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가 소녀가 된 밤

5화

강도현은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발끝이 미끄러운 바닥을 긁었다. 무릎이 꺾이듯 굽혀지고, 어깨가 먼저 땅에 닿았다. 촉수가 아슬아슬하게 등을 스쳤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뒤통수 바로 뒤에서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서걱— 리본 자락 일부가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며 팔랑, 힘없이 흩어졌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한기가 척추를 타고 목덜미까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강도현은 소녀를 붙든 채 그대로 굴렀다. 몸이 한 바퀴, 두 바퀴 돌아가는 사이에도 소녀의 팔을 놓지 않았다. 무너진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콘크리트 조각이 어깨에 부딪히며 둔한 통증이 퍼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었다. 쿵. 쿵. 귓속에서 자기 심장 소리가 울렸다. 낯선 몸이라서인지 심박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괜찮아?" 강도현이 소녀를 돌아봤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도현은 그 손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다독여 줄 시간이 없었다. 금호가 잔해 위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허수의 몸통을 훑고 있었다. "저놈 몸통 아래쪽, 배 부분에 균열이 있어." "균열?" 강도현이 잔해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시선을 따라갔다. 거대한 몸통 아래, 검게 갈라진 틈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게 약점이야. 껍질이 얇아. 저길 정확히 치면 한 번에 끝낼 수 있어." 강도현의 눈이 좁아졌다. "근데 저길 치려면 정면으로 가야 하잖아." "그래. 그리고 정면으로 가면 촉수 세례를 다 맞아야 해." 금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헛웃음이었다. 이가 살짝 드러나는, 자조 섞인 표정. "그러니까 혼자는 안 돼." "그럼." 금호의 몸이 흔들리며 형체가 변했다. 작은 여우에서 사람 크기의 존재로. 털이 빛의 입자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그 안에서 서서히 사람의 윤곽이 드러났다. 황금빛 털을 두른, 인간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귀는 여전히 여우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등 뒤로는 아홉 갈래로 갈라진 꼬리가 흔들렸다. 손에는 곡도 형태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칼날에 옅은 금빛이 감겨 있었다. "임시로 손 잡자는 거야." 강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믿어도 되는 거야? 방금까지 날 의심하는 눈치였잖아." "의심 맞아. 남자가 마법소녀 된 것도, 그것도 강제로 계약을 가로챈 것도, 협회 역사에 없던 일이야." 금호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곡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근데 지금은 그거 따질 시간이 없어." "그럼 나중에 따지든가." 강도현이 짧게 받아쳤다. 금호가 픽 웃었다. "성격은 마음에 들어." 말과는 다르게, 눈빛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소녀가 둘의 대화를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시선은 강도현과 금호 사이를 오갔다. "저, 저도 뭔가…… 도울 수 있을까요?" 목소리가 잔뜩 떨려서, 문장 끝이 흐려졌다. "넌 뒤에 있어." 강도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위험한 곳에 다시 세우지 않을 거야." 소녀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작은 주먹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금호가 강도현을 돌아봤다. "저 배 부분 균열, 내가 위에서 시선을 끌게. 촉수를 유인할 테니까." "그럼 나는?" "그 틈에 아래로 들어가서 정확히 찔러. 한 번뿐이야." 금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실패하면, 그다음은 없어." 강도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낯선 하얗고 가느다란 손. 손끝에서 아직도 빛의 잔여물이 미약하게 맴돌았다. 【현재 축적된 에너지: 18,700 유닛】 숫자는 여전히 초라했다. '저걸로 필살 스킬이 나올 리 없다.' 목구멍 안쪽이 씁쓸했다. 이 몸의 힘은 관객의 시선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초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멀리서 사람들의 함성이 다시 커졌다. 스마트폰 화면 속, 채팅창이 폭주하듯 흘러갔다. "저 남자 진짜 싸우려는 거야?" "응원하자 다들, 파이팅 좀 쳐줘라" "저러다 죽는거 아니야 진짜?" "와 방금 그거 봤냐 몸 던지는거" "제발 좀 살려줘 저 사람" 문자들이 화면을 타고 쏟아지듯 지나갔다. 숫자는 조금씩 다시 올라갔다. 18,700에서 18,900으로. 강도현의 목구멍이 타들어가듯 뜨거웠다. '저 시선들이 힘이 된다는 게, 여전히 소름 끼치는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그 힘이 필요했다. 살아남으려면, 저 초라한 숫자라도 붙잡아야 했다. 금호가 몸을 낮추며 신호했다. 곡도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무릎을 살짝 굽힌 자세. "준비됐어?" 강도현은 대답 대신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굽히고, 발끝으로 바닥을 디뎠다.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아랫배에 힘을 모았다. 십 년 넘게 다져온 감각이 이 낯선 몸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었다. 체육관 바닥에서 셀 수 없이 반복했던 스텝, 무게중심을 낮추는 습관,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기 위한 근육의 긴장.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가느다란 손발에도 각인되어 있었다. 허수의 몸통이 다시 꿈틀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살덩이가 뒤집히듯 움직이며, 표면에 새겨진 검은 균열이 언뜻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촉수 수십 개가 동시에 일어섰다. 마치 숲이 일제히 흔들리듯, 무수한 가닥이 허공을 향해 곧추섰다. 금호가 먼저 뛰어나갔다. "이쪽이야, 이 덩어리야!" 목소리가 잔해 사이를 뚫고 울렸다. 곡도가 허수의 촉수 하나를 베어냈다. 서걱— 검은 액체가 튀었다. 끈적한 액체가 금호의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허수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촉수 대부분을 금호 쪽으로 집중시켰다. 수십 개의 촉수가 한꺼번에 방향을 틀어 금호를 향해 쏟아졌다. 금호는 곡도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파고들었다. 빠르게, 그러나 위태롭게. 강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던졌다. 잔해를 박차고, 무너진 기둥을 밟고, 허수의 몸통 아래로 파고들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끝이 젖은 콘크리트를 밀어낼 때마다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폐가 타는 듯 뜨거웠다. 배 부분의 균열이 눈앞에 드러났다. 검게 갈라진 틈, 그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저기다.'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균열 표면에 닿기 직전, 그 안에서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 순간, 촉수 하나가 방향을 바꿔 금호의 등을 노렸다. 강도현의 시야 끝에 그것이 걸렸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검은 촉수가 허공을 가르며 금호의 등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금호!"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촉수가 금호를 향해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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