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후 2시 40분.
트럭이 멈췄다.
문이 열렸다.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말똥 냄새인지, 사료 냄새인지, 아니면 그냥 낯선 흙냄새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제주도의 바닷바람 섞인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다.
습기가 더 무겁고, 사람 냄새가 더 짙었다.
청림목장.
안재현의 트레이닝센터였다.
제주도보다 훨씬 넓었다.
트랙이 있었고, 마방이 줄지어 있었고,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멀리서 다른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굽 소리가 규칙적으로 땅을 때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내려."
관리인이 줄을 당겼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래 서 있어서인지, 낯선 곳에 대한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발굽이 땅에 닿는 순간, 흙의 질감이 느껴졌다.
제주도의 흙보다 더 단단했다.
더 다져진 느낌이었다.
수백, 수천 번의 발굽이 지나간 흙이었다.
관리인이 나를 마방 쪽으로 끌고 갔다.
지나가는 길에 다른 말들이 나를 쳐다봤다.
몇몇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몇몇은 오래 눈을 맞췄다.
그 시선들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마방에 들어서자 옆 칸에서 흰 털이 눈에 들어왔다.
"쟤 새로 왔어?"
흰 털의 망아지가 나를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설풍.
털이 눈처럼 흰 동기마였다.
가까이서 보니 몸이 다부졌다.
근육의 선이 뚜렷했다.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흠 없이 매끈했다.
전형적인 스프린터 체형이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몸이었다.
"뭐 하다 왔는데?"
설풍이 물었다.
말이 아니라 몸짓과 소리로 던지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걸 그렇게 해석했다.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냥 시선을 피했다.
설풍은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코를 들이밀었다.
냄새를 확인하려는 건지, 그냥 궁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경계였는지, 낯가림이었는지, 그것도 몰랐다.
오후 4시.
안재현이 마방을 돌았다.
나를 보더니 잠시 멈췄다.
"적응 잘 하고 있어?"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윤정숙 말고는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윤정숙의 목소리는 늘 부드러웠다.
"밥은 먹었어?" 같은 말투였다.
안재현의 목소리는 달랐다.
낮고, 단단하고, 뭔가를 확인하려는 톤이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이 부담스러웠다.
무엇을 확신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새로 온 말을 관찰하는 습관일까.
알 수 없는 채로 그는 다음 마방으로 넘어갔다.
이틀이 지났다.
생후 3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훈련이라고 하기엔 이른 나이였지만, 청림목장에서는 가벼운 조보(調步)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전 9시.
조련사가 나를 트랙으로 데리고 나갔다.
걷는 훈련부터였다.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 반복이었다.
단순한 동작인데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걷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인간이었을 때는 걷는 걸 의식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매 걸음이 계산이었다.
설풍은 옆 트랙에서 이미 가볍게 뛰고 있었다.
몸의 균형이 좋았다.
다리 움직임이 부드럽고 일정했다.
순수한 스프린터 혈통이라고 들었다.
한 방향으로만 자란 몸이었다.
부러웠다.
부러워야 하는 감정인지도 확신이 없었지만,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목이 마르고, 손끝 대신 발끝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걷는 것조차 어색했다.
앞다리는 짧고 빠르게 움직이려 했다.
뒷다리는 길게, 느리게 움직이려 했다.
두 개의 리듬이 몸 안에서 부딪쳤다.
스프린터의 근섬유와 스테이어의 심장.
두 개가 한 몸에서 싸우고 있었다.
걸음마다 삐걱거렸다.
"쟤 좀 이상한데."
조련사가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안재현이 대답했다.
"기다려 보세요."
기다려보라는 말이 그날 몇 번이고 반복됐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으니 그 말이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기다린다는 건 뭘 기다리는 걸까.
내가 뭘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내가 그냥 평범한 말이라는 걸 확인하기를 기다리는 걸까.
오전 10시 반.
조보 훈련이 끝났다.
나는 숨이 가빴다.
짧은 거리였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관리인이 물통을 가져다줬다.
물을 마시는 순간에도 다리는 계속 후들거렸다.
설풍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숨도 고르지 않았다.
그 차이가 선명했다.
생후 3개월 12일째.
오전 8시.
트랙 훈련이 시작됐다.
짧은 직선 코스였다.
"출발."
조련사가 소리쳤다.
나는 달렸다.
초반 20미터는 좋았다.
스프린터의 유전자가 반응했다.
다리가 빠르게 지면을 밀어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좋았다.
속도가 올라가는 감각이 좋았다.
이대로라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40미터를 지나자 몸이 흐트러졌다.
스프린터의 방식으로 계속 달리려니 숨이 부족했다.
