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이튿날부터 나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부른 것은 문서를 담당하는 사서관 몇이었다.
궁의 새벽은 늘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사서관들을 하나씩 불러들였다.
"오늘부터 전하의 모든 하교와 발언을 시각까지 정확히 기록해 나에게 올려라."
사서관들의 얼굴에 짧은 당혹이 스쳤다.
"마마, 그것은 사관의 소관이온데..."
"사관의 기록과 내 기록은 다르다. 사관은 나라의 역사를 위해 적지만, 나는 지금의 문제를 위해 적는 것이다."
사서관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궁에서 왕비의 명은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나는 그들에게 하나를 더 일렀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특히 별당 쪽 사람들에게는 절대."
사서관 중 가장 나이 든 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전하께서 물으시면 어찌 답해야 합니까."
"전하께서는 묻지 않으실 거다. 지금은."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 내 손에 쌓이는 기록이 늘어갔다.
날짜별로, 시각별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작은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몇 번이나 확인을 시켰다.
처음 며칠은 기록이 성겼다. 이헌의 동선을 완전히 따라잡기엔 사서관들의 눈이 부족했다.
나는 인원을 조금 더 늘렸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그날 밤, 붓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래된 기억이 밀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열아홉의 나이로 이 궁에 처음 들어왔다.
혼례는 화려했지만, 나는 그 화려함보다 그날의 절차를 더 선명하게 기억했다.
육례를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종묘에 고하고, 대비전에 예를 올리던 그 순서 하나하나를.
가마에서 내려 첫 걸음을 뗄 때, 발끝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까지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절차가 낯설었지만,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면 실수할 일이 없었으니까.
당시 이헌은 지금과 달랐다.
왕세자였던 그는 매사에 신중했고, 절차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어야 하오. 순서가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지는 것이오."
첫날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낮은 목소리였다. 등불 아래서 그의 옆얼굴을 처음으로 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좋아서, 나는 그를 믿었다.
혼인 후 몇 해 동안, 우리는 함께 정무를 논했다.
그는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결정에 근거를 더해주었다.
밤이 늦도록 서류를 펼쳐놓고, 그가 놓친 부분을 짚어주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붓을 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관계였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이 지나면서, 그는 조금씩 달라졌다.
외유가 늘었고, 절차를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정무를 논하자 청하면 다음에 하자는 말이 늘었고, 그 다음은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그 변화를 알아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은 자리가 바뀌면 변하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반년 전, 윤아리가 궁에 들어왔다.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후원의 나인 하나가 늘었을 뿐이었다.
낮은 신분에, 조용한 말투를 가진 아이였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나인이 지금은 왕의 아이를 배고, 왕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순서가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진다던 그 사람이, 이제는 순서를 스스로 부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은 고요했다.
촛불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책상 위에 놓인 붓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쥐고 있던 것도 아닌데.
'순서를 지키던 사람이었어. 그 사람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나는 그 생각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앞으로의 대응이었다.
붓을 다시 들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다음 날, 나는 소영을 불렀다.
"윤아리를 만나러 갈 것이다."
소영의 눈이 커졌다.
"직접이요? 그건... 마마께서 먼저 걸음을 하시는 게 맞는 일인지..."
"맞고 안 맞고를 따지기 전에, 내가 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위험하지 않을까요. 배가 부른 사람이고, 전하께서 아시면..."
"전하께서 아시기 전에 다녀올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소영은 더 말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그럼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안 돼. 너는 여기서 사서관들의 기록을 관리해."
"마마......"
"소영아."
나는 그녀의 이름을 짧게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소영은 더 말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나는 별당으로 향할 채비를 갖췄다.
화려한 예복이 아닌, 평범한 나들이 복장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왕비의 격식을 잃지 않는 선에서.
거울 앞에서 옷매를 다시 확인했다. 지나치게 소박하면 오히려 눈에 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 앞까지 따라왔다.
"마마, 정말 혼자 가시는 거예요?"
"그래야 그쪽도 방심할 테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소영아, 나는 왕비다. 그것도 잊지 마."
나는 짧게 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후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랜만이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지나는 나인들이 나를 알아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에게 눈짓으로 조용히 하라 일렀다.
별당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소리 내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
다만, 확인한다.
그것이 오늘의 원칙이었다.
손끝이 다시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천천히 내뱉었다.
별당의 문이 눈앞에 보였다.
그 안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나의 방문을 전혀 모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 웃음소리 사이로, 익숙한 다른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설마.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