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흔살 지하 사냥꾼

5화

쾅! 하진우의 몸에서 뻗어나온 무언가가 큰 개체의 돌진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충격이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뼈가 울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번엔 시야가 새하얘지지 않았다. 오히려 또렷하게 보였다. 검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그의 팔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팔 표면 아래로 뭔가가 꿈틀거리며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보인다.' '이게... 뭐지?' [알림: 이례 계열 각성 - 잠재 명칭 [포식자의 그림자] 임시 부여.] [해당 힘은 대상의 생명력을 소모합니다.] 건조한 문장이 눈앞을 스쳐 갔다. '생명력을 소모한다고?' 숨이 거칠어졌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빨려 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도 없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큰 개체가 튕겨 나갔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바닥을 긁는 발톱 소리가 귀를 긁었다. 외눈 두 개가 동시에 그를 노려봤다. 으르릉- 크르르- 두 마리의 울음소리가 겹쳐 울렸다. 먼저 있던 작은 개체까지 다시 자세를 낮췄다. 몸을 잔뜩 웅크리며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온다.' '한 번에 상대해야 해.' 하진우는 남은 채집기 조각을 손에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미끄러웠다. 그리고, 팔을 들었다. 검붉은 아지랑이가 그의 손끝에 모여들었다. 마치 그의 의지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부르르- 아지랑이가 손끝에서 진동하듯 떨렸다. '이걸로.' 작은 개체가 먼저 달려들었다. 속도가 아까보다 더 빨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몸을 낮추며 아지랑이를 뻗었다. 서걱! 작은 개체의 몸이 그대로 절단됐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잘려나간 몸통이 두 번 정도 파닥이다 멈췄다. 그러나 곧바로 몸이 부서지듯 흩어지며 검은 안개로 변했다. 안개가 사라진 자리에는 동색 금속 덩어리 하나만 남았다. '저게... 자원이구나.' '죽으면 저렇게 되는 건가.' 놀랄 틈도 없었다. 큰 개체가 곧바로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바닥이 움푹 꺼질 정도로 무거운 걸음이었다. 하진우는 몸을 회전시키며 다시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쾅! 이번엔 완전히 막히지 않았다. 어깨가 날카롭게 뜯겨 나갔다. 살점이 뜯기는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으아악!" 비명이 터졌다. 시야 한쪽이 붉게 물들었다. 피가 뿜어져 나오며 옷을 적셨다. [경고: 잔여 생명력 위험 수준.] 글자가 다급하게 깜빡였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하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어깨에서 흐르는 피가 손끝까지 흘러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았다. 검붉은 아지랑이가 그의 팔 전체를 감쌌다. 이번엔 유난히 짙었다. 마치 팔 전체가 검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큰 개체가 마지막 돌진을 시작했다. 크아아아- 땅이 흔들릴 정도의 포효였다. 하진우는 정면으로 맞섰다. "...끝내자." 짧은 한마디였다. 서걱! 두 힘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순간의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큰 개체의 몸이 그대로 갈라지며 무너졌다. 검은 안개가 흩어지고, 더 큰 동색 금속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 하진우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이겼다...' 온몸이 떨렸다. 손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어느새 전신으로 퍼져 있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도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어깨의 상처가 뒤늦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살았다. 진짜 살았어.' [알림: 첫 이례 개체 처치 확인.] [탐색자 하진우, 등록 정보에 특기 사항이 추가됩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어디선가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지하빌 전체가 아주 잠깐, 숨을 멈춘 듯했다. 공기가 미세하게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멀리 어둠 속, 아무도 없어야 할 통로 끝에서 은은한 빛이 반짝였다. 마치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빛이었다. 빛은 딱 한 번 깜빡였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하진우는 그 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어깨를 감싸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동색 금속 덩어리 두 개를 챙겨 넣는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날 밤, 등록소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축하가 아니었다. 등록소 문을 열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익숙한 얼굴들이 인사를 건넸을 텐데, 오늘은 다들 그를 슬쩍 보고는 시선을 피했다. "하진우 씨, 잠시 사무실로 오시겠습니까." 낯선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표정에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뭐야, 이 사람들.' '등록 확인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깨의 상처는 이미 대충 지혈해 놓았지만, 지금 느껴지는 통증은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지하빌은 그를 살아남게 해주었지만, 이제는 다른 시선들이 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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