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2화

옥사는 어두웠다. 빛이 들어오는 곳은 천장 가까이 뚫린 좁은 창 하나뿐이었다. 그 창으로도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깥의 밝음과 안의 어둠이 경계를 이루는 희미한 선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돌벽에서 냄새가 났다. 곰팡이 냄새. 오래된 피 냄새. 젖은 흙냄새. 그리고 그 밑에, 누군가 오래전 여기서 죽어 나갔을 것 같은 냄새. 유이슬은 그 냄새들 사이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팔로 감싸 안은 채, 등을 돌벽에 붙이고 있었다. 돌벽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등에서부터 배어 들어와 뼈까지 닿는 것 같았다. 손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무거웠다. 살갗이 쓸려 붉게 부어 있었다. 손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사슬이 돌바닥에 끌리며 소리를 냈다. 챙, 챙, 챙. 그 소리가 옥사 전체에 울려 퍼졌다가 다시 침묵 속으로 삼켜졌다. 밤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처음 몇 시간은 두려움이 컸다. 발소리가 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은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갔다. 정적.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홀로 되짚는 지난 며칠의 기억들. 왕비의 침소로 불려 갔던 그날 밤. 왕비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졌던 미열. 손끝에서 흘러나오던 그 희미한 빛의 결. 왕비의 얼굴에서 핏기가 돌아오던 순간. 그리고 그 다음 날, 왕비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손을 대었을 때 왕비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다. 열이 내렸고, 숨이 고르게 돌아왔고, 눈빛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죽었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 유이슬은 몇 번을 되짚어도 알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었다. 발소리가 겹쳐 울렸다. 하나는 무겁고 규칙적인 걸음, 나머지 둘은 그보다 가볍고 빠른 걸음. 유이슬은 그 소리만으로도 누가 앞에 서고 누가 뒤를 따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관복을 입은 관리 하나와 병사 둘이 들어섰다. 관리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오랜 시간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서류 한 장을 펼쳐 보였다. 종이는 낡고 얇았으며, 위쪽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왕비 마마의 치료를 맡았던 것이 너였지." 유이슬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셔서 잠시 눈을 찌푸렸다. 옥사의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문밖의 흐린 빛에도 반응했다. "그렇습니다. 마마의 병을 낫게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 "모릅니다. 저는 그저—" 관리가 말을 잘랐다. "모른다고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화도, 조급함도 없었다. 그저 절차를 밟아 나가는 사람의 담담함이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감정이 실려 있다면 흔들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리에게는 흔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는 병사에게 손짓했다. 병사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무릎을 꿇렸다. 돌바닥에 무릎이 부딪히며 통증이 번졌다. 무릎뼈가 돌 위에서 미끄러지듯 눌리는 감각이 발끝까지 퍼졌다. "이실직고하라. 무엇으로 마마를 해했는가." "저는 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낫게 하려 했을 뿐입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의 내용은 흔들리지 않았다. 유이슬은 그 사실이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의 안에서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관리는 옆에 놓인 매를 들었다. 매는 짧고 단단한 대나무 채였다. 끝이 갈라져 있어, 살에 닿으면 그 갈라진 자리마다 상처가 났다. 첫 매가 떨어졌다. 등에서 불이 났다. 두 번째 매가 떨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세 번째, 네 번째. 그녀는 소리를 참았다. 이를 악물었다. 입술 안쪽을 깨물어 피 맛이 났다. 다섯 번째 매가 떨어질 때, 유이슬은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야 끝이 하얘지고, 그 하얀 빛 속에서 문득 도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하필 지금 그 얼굴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견딜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매질은 그렇게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몇 번이었는지는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을 그만둔 순간부터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매질이 끝나고, 관리와 병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이슬은 고개를 숙인 채 등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손끝에서 익숙한 온기가 흘러나왔다. 작은 빛의 결이 손끝을 타고 상처 위로 스며들었다. 빛은 은은했다.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약했지만, 상처가 있는 자리마다 스며들어 살갗을 다시 이어 붙이는 감각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웅— 낮은 울림이 손끝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 울림은 소리라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웠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파장 같았다. 