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만렙 헌터의 버튜버 부캐

3화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표현이 이럴 때 정확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다리는 이미 바닥을 박차고 있었고, 그 검은 갑각의 앞다리가 넘어진 스탭을 향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옆에 놓여 있던 소화기를 낚아채 그대로 놈의 관절 부위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소화기가 완전히 우그러지며 튕겨 나갔지만, 놈의 앞다리도 방향이 꺾이며 바닥을 대신 내려찍었고, 나는 그 반동을 이용해 스탭을 붙잡아 뒤로 끌어냈다. 손바닥이 얼얼했다. 소화기 손잡이가 부러지면서 파고든 모서리가 살갗을 파고들었는데,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괜찮으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답을 들을 여유는 없었다. 놈이 이미 몸을 튼 채로 나를 향해 상체를 곧추세우고 있었으니까. 캬아아악- 놈의 정체를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각의 무늬, 다리 관절의 개수, 그리고 저 특유의 울음소리까지. 이건 D급 게이트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개체였다. "저거 C급이잖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조차 알아듣지 못한 채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는데, 그 반응이 오히려 상황의 심각성을 더 실감하게 만들었다. 등급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크고 무서운 벌레 한 마리로 보일 뿐일 테니까. 등급이 잘못 관리된 게이트, 혹은 관리 소홀로 인해 하위 등급 몬스터 사이에 상위 개체가 섞여 자란 경우였다. 이런 사고는 드물지만 발생하면 통상 D급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나온다. 협회 기준으로는 이런 개체가 확인되는 즉시 시설을 폐쇄하고 A급 이상 헌터를 투입하는 게 원칙인데, 지금 이 건물 안에는 그런 헌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존재는 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생각은 거기까지였고, 몸은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놈이 앞다리를 다시 들어 올리는 그 타이밍, 나는 관절 사이 가장 얇은 틈을 향해 몸을 낮춰 미끄러져 들어갔고, 근처에 나뒹굴던 파티션 철제 프레임을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쥔 채, 그대로 놈의 목덜미 아래 연결 부위를 찔러 넣었다. 프레임 끝이 갑각을 파고드는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는데, 예상보다 훨씬 단단해서 순간 이가 갈릴 정도로 힘을 더 실어야 했다. 쩌적- 갑각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놈은 한 번 크게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털썩. 건물 전체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숨소리, 그리고 그보다 큰 정적. 누군가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떨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이 상황을 찍고 있었는데, 나는 그제야 그 카메라 렌즈들을 의식하며 속으로 아, 이거 곤란한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오세형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오만함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던 그 시선이, 지금은 뭔가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사람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손에 든 철제 프레임을 내려놓으며, 아,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등급 인증도 없는 신인 라이버가 C급 개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게 알려지면, 그건 단순한 화제성이 아니라 의심으로 번질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날 저녁, 사건은 이미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었다. 목격자들이 찍은 흔들리는 영상 속에서 내 얼굴은 다행히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단주엔터 소속 신인 라이버가 탑라인 사옥 몬스터 사고를 단독으로 제압했다'는 제목의 글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댓글은 이미 수천 개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반응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순수한 놀라움과 찬사였고, 다른 하나는 저거 조작 아니냐, 등급도 없는 애가 C급을 어떻게 잡냐는 의심이었다. 허지원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붙잡고 몇 번이나 몸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손목을 잡고 돌려보고, 옷깃을 들어 옆구리를 확인하고, 심지어 뒷목까지 살피는 손길이 거의 병원 진찰에 가까웠다. "다친 데 없어요? 진짜 없어요?" "네, 진짜 없어요." "어떻게 그런 걸...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현씨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요?" 허지원의 목소리가 떨렸는데, 그 안에는 걱정과 함께 다른 불안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불안의 정체가 뭔지 대략 짐작이 갔다. "세준씨 때도... 갑자기 주목받고 나서부터 모든 게 이상하게 흘러갔어요. 저는 그런 거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박세준이라는 이름이 다시 나왔다. 나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허지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 걸 눈치챘지만, 이번에도 굳이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캐물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괜찮을 거예요. 저는 세준씨랑 달라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허지원은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씨는 뭔가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쳐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며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그냥 진짜로 별거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개체는 A급 기준에서는 산책하다 마주치는 들개보다 조금 더 위협적인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그 말을 여기서 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게 뻔했으므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 그 대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표실에서 급하게 회의가 열렸다. 나도 불려 들어갔는데,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이해하기 힘든 숫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매출, 서버비, 인건비, 그리고 그 옆에 붉은 글씨로 적힌 마이너스 표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사건 덕분에 우리 회사 이름이 알려지긴 했는데..." 대표가 말끝을 흐리며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솔직히 말할게요. 단주엔터 지금 상황 별로 좋지 않아요. 세준씨 사건 이후로 광고주들 발 다 뺐고, 남아 있는 라이버들 매출로는 서버비랑 인건비도 겨우 맞추는 수준이에요." 나는 언젠가 봤던 붉은 그래프를 떠올렸다. 우상향이어야 할 선이 완전히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던 그 그래프. "그럼 얼마나 여유가 있는 거예요?" "길게 잡아도 세 달." 세 달이라는 말에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허지원은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고, 대표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도현씨한테 관심 가지는 곳들이 좀 있어요. 오늘 오전에도 벌써 두 군데서 콜라보 제안이 들어왔고." 대표가 서류 한 장을 내 앞으로 밀며 말했다. "이걸로 회사를 살릴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대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콜라보만으로는 부족해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데... 도현씨,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대표가 내민 다른 서류에는 '비정규 던전 입점 레이드 방송 - 테코 입레'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정식 등급 인증 없이, 라이버가 직접 던전에 들어가서 실황을 찍는 콘텐츠예요. 인증 절차 없이 진행하는 거라 위험 부담이 크고, 문제 생기면 방송 정지에 자격 정지까지 갈 수 있는 방식이라... 원래는 저희가 절대 안 시키는 거긴 한데." 비정규 던전 입점 방송이라는 건 협회 승인 없이 진행하는 만큼 시청자 입장에서는 훨씬 자극적으로 보이는 콘텐츠였다. 실제 등급보다 낮게 소개된 헌터가 던전에 들어가서 위태로운 전투를 벌이는 그림, 그게 이 방송의 핵심이었다. 시청자들은 그 위태로움에 몰입했고, 그만큼 후원과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나오는 편이었다. 다만 그 위태로움이 진짜라면 문제였다. 허지원이 옆에서 서류를 낚아채듯 눌러 잡았다. "대표님, 이건 아니죠. 도현씨는 방송 경력이 이제 겨우 삼 개월인데." 나는 그 서류를 다시 가져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등급 인증 없이 던전에 들어간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내가 A급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숨긴 채, 신인의 얼굴로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서류에는 지원 예정 던전의 예상 등급도 적혀 있었는데, D급에서 C급 사이. 아까 그 벌레보다 약간 더 강한 것들이 나오는 정도였다. 위험하다는 건 알았다. 정체를 들키면 그 자리에서 방송이 끝날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협회 쪽에서 자격 문제를 걸고넘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세 달 안에 무너진다면,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할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회의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고, 허지원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이미 말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의 절망이 담겨 있었다. 대표는 서류를 다시 가져가며 옅게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초조함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럼 이번 주 안으로 던전 스케줄 잡을게요. 준비 단단히 하고 가야 해요, 도현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D급에서 C급 사이 던전이라면, 아까 그 벌레 한 마리 잡는 것보다도 손이 덜 갈 일이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어떻게 신인처럼 보이느냐는 것이었는데, 그건 지금 걱정해봐야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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