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팔로워 900명의 역주행

3화

대늑대룡의 앞발이 다시 바닥을 내리찍기 전, 나는 설화를 끌고 벽 쪽으로 몸을 굴렸다. 콰앙. 방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돌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돌기둥 뒤에 몸을 숨기자 부식성 침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치이이익. 돌이 녹아 검은 얼룩을 남겼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계란 썩은 냄새와 산성 세제 냄새를 반씩 섞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괜찮으세요?" "네··· 아니, 사실 다리가 좀···" 말끝이 끊겼다. 붕대 아래로 새로 배어 나온 피가 보였다. 붉은 색이 점점 짙어지는 걸 보니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좌측 경골 골절 추정. 즉시 지혈이 필요합니다.】 가이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는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케 했다. "골절이라고요? 아까 그냥 삐끗한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초기 진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추가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 그러셔." 나는 가방에서 응급 붕대를 꺼내 서둘러 감았다. 손끝이 떨렸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미끈하게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조금 미끄럽고,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오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더 벌어져요." "네··· 어, 그런데." 설화가 붕대를 감는 내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을 걸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걸 보니 다리 통증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제 방송 아까부터 계속 켜져 있는데, 괜찮으세요?" "아, 그거요." 솔직히 그 순간까지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람 다리에서 피가 철철 나는 걸 보고 있는데 방송 걱정이 들 리가 있나. 그 순간 시야 한쪽에 설화의 헬멧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 미리보기가 반사되듯 스쳤다. 헬멧 옆면에 붙은 소형 렌즈 표시등이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아래 작은 화면에 채팅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 사람 누구야] [검 색깔 이상한데] [하늘? 저기 태그 뜨는 거 저 사람 계정임?] [다리 골절이면 탈출 못하는 거 아니냐] [설화 죽으면 손절함]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 접속자 51,000. ···51,000명이 지금 이 좁고 냄새나는 던전 바닥에서 붕대 감는 내 손을 보고 있다고? 머릿속이 잠깐 하얘졌다. 51,000이라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려다가 그만뒀다. 셀 수 있는 자릿수가 아니었다. 순간 내 채팅창이 떠올랐다. 방금까지 열댓 명이 ㅋㅋ 치던 그 작은 창. 오늘 아침에 확인했을 때 새로 늘어난 팔로워가 두 명이라고 좋아했던 기억까지 함께. 900명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아주 작게 느껴졌다. 아니, 원래도 작았는데 이제는 먼지처럼 느껴졌다. "괜찮아요." 대답은 그렇게 했는데, 목소리에 뭔가 걸린 게 있었다. 스스로도 어색하게 들렸다. 설화가 그걸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방송하시는 분이세요?" "네, 근데··· 팔로워 900명짜리 소규모예요." 말해놓고 나니 좀 부끄러웠다. 굳이 숫자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네, 방송해요"로 끝냈어도 됐을 텐데 습관처럼 자기 검열이 붙어버렸다. "900명이요? 그런데 검을 저렇게 쓰세요?" "그게 뭔 상관이에요." 목소리가 좀 날카롭게 나갔다. 억울했다. 팔로워 수랑 검 실력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애초에 나는 방송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요." 설화의 눈빛에는 놀림이 아니라 진짜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상처받은 얼굴이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표정. 그 시선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웠다. 51,000명의 시선보다 이 한 사람의 시선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을까. "방송 규모가 크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설화가 뭔가 더 말하려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리에서 통증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대늑대룡이 재접근 중입니다. 15미터.】 가이드의 알림이 대화를 끊었다. 돌기둥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다시 울렸다. 쿵, 쿵, 쿵. 느리지만 확실하게 가까워지는 리듬이었다. 마치 시간을 재는 메트로놈 같았다. 다만 이 메트로놈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저기요." 설화가 내 팔을 붙잡았다. 손에 힘이 별로 없었는데,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붙잡는 느낌이었다. "저 이대로 두고 가셔도 돼요. 저 때문에 위험해지실 필요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방송 켜놓고 그런 멋있는 말 하면 저만 나쁜 사람 되는 거 알아요?" 진심이었다. 51,000명이 보는 앞에서 부상자를 버리고 도망치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 1위가 '검은 검 든 놈 부상자 버림'이 되는 미래가 눈앞에 스쳤다. 설화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픽 웃었다. "···진짜 특이하시네요." 그 웃음이 조금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웃을 상황이 전혀 아닌데. 다리에서 피가 나고, 괴물이 다가오고 있고, 우리 둘 다 방송이 켜진 채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여자는 뭐가 웃긴 걸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웃음 덕분에 손끝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대늑대룡의 그림자가 돌기둥 너머로 길게 늘어졌다. 녀석이 코를 킁킁대며 우리 위치를 좁혀오고 있었다.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부패한 침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 발톱이 돌바닥을 긁는 소리. 철퍽. 스ㅡ윽. 철퍽.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바닥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검 손잡이가 미끄러질 정도로. 【대늑대룡, 표적 재확인. 거리 8미터.】 숫자가 좁혀질수록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쿵, 쿵, 쿵쿵쿵. 발소리가 점점 불규칙해졌다. 놈이 흥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침을 흘리는 짐승의 습성. 나는 소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 밴 땀 때문에 자루가 미끄러웠다. 옷자락에 손을 한 번 문지르고 다시 잡았다. "설화님." "네?" 설화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헬멧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51,000개의 눈이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방송 안 끄셔도 돼요. 어차피 이제부터는 볼만할 거니까." 말은 자신 있게 했는데, 사실 확신은 없었다. 대늑대룡을 정면으로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부상자를 등에 업다시피 지키면서. 다만 저 51,000명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보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을 더 크게 만들었다. 900명 앞에서도 도망친 적 없는데, 51,000명 앞에서 도망치면 그건 좀 자존심 문제였다. 웃긴 건, 그 순간에도 채팅창 걱정이 스쳤다는 거다. 지금 이 장면 보고 있는 내 900명 중 누군가가 캡처라도 떠서 올리면 어떡하지.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조금 한심했다. 돌기둥 너머로 녹색 눈이 나타났다. 두 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타오르듯 빛났다. 짐승 특유의 냉정하고 굶주린 시선이었다. 녀석이 우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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