무 서까래로 되어 있었고, 벽 어딘가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여긴 어디지.'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강물, 차가움, 숨이 막히던 순간, 그리고 어둠. 그 이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 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온몸의 감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팔다리가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시큰한 통증이 올라왔다. 마치 온몸의 뼈가 다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죽다 살았구나.' 담요 밑으로 몸을 조금 움직여보려 했다. 그 순간 발끝부터 저릿한 통증이 올라와 나는 숨을 멈췄다. "움직이지 마."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보였다. 검은 머리가 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붉었다.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갈한 얼굴이었다. 표정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그 무표정 자체가 사람을 압도했다.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존재 같았다. '이 사람, 사람이 맞나.' 붉은 눈동자가 화롯불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저런 눈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당신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저를 구했나요?" "강에서 건졌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라니. 사람 목숨을 구한 게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은혜를 입은 처지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힘겹게 말했다. "저는, 서은채라고…" "이름은 궁금하지 않다." 단호한 말투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 사람, 굉장히 무례하네.' 하지만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화를 낼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담요 끝을 만지작거렸다. "여긴 어디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숲." 그가 대답했다. "내 은신처." 은신처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사람이 사는 집을 은신처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뭘 피해 숨어 사는 걸까.' 그 순간, 창가에서 작은 형체가 날아들었다. 초록빛 비늘로 덮인 몸에 얇은 날개, 사람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처음엔 새인가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도마뱀도 새도 아닌 낯선 생물이었다. 날개를 접는 소리가 사각거리며 방 안을 울렸다. "이헌!" 그 생물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거 뭐야! 왜 인간을 데려왔어! 여기가 무슨 여관인 줄 알아?" 이헌이라 불린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 대답 좀 해줘!" 작은 생물, 비취라는 존재가 내 코앞까지 날아와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가 노란빛으로 반짝였다. "너, 어디서 왔어? 뭐야, 왜 눈이 그렇게 멍청해 보여?"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인사부터 했다. '이 상황에 인사가 나오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비취는 팔짱을 끼듯 짧은 앞다리를 교차하며 나를 훑어보았다. 발톱 끝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인사는 됐고. 당장 내쫓자, 이헌." "안 돼." 이헌이 처음으로 반응했다. "왜!" "손목의 낙인 때문에." 그 한마디에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쫓아낸 그 이유를, 이 낯선 남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담요 아래로 손목을 감춰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저게 뭔데." 비취가 물었다. 초록빛 눈이 내 손목 쪽을 향했다. "모른다." 이헌이 말했다. "그래서 지켜봐야 한다." 나는 담요를 움켜쥐었다. 지켜본다는 말이 보호를 뜻하는지, 감시를 뜻하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저는 어떻게…" 내가 입을 열었다. "이 숲에서 나가지 마라." 이헌이 내 말을 끊었다. "밖의 누구에게도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지 마라. 그게 조건이다." "조건이라뇨, 저는 아무것도 동의한 적…" "동의는 필요 없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지금 걸을 수도 없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다시 쓰러지듯 담요 위로 주저앉았다. 손끝 하나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완전히 무력했다. 마을에서도 쫓겨나고, 이제는 낯선 남자의 손안에 목숨이 걸려 있었다. '이런 처지에 조건을 따질 여유가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에만 매달려야 했다. 비취가 내 옆을 빙빙 돌며 코웃음을 쳤다. 날개가 화롯불의 그림자를 어지럽게 흩뜨렸다. "흥. 얼마나 버틸지 보자고, 인간." 이헌은 이미 몸을 돌려 문가로 향하고 있었다. 등 뒤로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깐만요." 나는 손을 뻗었지만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졌다. "이헌 씨, 저는…" 문이 조용히 닫혔다. 비취만이 그 자리에 남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쩐지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대체 저 사람은 뭐고, 여긴 어디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물음표만 가득한 채로, 나는 다시 담요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손목에 새겨진 낙인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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