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고블린 영애와 결혼합니다

3화

도윤은 자신의 방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탓인지 별빛조차 흐릿했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밤바람은 서늘하다기보다는 축축했다. 그는 그 흐릿한 어둠 속에서 오래전, 아니 정확히는 다른 삶에서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여든 해를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든 해는 단 한 순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얼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조용히 배제당하며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면 옆자리가 늘 비어 있었고, 사회에 나가서도 그의 인사에는 짧은 헛기침만이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는 웃었지만 등을 돌리면 눈을 찌푸렸고, 그 눈살이 남기는 잔상은 언제나 그의 뒷목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런 시선을 여든 해 동안 견디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도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거울 앞에 서는 일조차 하나의 전투처럼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다. 연애라는 것은 그에게 평생 닿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몇 번 마음을 준 상대들은 언제나 그의 진심을 알기도 전에 얼굴만 보고 떠났다. 어떤 이는 첫 만남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자리를 떴고, 또 어떤 이는 몇 달을 함께하고도 결국 마지막에는 “미안하지만 도저히 못 하겠어요”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무언가 결정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확신을 쌓아갔고, 그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한 굳은살처럼 그의 마음 표면을 덮어갔다. 그 결핍은 죽는 순간까지도 채워지지 않았다.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그 순간까지도, 그의 곁에는 손을 잡아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런데 죽고 나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강도윤이라는 이름의, 강자작가 사남의 몸속에 있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낯선 천장, 낯선 손, 낯선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유모의 얼굴까지도 모든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는 이 두 번째 삶에서라면, 적어도 자신의 재능만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상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열 살에 작은 잡화 거래를 시작해, 여든 해의 경험과 지식을 무기로 시장을 읽어냈다. 곡물 가격이 오를 계절을 미리 짐작해 창고를 채워두었고, 남들이 손대지 않는 변방의 물건에서 값어치를 찾아내는 안목을 키웠다. 열여섯이 된 지금 청람상회는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준대형 상회로 성장해 있었고, 상단의 어른들조차 그의 판단 앞에서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사업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연애 앞에서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도윤은 창틀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 채 낮게 숨을 내쉬었다. 선우서은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그는 곧바로 그녀가 겪고 있을 고통을 알아챘다. 얼굴 때문에 여섯 번이나 파혼당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소문을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섞인 은근한 조소까지도. 상단의 회계를 봐주는 늙은 서기가 차를 따르며 지나가듯 던진 말이었는데, 도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장부를 무심코 놓쳐버렸다. 그것은 여든 해 전 자신의 이야기였다. 종잇장이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마저 그날 저녁에는 어딘가 낯설게 들렸다. 서기는 당황해서 허리를 굽혀 종이를 주웠지만, 도윤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여든 해 전, 자신이 처음으로 거울 속 얼굴을 미워하게 되었던 그날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는 그날 밤, 청람상회의 서류를 정리하다 말고 문득 손을 멈추었던 것을 기억했다. 촛불이 흔들리며 서류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 그림자는 마치 오래전 여든 해의 자신을 닮아 있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봐주었다면, 그 여든 해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이상하게도 가슴 한복판이 뜨거워졌고, 그 뜨거움은 곧 하나의 결심으로 굳어졌다. 그녀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날 이후 도윤은 며칠을 잠을 설쳤다.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서은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했다. 상단의 정보망을 동원해 그녀가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그녀가 파혼당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물론 그 정보들 대부분은 소문의 파편에 불과했고, 정작 그녀의 진짜 모습은 여전히 흐릿한 안개 속에 있었지만, 도윤은 그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겠다는 마음만은 확고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공작가에 청혼을 넣었다. 강자작은 처음엔 반대했다. “네가 정신이 있느냐, 얼굴도 보지 않고 정혼이라니.” 그렇게 언성을 높였지만, 도윤은 그 앞에서 단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지, 저는 이 혼사를 물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 짧은 대답에 담긴 단호함에 강자작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세간에서는 이를 재산을 노린 도박이라 수군거렸다. 청람상회의 사남이 공작가의 재산과 명예를 탐내어 벌인 짓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어떤 이들은 도윤을 두고 뒤에서 비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도윤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계산이 아니라, 여든 해 동안 아무도 그에게 해주지 않았던 일을, 이제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는, 거의 절박한 갈망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결심 뒤에는 또 다른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작 그녀를 만났을 때,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윤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상단에서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였으나, 그것은 모두 숫자와 이익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거래처 상인이 눈을 부라리며 가격을 올려 부를 때도, 관리들이 뒷돈을 요구하며 은근한 위협을 가할 때도 도윤은 담담하게 응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정과 마음이라는, 여든 해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영역 앞에서 그는 열여섯 소년보다도 더 미숙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상상해 보았다. 그녀가 다가올 때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첫 만남에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손을 내밀어야 할지 아니면 그저 고개를 숙여야 할지. 그 모든 상상 속에서 자신은 늘 어딘가 어색하고 서툴렀으며, 그 어색함이 그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스며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도윤은 창문을 닫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유리에 닿은 손끝이 차가웠다. 상인으로서 쌓아 올린 자신감이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씁쓸했으나, 동시에 그는 그 낯선 두려움 속에서도 이상하게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여든 해 동안 단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낯설지만 분명한 용기였다. 며칠 뒤면 공작가에서 정혼 발표를 위한 대규모 연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초대장은 이미 청람상회에도 도착해 있었고, 붉은 인장이 찍힌 그 종이를 손에 쥐었을 때 도윤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선우서은과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시녀들이 상회 안에서 벌써부터 그의 예복을 준비하며 수선을 떨었지만, 도윤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 어떤 얼굴로 그녀 앞에 서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도윤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향해 몇 번이고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고, 창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그녀에게 무엇을 건네야 할지, 무슨 표정으로 다가가야 할지, 그는 상단의 어떤 거래보다도 그 하루를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감 밑바닥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또 하나의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보고도, 여전히 세상 모두가 그러했듯 등을 돌린다면. 그때는 자신이 여든 해 동안 쌓아온 그 지독한 확신을, 또다시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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