반면 스테이어의 폐는 더 긴 호흡을 원하고 있었다.
두 방식이 충돌했다.
숨이 짧게, 짧게 끊어졌다.
다리는 계속 짧은 스텝을 요구하는데 폐는 깊은 호흡을 원했다.
몸 안에서 두 개의 명령이 서로 부딪쳤다.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60미터에서 속도가 뚝 떨어졌다.
조련사가 스톱워치를 확인했다.
"별로네."
짧은 평가였다.
안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나쁜 평가보다 아무 말 없는 관찰이 더 부담스러웠다.
그는 뭘 보고 있는 걸까.
그 노트에 적힌 게 뭘까.
오후 3시.
두 번째 훈련이 시작됐다.
이번엔 코스가 길었다.
조련사가 지시했다.
"이번엔 천천히 가자."
나는 천천히 달렸다.
초반에 속도를 아꼈다.
스프린터의 근육이 답답해했다.
하지만 무시했다.
대신 스테이어의 호흡에 맡겼다.
다리가 저항하는 게 느껴졌다.
빨리 가자고, 지금 속도를 내야 한다고 근육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억눌렀다.
호흡에만 집중했다.
300미터를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리가 저절로 리듬을 바꾸었다.
짧고 빠른 스텝이 아니라, 넓고 깊은 스텝으로.
숨이 편해졌다.
처음 느낀 감각이었다.
싸우고 있던 두 개의 리듬이 어느 순간 싸움을 멈췄다.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협력하는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400미터 지점에서, 나는 다시 스텝을 짧게 바꾸었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마지막 스퍼트였다.
몸이 알아서 판단한 것 같았다.
머리로 계산한 게 아니었다.
그냥 몸이,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이 왔다.
그 순간을 따랐을 뿐이었다.
조련사의 눈이 커졌다.
"저, 저거 봤어요?"
그가 안재현에게 소리쳤다.
"봤습니다."
안재현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장거리로 체력을 아끼다가, 마지막에 스프린트로 전환했어요."
조련사가 말했다.
"이런 전환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애는 처음 봐요."
조련사의 목소리가 흥분해 있었다.
그가 안재현에게 뭔가를 더 설명했다.
숫자, 시간, 구간별 페이스 같은 단어들이 오갔다.
나는 그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몸이 처음으로 삐걱거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개의 리듬이 처음으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안재현이 스톱워치를 다시 확인했다.
숫자를 보고 그가 낮게 웃었다.
"이게 그거였구나."
그가 혼잣말을 했다.
"이게 화하는 별이라는 거구나."
화하는 별.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확신이 더 짙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확신 뒤에 뭔가 다른 감정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기대와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있는 목소리였다.
오후 5시.
마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몸이 무거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좋아야 할 이유를 모르는데, 좋았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늘 남의 승리를 관람하는 사람이었다.
혈통표를 읽고, 배당률을 계산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직접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늘 남의 성과에 내 돈을 걸었다.
남이 이기면 내가 이긴 것 같았고, 남이 지면 내가 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 감각이 낯설고, 동시에 익숙했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느끼는 감각인데 그저 낯설지 않은 척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냥 그 감각을 곱씹었다.
설풍이 옆 마방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뭐 했어?"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 속에서 처음으로 경계심 같은 것을 느꼈다.
이전까지 설풍의 시선에는 호기심밖에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뭔가를 재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후 7시.
안재현이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오늘 확인했어요. 진짜였어요."
그가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제주도 쪽에도 알려줘야겠어요."
제주도.
그 단어가 내 귀에 걸렸다.
제주도 쪽이라는 게 한라목장을 뜻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목장 이름을 떠올리려고 했다.
윤정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사람들, 계약서, 서명 같은 단어들도 함께 떠올랐다.
전부 조각조각으로만 떠올랐다.
다만 그 통화가 끝난 뒤 안재현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기뻐하는 얼굴과 무언가를 걱정하는 얼굴이 동시에 있었다.
그 표정을 읽으려고 애썼다.
기쁨과 걱정이 어떻게 한 얼굴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보였다.
두 개의 감정이 서로 눈치를 보는 것처럼.
"박무영 씨, 그럼 다음 소식은 좋은 쪽으로 전해드릴게요."
그가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박무영.
그 이름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누구인지, 왜 안재현이 그에게 소식을 전하는 건지 짐작조차 안 됐다.
다만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안재현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는 것만 확인했다.
좋은 쪽이라는 말이, 왜인지 나는 좋게 들리지 않았다.
마방 안은 조용했다.
설풍의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방금 들은 통화 내용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좋은 쪽이라는 말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