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소문은 하룻밤 사이에 몸을 불려 궁 전체로 퍼졌다.
"왕비마마가 만삭의 영애를 찾아가 겁을 주셨다더라."
"그러다 영애가 놀라서 몸이라도 상하면 어쩌시려고."
"투기가 심하시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소영이 그 이야기를 전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마, 이건 너무합니다. 정작 순서를 어긴 건 그쪽인데, 어째서 마마가 투기하는 사람으로 몰리는 겁니까!"
나는 그 소식을 듣고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붓끝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소영아, 그 말이 궁 밖으로도 나갔다더냐."
"아직은 궁 안에서만 도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하루도 못 가서 대신들 귀에까지 들어갈 텐데요."
"그럴 테지. 그러라고 낸 소문일 테니까."
"예?"
"소문이라는 건 저절로 자라지 않아. 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물을 줘야 이만큼 커지는 거야."
나는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당 쪽 지붕이 보였다.
"누가 이 소문을 처음 냈는지 알아봐야겠어."
"별당 나인이라던데요."
"나인 혼자 이런 말을 지어내지는 않아. 누군가 뒤에서 부추긴 게 분명해."
나는 붓을 내려놓고 생각을 정리했다.
윤아리는 배후를 계산할 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오늘 만난 그녀는 오히려 순진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배가 부른 몸으로, 나를 마주하고서도 겁을 먹기는커녕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만드는 것은 다른 손이었다.
나는 사서관들이 올린 기록을 다시 펼쳤다.
종이를 넘기는 손가락이 점점 빨라졌다.
최근 반년 사이, 윤아리의 가문인 남작가와 자주 왕래한 대신이 하나 있었다.
호조참판, 정헌.
재정을 다루는 자리에 있으면서, 최근 남작가의 땅과 재물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나는 이미 기록해두고 있었다.
논 몇 마지기, 그리고 경기 외곽의 작은 별장 하나.
남작가의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산이었다.
그 우연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아, 정 참판 댁의 움직임을 조용히 알아볼 수 있겠니?"
"그럴게요. 그런데 마마, 이게 그 사람 혼자 벌인 일일까요?"
"아니. 혼자서는 이런 소문을 이렇게 빠르게 퍼뜨릴 수 없어. 누군가와 손을 잡았을 거야."
"손을 잡았다면… 대전 쪽 사람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문서가 오가는 자리에 사람이 있어야, 이런 흐름을 만들 수 있으니까."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기록을 뒤졌다.
정 참판의 이름이 나오는 문서들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그와 연결된 다른 이름들을 찾아나갔다.
호조의 지출 대장, 승정원의 문서 접수부, 그리고 최근 반년간의 인사 기록까지.
눈이 뻑뻑해지고 손끝이 무뎌질 때까지 종이를 넘겼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승정원의 젊은 주서, 김도현.
그는 대전의 모든 문서를 다루는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최근 그가 올린 문서 중 하나에, 이상한 표시가 있었다.
윤아리의 입궁 절차와 관련된 문서에서, 원래 있어야 할 확인 도장이 하나 빠져 있었다.
작은 흔적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절차가 이렇게 어그러졌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게 이상해.'
'이 도장이 빠진 걸 눈감아준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지.'
다음 날, 나는 김도현을 조용히 처소로 불렀다.
그는 젊고 마른 체구의 사내였다.
낯빛이 창백했고,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계속 옷자락을 만지고 있었다.
왕비가 직접 자신을 부른 것에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마마, 무슨 일로 저를..."
"이 문서를 보아라."
나는 그 앞에 문서를 내놓았다.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방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문서 위에서 떠나지 못했다.
"이 도장이 빠진 이유를 아느냐."
"그, 그것은..."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를 몰아세우지 않고, 대신 다른 방향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벌하러 부른 것이 아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서 부른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벌한다 해서 얻는 게 무엇이겠느냐. 나는 그저, 누가 이런 일을 시켰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김도현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윤 남작가 쪽에서 부탁이 있었습니다. 절차를 조금 서둘러 달라고. 저는 그저 사소한 일이라 여기고..."
"사소한 일이라니. 도장 하나가 사라진 게 어떻게 사소할 수 있느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마마."
그가 바닥에 이마를 대며 몸을 낮췄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대신 다시 물었다.
"부탁을 한 것은 남작가 사람이었느냐, 아니면 다른 이였느냐."
그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정 참판 대감께서 함께 오셨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정 참판이 남작가의 뒤에 있다는 건 짐작이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명확한 증언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감정도 함께 밀려왔다.
이 젊은 주서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나에게 사실을 말했다는 것.
궁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가 이렇게 드물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오늘 이 대화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 네가 보는 것들 중, 이상하다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조용히 전해줄 수 있겠느냐."
김도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궁 안에서 처음으로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얻었다.
그가 물러난 뒤, 나는 한동안 빈 문서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이걸로 정 참판과 남작가의 연결은 확인됐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대전에서 요구하는 건 소문에 대한 해명이지, 배후를 밝히는 게 아니니까.'
'조회에서 이걸 그대로 꺼내 놓을 순 없어. 증거가 더 필요해.'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대전에서 전언이 도착했다.
닷새 후 열리는 정기 조회에서, 왕비인 내가 직접 최근의 소문에 대해 해명하라는 명이었다.
나는 그 전언을 받고, 잠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글씨는 짧았고, 명료했다. 그리고 그만큼 냉정했다.
해명이라니.
잘못한 것이 없는 내가, 잘못한 사람처럼 나서야 하는 자리였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방 안의 촛불이 흔들리며 작게 소리를 냈다. 소영이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마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전언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조회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건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닷새.
정 참판이 무슨 수를 더 쓸지 모르는 시간이었고, 내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닷새 안에, 이 소문의 뿌리를 다 캐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전에, 저들이 먼저 나를 끌어내릴 수도 있어.'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방 안으로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음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