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게이트 앞에는 사람들이 백 명은 족히 넘게 몰려 있었는데, 다들 스마트폰을 치켜들고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같은 장면을 찍고 있어서 나는 그 뒤통수들 사이에 끼어 서서 무료 관람석에 앉은 기분으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앞줄에 선 사람들은 아예 삼각대까지 펴놓고 있었고, 뒤에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발끝을 세우고 목을 길게 빼야 겨우 안쪽이 보였는데, 옆에 선 아저씨 하나가 "이야, 오늘도 볼만하네" 하면서 콜라를 들이켜는 게 마치 야구 경기 보러 온 것 같은 태도라서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게이트라는 게 처음 열렸을 때는 다들 세상 끝난 것처럼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동네 불구경하듯 몰려드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적응력인지, 아니면 그냥 무감각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게이트 너머, 붉은 안개가 걷힌 공터 한복판에는 몸통이 트럭만 한 개체가 서 있었는데, 등급 표기판에 붙은 노란 테이프에는 'B급 추정'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 판정이 벌써부터 틀려먹은 것 같았다.
협회 등급 체계는 E부터 S까지 여섯 단계로 나뉘고, 몬스터와 헌터 모두 같은 기준으로 분류된다. E는 훈련병 수준, D는 갓 자격을 딴 초보, C는 실전 가능, B는 파티 단위 대응이 필요한 위협, A는 광역 재난급, S는 국가 단위 대응 대상이다. 등급이 하나 오를 때마다 체감 위력은 산술이 아니라 기하로 뛴다는 게 협회의 공식 설명이었다.
그런데 저 안개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저놈은 어깨 위로 솟은 뼈 돌기가 이미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그건 내가 알기로 B급 판정 개체에서는 나오지 않는 형태였다. 게다가 놈의 눈동자가 붉은빛을 뿜는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점점 짧아지고 있었는데, 그건 개체가 흥분하면서 힘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이런 걸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그냥 몸으로, 아니 눈으로 알아버렸다.
크르르르릉-
놈이 낮게 울며 앞발로 바닥을 긁는 순간, 흙먼지가 부채꼴로 퍼지면서 게이트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파티 넷이 동시에 무기를 뽑았는데, 선두에 선 여자 헌터가 방패를 세우며 소리쳤다.
"포메이션 3번, 좌측 견제 먼저!"
딱딱한 명령조였지만 그 안에 흔들림이 전혀 없어서, 나는 저 여자가 이 판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이라는 걸 대사 한 줄로 알 수 있었다. 목소리 톤이 갈라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는 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저 정도로 감정을 죽일 수 있다는 건 이미 몇 번쯤은 동료가 눈앞에서 다치는 걸 봤다는 뜻이니까.
콰아앙!
창을 든 남자 헌터가 놈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지만, 그 순간 놈은 몸을 반쪽만 돌려 창날을 흘리면서도 반대쪽 앞발로 방패를 든 여자를 후려쳤고, 여자는 방패를 통째로 든 채 오 미터는 날아가 바닥을 두 번 튕겼다.
하-, 씨발.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 정도 반응속도면 저건 이미 B급이 아니라 상위 B, 혹은 A급 하위 언저리라는 게 눈에 뻔히 보였고, 저 파티가 저 판정 그대로 들어갔다면 이건 사고사 직전이라는 뜻이었다.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은 "오 방금 그거 봤어요?" 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는데, 나는 그 흥분이 조금 역겨웠다. 사람이 저렇게 날아가서 두 번 튕기는 걸 보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게, 이 세상이 얼마나 빨리 사람의 목숨을 콘텐츠로 만들어버렸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놈의 세 번째 공격이 창을 든 남자의 팔을 통째로 뜯어놓기 직전, 방패를 든 여자가 다시 일어나 방패로 놈의 정면을 막아섰고, 그 짧은 틈에 뒤쪽에 있던 마법사 계열 헌터가 화염구 세 개를 연속으로 박아넣으며 균형을 무너뜨렸다.
파아앙- 파앙- 파앙-
화염구가 터질 때마다 놈의 살가죽이 지글거리며 타는 냄새가 게이트 바깥까지 옅게 풍겨왔는데, 그 냄새를 맡은 순간 몇몇 사람들이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섰지만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냄새에는 이미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창잡이가 놈의 목덜미에 창을 박아넣는 순간, 나는 그 동작의 궤적이 아주 익숙하다는 걸 깨닫고 잠깐 숨을 삼켰다.
저건 게임에서 흔히 쓰던 카운터 타이밍이었다.
어그로가 튀는 순간에 딜러가 들어가는, 딱 그 박자.
3초, 아니 2.5초 정도의 그 짧은 창을 정확히 캐치해서 들어가는 저 감각은, 수천 시간을 파티 플레이에 갈아 넣어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저 창잡이가 어느 길드 출신인지, 혹시 예전에 게임판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졌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이제 게임은 게임이 아니고, 저건 진짜 목숨을 건 싸움이었으니까.