그 순간, 감방 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 그 빛을 보고 있었다. "저게…… 뭐냐." 낮은 목소리였다. 지나가던 다른 관리였다. 조금 전 그녀를 심문하던 관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걸음걸이도, 목소리의 결도 달랐다. 유이슬은 급히 손을 거두려 했지만 늦었다. 상처는 이미 반쯤 아물어 있었다. 매질로 부어올랐던 자리가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것이 문틈으로도 뚜렷이 보였다. 붉게 부풀었던 살갗이 매끈하게 가라앉고, 찢어졌던 자리는 옅은 흔적만 남긴 채 아물어 있었다. 관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무심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계심이 들어차 있었다. 그는 몇 걸음 다가와 그녀의 등을 다시 살폈다. 손을 뻗어 등을 만져 보려다가, 손끝이 살갗에 닿기 직전 멈췄다. 마치 무언가에 데일 것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방금 그건 무엇이었느냐." 유이슬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힘의 정체를 스스로도 완전히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지녀 온, 다치면 낫는 손. 그것이 전부였다. "스스로 상처를 낫게 하는 술법이라니. 이것이야말로 마마를 해쳤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아닙니다. 저는 그저 치유하는 힘을 가진 것뿐입니다." "치유든 저주든, 사람의 몸에 손을 대어 결과를 바꾸는 힘이라면 그것은 술법이다." 관리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그는 뒤에 서 있던 병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병사가 급히 밖으로 나갔다. 아마 이 심문을 맡았던 관리를 다시 불러오려는 것이리라. 잠시 후, 처음의 관리가 돌아왔다. 두 관리는 문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유이슬은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술법"과 "죄목"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것은 분명히 들었다. 이윽고 처음의 관리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붓을 들어 서류에 무언가를 적어 넣었다. 유이슬은 그 붓끝이 무엇을 적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씌워질 죄목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붓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각, 사각.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운명을 하나씩 결정짓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 일은 위에 보고해야겠다." 관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관리를 향한 것일 수도,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관리들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어둠 속에서 유이슬은 다시 무릎을 감싸 안았다. 등의 상처는 나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나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손이었다. 이 손이 왕비를 낫게 했고, 이 손이 방금 자신의 등을 낫게 했다. 그런데 이 손 때문에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치유의 힘이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도현은 어디에 있을까. 그날 밤 느꼈던 그 뜨거움이, 그 아이에게 닿았던 감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손을 맞대었을 때 전해졌던 그 이상한 열기. 평소 자신의 힘과는 다른 결이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낫게 할 때 느끼는 그 부드러운 온기와는 달리, 그날은 마치 무언가가 서로를 알아보는 듯한 뜨거움이었다.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유이슬은 그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얼굴의 윤곽마저 흐릿하게만 그려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몸이 무거웠다. 지난 밤과 오늘 아침의 매질이 쌓인 피로가 이제야 몸 전체를 짓눌러 왔다. 잠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눈꺼풀은 자꾸 무거워졌다. 그때, 옥사 저편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훨씬 무겁고, 훨씬 위엄 있는 발소리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또렷하게 바닥을 딛는 소리였다. 서두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 그 발소리가 옥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방금까지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옥사 안의 정적이, 그 발소리 하나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병사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는 소리가 들렸다. 갑옷과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 무릎을 꿇는 소리, 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들. "태자 전하." 유이슬은 눈을 떴다. 심장이 갑자기 빨라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태자가 왜 이곳에, 이 어두운 옥사까지 걸음을 했는지. 그것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발소리가 그녀의 감방 앞에서 멈췄다. 멈춘 발소리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문 너머의 어둠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유이슬은 숨을 죽였다. 손목의 쇠사슬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이 자신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옥사 자체가 떨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문 밖에서, 낮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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