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협회 게시판은 늘 사람이 몰리는 곳이었다.
나는 서아. 윤서아. 도현이랑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꿉친구고, 이번 심사에 힐러로 참가한다.
승급 심사를 신청하러 온 날, 게시판 앞에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인원이 목을 빼고 종이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 일 났나.'
협회 게시판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몰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개는 심사 일정이나 등급 조정 공고 정도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흑월 미궁, 최근 스탠피드 조짐?"
누군가 종이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헛웃음을 흘렸다.
"에이, 그럴 리가. 거기 등급 낮은 데 아니었어?"
"모르지. 나도 방금 봤어."
'뭐야, 그게.'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종이를 읽었다. 어깨로 밀고 들어가면서도 속으로는 '이 사람들아, 좀 비켜봐, 나도 좀 살자' 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삼켰다. 협회 앞에서 시비 붙어봐야 좋을 거 없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흑월 미궁 심층부에서 몬스터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는 목격 보고가 몇 건 있었고, 협회는 그것이 '스탠피드'—몬스터가 대량으로 지상까지 밀려 나오는 현상—의 전조일 수도 있다고 판단해 조사 중이라는 거였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구역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도 잠깐 언급됐지만, 그 아래로 작은 글씨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다만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현재 승급 심사 진행에는 지장이 없음을 확인함.'
'지장이 없다고 써놓은 거 자체가 왠지 불안한데.'
이런 문구는 꼭 뭔가 있을 때 나온다. 걱정 마시라고 써놓은 안내문일수록 뒤집어 보면 걱정할 이유가 넘쳐난다는 걸, 나는 그동안 살면서 여러 번 배웠다.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난이도 평이함'이라고 공지 뜬 날은 다들 시험 보고 나와서 울었으니까.
나는 종이를 다시 접어놓고 자리를 떴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협회가 괜히 사람 목숨 걸고 장난치겠나 싶었고, 어차피 나는 참가 신청서를 내야 했다.
심사 신청서를 접수하러 창구로 갔을 때, 담당 직원이 파티원 명단을 보여줬다. 직원은 서류철을 넘기며 손가락으로 이름을 짚었다.
"이도현 님 파티에, 힐러 윤서아 님, 그리고 임시 배정으로 탱커 한 분, 마법사 한 분이 붙습니다."
"임시 배정이요?"
"네, 이번 회차에 인원이 안 맞아서요. 준서 님이랑 하늬 님이신데, 둘 다 실력은 검증됐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직원이 서류를 내밀며 웃었다. 직업적인 미소였다. 웃는 얼굴로 무슨 말을 해도 다 괜찮게 들리게 만드는, 그런 웃음.
'검증됐다는 말은 나도 못 믿겠는데.'
협회가 검증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어이없는 실수로 파티 전멸시킨 케이스를 나는 두 눈으로 본 적 있다.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등급을 올리려면 파티 규모를 맞춰야 했고, 도현이랑 나 둘만으로는 심사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규정이 그랬다. 4인 이상, 최소 두 개 역할군 이상. 힐러 하나 탱커 하나로는 서류에 도장도 안 찍혔다.
"서명은 여기, 여기, 여기에 해주시고요."
"네."
나는 순순히 서명했다. 펜을 쥔 손이 살짝 무거웠던 건, 아마 아까 본 그 게시판 종이 때문이었을 거다.
도현이랑 나는 어릴 때부터 늘 같이 다녔다. 걘 자기가 세다고 생각하는 애였고, 나는 그걸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늘 옆에서 잔소리하는 역할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걔가 동네 형들이랑 싸우다 코피 터진 걸 내가 손수건으로 닦아준 적도 있었다. 그때도 걘 코피 흘리면서 "나 안 졌어" 이 소리부터 했다. 어이가 없어서 손수건 던지고 그냥 갔던 기억이 난다.
모험가가 되겠다고 마을을 떠날 때도 같이 떠났다. 그때 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 다 정복할 것 같은 얼굴. 마을 어귀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뒷모습.
'너 그 얼굴 하고 몬스터한테 처음 도망칠 때 진짜 웃겼어.'
첫 사냥 나갔던 날, 도현은 슬라임 하나 보고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세상 정복할 얼굴로 슬라임한테 도망치는 꼴을 보고 나는 배 잡고 웃었다. 걘 아직도 그 얘기 꺼내면 화낸다. 그래서 더 재밌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좋아한다는 말은 못 했다. 십오 년 지기 사이에 그런 말이 어디 쉽게 나오나. 그냥 매번 축복 스킬을 걸어줄 때마다, 걔 손을 잡을 때마다 조금 더 오래 잡는 정도로 만족했다. 도현은 눈치가 없어서 그게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눈치는 있는데 모른 척하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른다. 물어볼 배짱도 없고.
미궁에 들어서기 전, 준서랑 하늬를 처음 만났다.
준서는 몸집이 크고 조용한 애였다. 팔뚝이 내 허벅지만 했고, 방패를 등에 메고 있는데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인사할 때도 목소리가 낮고 짧았다.
"준서예요."
그게 끝이었다.
하늬는 딱 봐도 강한 척이 습관인 애였다.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자세부터가 그랬다.
"하늬. 마법사 5년 차. 걱정 마요, 나 사고 안 쳐요."
사고 안 친다고 말하는 애들이 꼭 사고 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속으로 '두고 보자' 싶었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처음엔 서로 서먹했다. 초면인 사람 넷이 미궁 하나 들어가겠다고 모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현이 앞서서 말을 붙이니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걘 그런 쪽으로는 항상 잘했다. 낯 두꺼운 건지 사람 좋은 건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는데, 아무튼 효과는 있었다.
"밥은 먹고 왔어요?"
"네."
"긴장 안 해도 돼요. 서아가 힐 잘 넣어줘서."
도현이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준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하늬도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도현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걘 코를 킁킁거리더니 표정이 딱딱해졌다. 원래 이랬다. 짐승 냄새를 남들보다 먼저 맡는 게 걔 특기였고, 그 특기가 지금까지 우리 파티를 몇 번이나 살렸다.
"몬스터가 많아. 평소보다."
그 말에 준서와 하늬의 표정도 굳었다. 나는 순간 게시판에서 봤던 종이를 떠올렸다.
'설마 그게 진짜였던 거야?'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협회 담당 직원의 그 직업적인 미소가 생각났다. 지장 없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웃으면서 말했던 게.
"얼마나요?"
하늬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방금까지의 여유가 빠져 있었다.
"모르겠어. 그런데 많아. 확실히, 많아."
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준서는 말없이 방패를 고쳐 잡았다. 손끝이 방패 손잡이를 몇 번이나 다시 쥐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미궁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전해져 왔다. 발밑의 흙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뭐야."
하늬가 지팡이를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협회 게시판의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지장이 없다고 했잖아. 이 개소리를 누가 써놓은 거야.'
진동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진동 사이로, 확실히,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겹쳐 들려오기 시작했다.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 발톱이 바위를 긁는 소리, 그 위로 겹치는 수많은 숨소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일지도 몰랐다.
"다들 벽 쪽으로!"
도현이 소리쳤다.
그 순간 미궁 안쪽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