캬아아악-
놈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며 안개를 몇 번 더 흩뿌리다가 결국 바닥에 무너져 내렸고,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함성과 박수가 터졌는데 나는 그 함성에 섞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왜냐면 몬스터가 죽으면서 흘린 마정석 하나가, 안개 바깥까지 굴러 나와 정확히 내 발치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주먹만 한 크기에, 안쪽에서 은은한 청록색 빛이 도는 그 돌덩이를 보면서 나는 아주 잠깐, 이걸 주워도 되나 하는 생각과 이걸 안 주우면 나는 병신이다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돌덩이 표면은 매끈했고, 만지면 살짝 따뜻한 느낌이 들 것 같았는데, 실제로 손끝이 가까워지자 정말로 미열이 느껴졌다.
결론은 뭐, 뻔했다.
주변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뿐이었고 저 안쪽 헌터들은 부상자 처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나는 별생각 없이 마정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자리를 떴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는데, 그게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흥분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헌터 등급이 없는 일반인이 마정석을 습득해도 처벌 조항은 없다. 다만 협회에 신고하지 않고 사적으로 처분하면 밀거래로 취급될 수 있는데, 그 경계가 은근히 애매해서 신고 안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절반은 된다는 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 아주 잘한 짓을 한 것이다.
마정석 하나만 제대로 처분해도 지은이 병원비 두 달치는 나올 테니까.
지은이는 내 여동생이고, 열여섯이다.
작년에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 인대를 다쳤는데 수술 후 재활 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밑으로 태민이라는 열세 살짜리 남동생이 하나 더 있어서 나는 지금 열아홉 나이에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억지로 짊어지고 사는 중이었다. 지은이는 목발을 짚으면서도 학교는 꼭 가야 한다고 우겼고, 태민이는 형이 힘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편의점 도시락 살 때 제일 싼 걸로 골라오는 게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부모님은 게이트가 열리기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셨는데, 뭐, 이 얘기는 하도 여러 번 곱씹어서 이제는 그냥 사실 하나로만 남아 있다.
죽었다.
그래서 나는 산다.
생각해보면 이 게이트라는 것도, 이 세상에 갑자기 뚝 떨어진 초자연 현상이라는 것도, 나한테는 그렇게 낯설지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비슷한 걸 겪어봤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온라인 게임 '크로니클'에서 무과금 유저들만 모아 만든 길드 '여명 클랜'의 리더였다.
서른 명 남짓한 인원으로 서버 랭킹 상위권까지 올라갔던 건 순전히 팀워크와 판단력, 그리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매달린 노가다 덕분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나랑 손발이 척척 맞던 부관 하나가 있었다.
서윤아.
조작 실력이나 상황 판단이 나보다 나은 순간도 종종 있었던, 그 클랜에서 유일하게 내가 진심으로 믿-, 아니 신뢰했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매일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같은 파티 채널에 접속해서, 던전 공략 루트를 짜고 보스 패턴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웃고 떠들던 시간이 있었다. 서윤아 목소리는 마이크 너머로도 밝았고, "오빠, 이번엔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은데?" 하면서 던지는 말 한마디에 나는 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애가, '황금기사단'이라는 과금 길드가 매달 무료 보상으로 상자 다섯 개씩을 뿌리는 걸 보고, 정확히 그 다섯 개짜리 상자 때문에 우리 클랜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에, 황금기사단은 여명 클랜을 통째로 스카웃하는 방식으로 흡수했고, 나만 리더 자리에서 쫓겨났다.
리더 강태현, 실적 미달로 강제 탈퇴.
그 공지가 클랜 게시판에 올라왔던 날, 나는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로그아웃도 못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서른 명 전부가 하루아침에 다른 길드 태그를 달고 나타났고, 나 혼자만 그 자리에 남아서 텅 빈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길드 마스터 이름이 오지훈이었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헌터 길드 방송으로 이름을 날리는, 그 오지훈이다.
하-, 씨발.
세상이 뒤집혀서 게이트가 열리고 헌터고 마정석이고 하는 판이 새로 짜였는데도, 결국 자본을 쥔 놈이 다 먹는 구조는 하나도 안 변했다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게임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돈 있는 놈이 사람을 사고, 사람 없는 놈은 결국 혼자 남는다. 그 단순한 법칙이 세계가 바뀌어도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나는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낮게 웃음을 흘렸다.
나는 마정석을 손에 쥐고 걸으면서, 이걸 어디에 팔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인터넷에 떠도는 헌터 협회 지정 매입소 주소를 검색했는데, 그 목록 맨 위에 뜬 게 하필 황금기사단 직영 감정소였다.
화면을 몇 번이고 스크롤해봐도 다른 매입소들은 죄다 거리도 멀고 평점도 별로였는데, 유독 그 감정소만 도보 십오 분 거리에, 리뷰 수도 압도적으로 많고 평점도 4.8이라는 게 얄궂었다. 마치 세상이 나한테 억지로 그 문을 열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훈아,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