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북쪽으로 향하는 마차가 사흘째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점점 삭막해졌고, 초록빛이 옅어지며 회갈색 벌판이 넓게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던 설이연은 이제야 이곳이 왕도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실감했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몸이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맞은편에 앉은 강하온이 손을 뻗어 설이연의 팔을 가볍게 붙잡아주었는데, 그 손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설이연은 그것이 배려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멀지 않았습니다. 곧 성문이 보일 겁니다."
강하온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으나, 그 안에 담긴 긴장은 설이연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가 이 여정 내내 창밖을 살피며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설이연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덜컹.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멈춰 섰고, 그 소리와 함께 설이연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하빈성의 성문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설이연은 그 성벽이 왕도의 화려한 궁궐과는 대조적으로 투박하고 견고하게 쌓여 있다는 것에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는데, 이곳은 적어도 겉치레보다 실용을 앞세우는 곳이라는 것을 그 돌 하나하나에서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눈빛에도 여유가 없었고, 그들의 갑주는 낡고 손질이 급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지역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쪽입니다."
강하온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성 외곽에 자리한 작은 진료소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씁쓸한 약초 냄새와 함께, 침상 여러 개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은 채 미약하게 숨만 내쉬고 있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방 안의 공기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설이연은 문턱을 넘어서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는데, 이렇게 많은 환자가 한꺼번에 누워 있는 모습을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고, 서책 속의 문장으로만 접했던 병증이 이렇게 생생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아가씨가 그……"
진료소 안쪽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다가오며 미심쩍은 눈빛으로 설이연을 훑어보았는데, 그가 바로 하빈령의 의사 허담이었다.
허담의 손끝에는 오랜 세월 약초를 다뤄온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고, 눈가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 며칠의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설이연은 이 노인이 얼마나 절박하게 환자들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왕도에서 온 학자라고 들었습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쭙지요. 이 병을 실제로 치료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허담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의심이 담겨 있었고, 설이연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낯선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원인을 알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치료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병이 무엇으로 인해 발생했는지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짐작이라니, 그런 말로는 이 사람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허담이 언성을 높이며 침상 하나를 가리켰고, 그 안에 누운 젊은 남자의 얼굴은 이미 핏기를 잃어 창백했다.
"이 사람은 벌써 보름째 눈을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만 벌써 다섯이 이런 상태에 빠졌고, 처음 발병한 노인은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설이연의 등줄기로 서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는데, 증상의 양상이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외딴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설이연은 속으로 되뇌며 침상 사이를 천천히 걸었고, 그 걸음마다 환자들의 숨소리가 얼마나 얕고 불안정한지를 확인해 나갔다.
"환자들이 발병하기 전, 공통적으로 접했던 것이 있습니까. 음식이든, 향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설이연의 질문에 허담은 잠시 미간을 좁히다가, 생각을 더듬는 듯 대답했다.
"글쎄, 몇몇은 습지 근처 마을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습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설이연의 머릿속에서 월식수련의 서식지가 겹쳐졌고, 그녀는 서둘러 침상 곁으로 다가가 환자의 손끝과 입술 색을 살폈다.
손끝은 푸르게 변해 있었고, 입술 주변에는 옅은 자줏빛 얼룩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신경 마비성 독소가 체내에 축적되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설이연은 손끝으로 환자의 맥을 짚어보았는데, 맥박이 정상보다 현저히 느리게 뛰고 있었고, 그 느림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월식수련 중독입니다."
설이연의 단언에 허담의 표정이 굳었고, 뒤에서 지켜보던 강하온 역시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월식수련이라면, 그 극약으로 분류된……"
"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월식수련은 원래 습지에서만 극히 드물게 자생하는데, 이렇게 다수의 환자가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은 자연적인 접촉만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월식수련이라 불리는 것은, 달빛이 없는 밤에만 은밀히 꽃을 피운다 하여 그 이름이 붙었는데, 습지의 가장 깊은 곳,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자리에서만 자라며, 그 뿌리에서 추출되는 독소는 극히 미량으로도 신경을 마비시켜 결국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독초가 저절로 마을 사람들의 몸속에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고, 설이연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에 진료소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고, 강하온은 아무 말 없이 창백한 환자들을 바라보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채집이든, 실험 도구든, 인력이든, 무엇이든 지원하겠습니다."
강하온의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이 사태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겠다는 결의가 배어 있었고, 설이연은 그의 옆얼굴에서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선…… 이 마을에서 최근 새로 들어온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향낭이든, 장식품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허담은 여전히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하는 눈치였으나, 죽어가는 환자들을 앞에 두고 더는 의심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한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진료 기록을 모두 보여드리겠습니다. 대신, 만약 이 사람들을 살리지 못한다면……"
허담이 말을 흐리며 설이연을 응시했고, 그 눈빛에는 오랜 세월 환자를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게가 담겨 있었는데, 설이연은 그 무게를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살릴 겁니다. 반드시."
그 다짐이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라는 것을, 설이연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새기고 있었다.
허담은 잠시 설이연의 얼굴을 살피다가, 마침내 진료소 안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그녀를 이끌었고, 그 방 안에는 그동안 기록해온 진료 기록들이 낡은 종이 뭉치로 쌓여 있었다.
"여기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처음 발병한 노인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적어두었습니다."
설이연은 그 기록들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고, 종이마다 배어 있는 먹 냄새와 함께 허담이 밤을 새워가며 적었을 절박함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기록을 넘기던 설이연의 손끝이 어느 한 장에서 멈추었는데, 그 장에는 발병 시기와 함께 마을에 새로 들어온 물건에 대한 짧은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신구 상인이 다녀갔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설이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허담을 바라보았다.
"이 상인에 대해 더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허담은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자가 다녀간 직후부터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인이 판 물건을 산 집에서만 사람이 쓰러졌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진료소 안의 공기가 다시 한 번 무겁게 가라앉았고, 강하온의 시선이 설이연을 향했는데, 그 눈빛 속에는 이제야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안도와 동시에, 그 실마리가 향하는 곳이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함께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