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강인데 무과금인 척할게요

2화

황금기사단 직영 감정소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유리 건물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여기가 감정소가 아니라 방송 스튜디오처럼 꾸며져 있다는 걸 눈치챘다. 벽면 한쪽에는 링라이트 조명이 세 개나 걸려 있었고, 카메라 두 대가 이미 삼각대 위에 세워져 있었으며, 접수처 직원조차 마이크팩을 허리에 차고 목에는 목소리를 위한 스카프까지 두르고 있었다. 벽에는 '황금기사단 라이브 - 오지훈의 감정소'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는데, 그 로고 색깔조차 금색과 검은색으로 도금되어 있어서 여기가 정말 마정석을 감정하는 곳인지, 아니면 예능 촬영장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시나요?" 직원이 밝게 웃으며 물어왔는데, 나는 마정석이 든 봉투를 들어 보이며 감정 및 매입을 원한다고 짧게 답했다. "아, 잠시만요! 오늘 마침 대표님께서 직접 감정을 진행하고 계셔서요, 라이브 방송 중이시긴 한데 괜찮으시면 그쪽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정말 신기하네요! 하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그 직원한테 나는 딱히 상관없다고 대답했는데, 솔직히 방송이든 뭐든 마정석 값만 제대로 쳐주면 상관없었다. 이런 걸로 시간 끌 이유도 없었고, 어차피 나한테 방송 카메라 따위 신경 쓸 여유도 없었으니까. 마정석 감정 및 매입 시스템은 대략 이랬다. 헌터 협회 산하 감정소는 등급별로 정해진 시세표가 있지만, 사설 감정소나 클랜 직영 감정소는 자체 기준으로 매입가를 책정할 수 있었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시세표라는 게 있어도 그걸 지킬 의무가 법적으로는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파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값이 두세 배씩 차이 나는 게 흔한 일이었고, 그래서 다들 후기를 뒤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제값 쳐주는 곳을 찾아다니는 거였다. 나는 그런 발품 팔 여유조차 없어서 그냥 가장 가까운 데로 들어온 거였는데, 하필 그게 여기였다. 안내받은 스튜디오 안쪽에는 이미 사람들이 오십 명 정도 앉아 있었고, 다들 팬미팅에 온 것처럼 목에 카메라를 걸거나 응원 피켓 비슷한 걸 들고 있었으며, 정면 데스크에는 명찰도 필요 없을 만큼 인터넷에서 지겹게 본 얼굴이 앉아 있었다. 오지훈.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딱 카메라 화면비율에 최적화된 몸을 가진 남자였는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몇 년 전 그날, 클랜 채팅창에 뜬 '강제 탈퇴' 알림창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그날의 알림창 문구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강태현 님이 여명 클랜에서 강제 탈퇴 처리되었습니다.] 밑에는 누구도 이유를 남기지 않았고, 나는 그날 이후로 그 클랜방 채팅 목록에 다시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표정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습관이었다. 표정을 지키는 것. 그게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이었으니까. "오, 새로운 감정 손님이 오셨네요! 소개 부탁드릴까요?" 지훈이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밝게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이 얼마나 계산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이 새끼 여전히 얼굴값으로 다 해먹는구나 하며 헛웃음을 삼켰다. 저 미소의 각도, 저 눈웃음의 타이밍까지도 몇 년 전 클랜 방송할 때랑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진짜 안 변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강태현입니다. 마정석 감정 및 매입 요청드립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는데, 그 순간 지훈이가 내가 건넨 마정석을 스캐너에 대보더니 미간을 살짝 좁혔다. 스캐너 화면에 뜬 숫자를 지훈이 눈이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게 보였는데, 그 표정의 변화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거, B급 상위 개체에서 나온 마정석인데요? 이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길에서 주웠습니다." "길에서요?" 지훈이가 카메라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채팅창 반응을 슬쩍 읽고는 킥킥거렸다. "여러분, 이 분이 길에서 B급 마정석을 주웠다고 하시네요. 대박이죠?" 