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만렙 헌터의 버튜버 부캐

1화

방송을 켜기 전에 나는 항상 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헤드셋 위치를 두 번 확인하고, 카메라 앞 조명을 손끝으로 살짝 밀어 각도를 잡고, 마지막으로 모니터 구석에 뜬 트래킹 프로그램이 내 표정을 제대로 따라오는지 입을 크게 벌려 확인하는 것까지가 한 세트였다. 여기에 하나 더, 방송 시작 삼십 초 전에는 반드시 물 한 잔을 마셔둬야 했는데, 캐릭터 톤으로 세 시간을 버티려면 목이 상당히 갈리는 편이라 이걸 빼먹으면 나중에 목소리가 갈라져서 시청자들이 "산군님 목 왜 그래요"를 도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화면 속의 나는 사라지고 호랑이 무늬를 두른 반인반호 캐릭터, '산군 버튼'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오늘도 산군 왔다아-" 방송을 켜자마자 채팅창이 몇 줄 올라오긴 했지만, 숫자로 보면 초라했다. 구독자 3,040명. 3개월째 이 짓을 하면서 늘어난 숫자가 딱 이 정도였고, 옆방 스트리머는 하루 방송으로 몇백씩 늘리는 걸 보고 나면 솔직히 허탈해질 때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 낮에 지나가다 본 신인 여캐 라이버 방송은, 첫 방송인데도 벌써 오천 명을 넘겼더라. 뭐, 세상이 그런 거지.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숫자에 목숨 걸 성격도 아니었고, 목적이 다른 데 있었으니까. 채팅을 읽어 내리다가 낯익은 닉네임 하나가 눈에 걸렸다. "버튠아 그냥 접어. 남캐는 도태됨ㅋㅋ" 그 밑으로 줄줄이 비슷한 말들이 이어졌다. "여캐 라이버들 후원 몇십씩 꽂히는 거 봤는데 이건 뭐." "남자 캐릭터는 팬층 자체가 얇아서 성장 곡선이 애초에 다름ㅋㅋ" "산군님 죄송한데 진짜 접으심이" 굳이 나를 걸고넘어지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매번 나오는 소리였고, 심지어 오늘은 새로운 레퍼토리까지 추가됐다. "근데 목소리는 왜 저렇게 저음이에요 컨셉이에요?" 하-. 이 씨발놈들은 방송할 때마다 꼭 이런 소리를 한 번씩 하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한가 싶었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넘겼다. 속으로는 이미 저 채팅 몇 개를 다 캡처해서 나중에 심심할 때 손절 리스트에 올려둘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런 걸 티 낼 만큼 어리숙하지도 않았다. "그런 말 들으니 서운한데요, 여러분. 그래도 산군은 안 접습니다." 능글맞게 웃어 보이자 채팅창은 다시 잠잠해졌고, 나는 오늘의 콘텐츠, 신작 던전 탐사 게임 플레이를 이어갔다. 게임 속 몬스터 생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정확한 습성을 줄줄 읊어버리고 말았다. "이 개체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웅크리고 있다가, 진동을 감지하면 그때부터 반경 오 미터 안의 소리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발소리보다 심장 박동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그래서 이럴 땐 숨을 참고 심박수를 낮추는 게 오히려 안전한데, 게임에서는 그냥 안 움직이면 되니까 편하네요." 말을 하다가 아,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우수수 올라왔다. "그거 게임 설정집에도 안 나온 내용인데요?" "산군 버튼 던탐사 자격증 있는 거 아님?ㅋㅋㅋ" "이 정도면 그냥 도감 만드셔야 할 듯" 다행히 다들 그냥 웃어넘겼다. 신인 스트리머가 던전 관련 지식이 좀 있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얼른 말을 돌렸다. "제가 이 게임 리뷰 영상을 좀 많이 봐서요. 다들 아시죠, 저 준비성 갑인 거." 준비성이 아니라 실전 경험이었다는 걸, 저들이 알 리는 없었다. --- 던전 탐색사 자격증은 국가 공인 등급 체계로 나뉜다. E급부터 시작해 D, C, B, A, 그리고 최상위 S급까지, 총 여섯 단계로 구분된다. E급은 형식상 발급되는 입문 등급이고, 실질적으로 던전 내부 활동이 허가되는 건 D급부터다. A급 이상은 국가 소속 탐사대나 대형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게 일반적이며, S급은 전국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진입 가능한 던전의 심도가 달라지고, D급이 접근할 수 있는 던전과 A급이 접근할 수 있는 던전은 아예 다른 세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고등학교 이 학년 때 D급 자격증을 땄고, 삼 년 만에 A급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신인 버튜버로 위장해 살고 있다. --- 방송을 마치고 헤드셋을 벗자 목덜미가 뻐근했다. 세 시간 내내 캐릭터 톤을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체력을 갈아먹는 일이라는 걸 이 일을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목뒤를 몇 번 꾹꾹 누르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뻐근한 허리를 젖히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사무실 문을 열자 허지원이 모니터 세 대를 켜놓고 뭔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그래프와 숫자들이 어지럽게 떠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는 소리에 허지원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도현씨, 오늘 방송 채팅 반응 좀 안 좋았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오는 걸 보면, 이 사람은 정말로 방송 하나하나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타입이었다. 