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학원 복도를 걷는 동안, 시선이 따라붙는 걸 모르는 척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첫날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힐끗거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딴청을 부리는 정도였다. 이틀째부터는 노골적인 관찰로 바뀌었다. 복도 모퉁이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대놓고 나를 훑어보는 무리가 생겼고, 사흘째가 되자 몇몇은 아예 손가락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 가는 거 봤어? 계속 참고 있는 거 아니야?"
"설마 그거 때문에 성격이 그렇게 차가운 거 아냐? 뭔가 쌓인 게 있어서……."
"아니, 그보다 저번에 강당 뒤에서 이상한 빛 봤다는 얘기 있잖아. 그거 이서윤 영애랑 관련 있다던데."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순간, 그것이 소문에 근거를 더해주는 증거가 될 것 같았다.
'침착해라. 저들은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심심해서 던지는 말일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등 뒤로 꽂히는 시선의 온도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한소은은 그런 나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윤아, 힘들지 않아…?"
"안 힘들어."
"거짓말."
"안 힘들어."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힘들면 나한테 말해도 돼. 나 정말 아무한테도 안 옮길 거니까……."
한소은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 내 옆에 붙어 조잘거렸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확신도 없이 위로를 던지고, 그 위로가 부족할까 봐 뒷말을 계속 덧붙였다. 마치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대답을 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소은을 돌아보았다.
"고마워."
짧게 대답했지만, 그 짧은 말이 진심이라는 건 그녀도 알아챈 것 같았다. 한소은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심한 듯 어깨를 살짝 늦췄다.
"그, 그래!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나 진짜 비밀 잘 지켜!"
그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옅게 웃었다. 웃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문제는, 이 고요한 우정 하나로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강예린은 매일 강당 앞을 지날 때마다 아쿠아페어리를 어깨에 얹고 다녔다. 정령은 작은 물방울을 반짝이며 흩뿌렸고, 그 물방울들은 햇빛을 받아 조그만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그 광경을 보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매번 감탄이 서렸다.
"저것 봐, 오늘도 나왔어."
"진짜 예쁘다……. 강예린 영애는 정령이랑 저렇게 친한데."
"그러고 보니 이서윤 영애는 정령 소환한 적 있나?"
누군가 그렇게 묻자, 다른 누군가가 곧바로 대답했다.
"글쎄, 소환식 때도 아무것도 못 불렀다는 얘기 있잖아. 그것 때문에 지금 저렇게 이상해진 거 아니야?"
나는 그 대비를 못 본 척할 만큼 무디지 않았다.
'밝힐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늑대 정령의 약속을 이 자리에서 그대로 말해버린다면 어떨까.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면, 저 손가락질도 멈추고 저 수군거림도 사그라들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세운 가정을 곧바로 부정했다.
'증거가 없다. 그 늑대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그건 내 착각이나 몽상으로 취급될 뿐이다. 오히려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문만 하나 더 붙는다.'
실무적으로 따지면, 침묵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소환식에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었고, 거기에 늑대 정령과의 계약을 덧붙인다 해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헛소리를 지어낸다는 비웃음만 더할 뿐이다.
그런데 그 실무적인 결론이, 마음을 조금도 가볍게 해주지 못했다.
점심시간, 식당 구석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내 앞으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서윤 영애."
고개를 들었다. 강예린이었다. 그녀 뒤로 두어 명의 추종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쿠아페어리는 그녀의 어깨 위에서 작은 물방울을 만지작거리며 천진하게 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별건 아니고요. 그냥, 요즘 좀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요. 걱정돼서."
걱정이라는 말투에 걱정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그 말을 정확히 반대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뒤에 서 있던 추종자 하나가 슬쩍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저희끼리 얘기하는데, 서윤 영애가 요즘 화장실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참는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또 그 소문이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강예린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슬쩍 들어 보였다. 아쿠아페어리가 그 움직임에 맞춰 반짝이는 물방울을 하나 더 흩뿌렸다. 주변 테이블에서 몇몇이 그 모습을 흘끔거렸다.
'왜 저렇게 여유로운 걸까.'
'설마 이미 뭔가 아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나가려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생각을 접었다. 근거 없는 의심을 부풀리는 건 지금 상황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예린은 몸을 돌리기 직전, 다시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방금 전보다 더 여유롭고, 더 확신에 차 있었다.
"곧 있을 왕실 다과회 때 뵙겠습니다. 그날,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남기고 강예린은 추종자들을 데리고 유유히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눈으로 좇았다.
'재밌는 일이라니.'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단순한 인사치레였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강예린의 눈빛에는 분명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미 승부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