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만 살 용, 던전을 접수하다

2화

쾅.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혔다. 아니, 정확히는 여럿이었다. 심층 바닥 한 구역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지켜보았다. 사람이었다. 여덟 명. 군복. 방탄 장비. 등에 멘 배낭 위로 마력탐지기 같은 장비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심층까지 굴러떨어질 정도면, 상당히 높은 층에서 낙사할 뻔했다는 소린데.' 이 육신으로 지낸 세월이 얼마인지 이제는 세는 것도 지쳤지만, 인간이 이 깊이까지 산 채로 떨어지는 광경은 그리 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흙먼지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인원 점검."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먼지 사이에서 울렸다. "1번, 2번, 3번..." 대답이 하나씩 돌아왔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대답의 목소리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7번 미확인." 한 목소리가 갈라졌다. "찾아라."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이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계급장은 흙에 덮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다. 낙하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가장 먼저 사람 수를 셌다. 장비나 위치가 아니라, 사람. '저런 부류는 던전보다 위험한 게 많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더 가까이, 소리 없이 몸을 옮겼다. 나는 감각을 좁혀 그들의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중령님, 여기 어딥니까." 젊은 목소리였다. "모른다." 중령이라 불린 남자가 짧게 답했다. "전이 트랩에 걸린 것 같습니다. 얕은 층 탐사였는데... 이렇게 깊이 떨어질 수가 없는데요." "모른다고 했다." '모른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는군.' 나는 낮게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이 육신은 웃음소리를 내면 던전 전체가 흔들린다. 7번이라 불린 대원이 곧 발견됐다. 다리가 이상하게 꺾여 있었다. 낙하 충격으로 부러진 모양이었다. 발견한 대원이 그를 부축해 끌어오는 동안, 부러진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흙바닥에 검게 배어들었다. "위생병." 중령이 불렀다. "여기 있습니다." 젊은 여성 목소리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김민재 하사, 상태 보고해." 김민재라는 이름의 하사가 무릎을 꿇고 다리를 살폈다. 손가락이 상처 주변을 짚었다가 떼는 동작이 빠르고 정확했다. 이 상황에서도 손은 떨리지 않았다. "개방골절입니다. 지금 마력으로 응급처치해도 버틸 시간이... 아 씨, 마력이 안 잡혀요." "뭐?" "마력이 안 잡힙니다, 중령님. 이 층 마력 밀도가 너무 낮아요. 스킬이 안 켜집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손바닥을 상처 위에 갖다 댔다가 떼길 반복했다. 마력이 일어야 할 손바닥에서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마에 땀이 배어났다. 나는 그 말에 살짝 눈을 좁혔다. '심층은 원래 마력이 과잉인 곳인데.' 보통 지상에서 심층으로 내려올수록 마력 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게 이 던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 층은 정반대였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마력을 걷어낸 것처럼. '이상하군. 아주 이상해.' 중령이 무전기를 들었다. "본부, 여기 오지탐사대대. 응답 바람." 치직. 잡음만 돌아왔다. "본부, 응답하라." 다시 잡음. 그는 무전기를 몇 번 더 흔들어보고, 주파수를 바꿔가며 시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똑같은 잡음뿐이었다. 그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통신 불가. 마력 통로도 폐쇄." 누군가 중얼거렸다. "우리 여기서 죽는 겁니까." 침묵이 짧게 흘렀다. 부상자의 낮은 숨소리와, 누군가의 방탄 장비가 흙에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중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대원들을 둘러보며 명령했다. "방진, 8시 방향 벽 등지고. 부상자 중앙. 탐지기 켜서 반경 확인해." 짧고 명확한 지시였다. 절망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원들이 곧바로 움직였다. 발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훈련이 몸에 새겨진 자들이라는 게 느껴졌다. '물건이군.' 나는 그를 좀 더 지켜보고 싶어졌다. 그가 손짓으로 좌우를 가리키자 대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벽을 등지고 모였다. 마력탐지기를 든 대원이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반경 오십 미터 이내엔... 특이사항 없습니다." "계속 봐." "네." 그 짧은 대화 사이에도 중령의 시선은 쉬지 않고 사방을 훑었다. 어둠 속, 정확히 내가 숨어 있는 방향을 스쳐 지나갔을 때 나는 숨을 죽였다. 물론 이 육신에게 '숨'이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그런 습관은 오래된 버릇처럼 남아 있었다. '못 본다. 볼 수 없어.' 나는 이 층의 어둠에 완전히 녹아든 존재였다.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 던전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 층에... 뭔가 다가온다.' 진동은 처음엔 발밑의 흙 알갱이가 살짝 튀어 오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커졌다. 벽에 붙어 있던 돌조각 하나가 툭, 떨어져 굴렀다. 나는 감각을 최대로 확장했다. 생명 신호 하나가, 인간 여덟보다 압도적으로 큰 덩치로, 그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곧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기만으로 따지면 이 층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 신호의 파형을 몇 번이고 다시 훑었다. 익숙한 놈은 아니었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피 냄새를 좋아하는 것들의 냄새. 축축하고 비릿한, 썩은 살점과 쇠 냄새가 뒤섞인 그 특유의 향. 이 던전에서 오래 지낸 나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였다. '저건... 얼마 만이지.' 중령이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온다." 그가 낮게 말했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무기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 동작 하나에 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쏠렸다. 대원들의 숨소리가 일제히 멎었다. 땅이 다시,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울렸다. 쿵. 이번엔 흙먼지가 아니라 벽 자체가 흔들렸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