실시간으로 채팅까지 다 챙겨보는 매니저가 몇이나 될까 싶었지만, 허지원은 늘 그랬다.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이잖아요." 내가 대충 넘기려 하자 허지원은 미간을 좁히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세준씨 때도 처음엔 그런 식이었어요. 그냥 넘길 수 있는 말들이 쌓이다가..." 말을 흐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의 눈빛 안에 뭔가 오래된 상처 같은 게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세준씨가 누군지, 지금 어디 있는지, 왜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는지, 다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저는 그런 거에 별로 안 흔들려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속으로, 당신들이 걱정하는 종류의 약함이 나한테는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 그냥 웃고 넘겼다. 채팅창에서 욕 좀 먹는 거랑, 던전 안에서 심장 박동 추적당하며 오 미터 반경 안에서 숨죽이고 버티는 거랑 비교하면, 전자는 그냥 배경음악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희는 도현씨가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거든요." 허지원의 말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고, 나는 그 진심이 어쩐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오래 버텨달라는 말, 그 안에 숨은 불안이 뭔지는 몰라도, 이 회사가 뭔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받았다. 사무실 한쪽 구석, 파티션 너머에 붙어 있는 매출 그래프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필 그 순간 허지원이 서둘러 서류를 뒤집었다. 그 짧은 순간 스쳐 본 숫자가 심상치 않게 붉었다는 것만 겨우 기억났다. 그래프의 선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았다. 괜히 물어봤다가 또 저 무거운 눈빛을 마주하기 싫어서, 나는 그냥 모른 척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가방 안에 든 밀폐용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주 개인적으로 나갔던 던전 탐사에서, 심연 지대 근처에서만 자라는 자수정버섯을 채집해 왔는데, 이건 시중에 풀리면 한 근에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 재료였다. 채집할 때 손끝이 벌겋게 부어오를 정도로 조심스럽게 캐야 하는 물건이었는데, 워낙 예민한 개체라 조금만 세게 눌러도 포자가 터져서 상품성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좁은 균열 지대에 엎드려서 숨까지 참으며 한 시간 넘게 캐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 재료를 가장 좋아할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탑라인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진하람. 구독자 오십만 명이 넘는, 이 업계에서는 거의 신화 같은 존재였다. 방송에서 던전산 식재료로 요리를 해먹는 콘텐츠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나는 그가 방송 중에 재료 하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던 모습을 몇 번이나 다시 돌려봤는지 모른다. 특히 지난달 방송에서 그가 심연산 대게를 손에 들고 "이거 진짜 미쳤다, 이런 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데"라며 함박웃음을 짓던 장면은, 나도 모르게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다시 재생했다. 그 웃는 얼굴이 화면 가득 잡히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여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나도 잘 설명이 안 됐다. 순수하게, 그냥 그 사람이 이 재료를 받고 기뻐하는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정말로 그게 다였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 다음 날, 나는 탑라인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오프라인 팬미팅 겸 콜라보 상담 부스가 열린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신인 라이버들도 신청만 하면 짧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되어 있었다. 공고문을 세 번쯤 다시 읽으면서, 나는 손끝이 미묘하게 저릿해지는 걸 느끼는데, 이게 긴장인지 뭔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됐다. 신청 인원은 라이버당 한 명, 상담 시간은 딱 오 분. 오 분이면 자수정버섯 하나 건네고 웃는 얼굴 한 번 보고 나오면 충분하다고, 나는 그렇게 계산을 마쳤다. 나는 그 즉시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 소속, 간단한 자기소개란까지 빠짐없이 채우고 나서, 마지막으로 '전달하고 싶은 물품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에 조심스레 체크했다.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풀릴 리가 없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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