그 말에 채팅창이 폭소로 뒤덮이는 게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는데, 스크롤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글자가 뭉개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매입 가격만 물었다. "그래서, 얼마에 매입 가능합니까?" "음, 저희 쪽 시세로는... 이거 상태가 애매해서요, 30만 원 정도?" 30만 원. 인터넷에 떠도는 시세표만 봐도 B급 상위 마정석은 최소 200만 원부터 시작하는 물건이었다. 순도, 크기, 결정 형태까지 따지면 이건 최소치도 아니었다. 나도 이런 쪽 정보는 나름 챙겨봤으니까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저 새끼가 나를 알아본 건지, 아니면 그냥 후줄근한 옷차림 하나만 보고 후려치기를 하는 건지 궁금해졌는데,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결론은 똑같았다. 이 자식은 지금 나를 이용해서 뭔가 재미를 볼 생각이라는 것. "시세보다 많이 낮은 것 같은데요." "에이, 시세는 그냥 참고용이죠. 실제 매입가는 저희 사정에 따라 달라져요." 지훈이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데, 그 웃음 아래 깔린 눈빛이 미묘하게 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고, 나는 그 시선에서 이 자식이 지금 나를 조롱거리로 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낡은 운동화, 늘어난 후드티, 며칠 못 깎은 수염까지 훑는 그 시선의 속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빴다. "저기, 손님 각성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헌터 등록 되어 있으신가요?" "아니요." "오, 그럼 일반인이시네요. 여러분, 이 분이 무각성 일반인이신데 B급 마정석을 길에서 주웠다는 겁니다." 채팅창이 다시 들끓었고, 지훈이는 그 반응을 즐기듯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제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예전에 제가 알던 애 중에, 게임 무과금으로 하다가 자기 길드까지 뺏긴 애가 있었거든요."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 새끼가, 설마. "보물상자 하나 못 사서 매번 눈치만 보다가, 결국 팀에서 쫓겨났었죠." 지훈이가 화면을 향해 낄낄거렸는데, 카메라는 여전히 나를 잡고 있었고, 채팅창에는 벌써 '설마 저 사람?' 같은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몇몇은 벌써 캡처를 뜨고 있는지 화면 구석에 스크린샷 알림 같은 이모티콘까지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저 얼굴을 한 번 더 뜯어보았다. 확신했다. 저 새끼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스캐너에 마정석을 대는 그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저 손님도 딱 그런 느낌이네요. 무과금, 아니 지금은 무각성이신가?" 지훈이가 마이크를 들고 이쪽으로 성큼 걸어오며 웃었는데, 나는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이 30만 원짜리 조롱을 그냥 받아들이고 나갈지, 아니면 여기서 뭔가 하나 부러뜨리고 나갈지. "제가 확인해봤는데요." 지훈이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는데, 화면에는 몇 년 전 크로니클 서버 랭킹 캡처 화면이 떠 있었다. 화질이 낮아서 흐릿했지만, 나는 그 화면 안에 박힌 내 닉네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명 클랜, 강태현. 그때 그 리더 맞으시죠?" 채팅창이 순간 폭발했다. 이 개새끼가, 진짜. "그때도 힘든 티 안 내려고 발버둥 치더니, 지금도 똑같네요. 참, 사람 안 변한다니까." 지훈이가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면서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드는 게 느껴졌는데, 그 통증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30만 원이면 매입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지훈이가 마무리로 그렇게 물었는데, 나는 마정석을 다시 손에 쥐고 그 자식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채팅창은 여전히 미친 듯이 스크롤되고 있었고, 카메라 렌즈 옆에 붙은 빨간 불빛이 나를 뚫어질 듯이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이제 상관없었다. "매입 취소하겠습니다." "어이구, 자존심은 그대로시네." 지훈이가 낄낄거리며 카메라를 향해 한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저려오는 걸 느꼈다. 오랜만이었다. 이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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