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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견습 탐색자를 구한 다음 날, 협회에서 정식으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은 건 아침 여덟 시였다. 아직 씻지도 않은 채로 수화기를 들었는데, 저쪽에서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오후 두 시까지 협회 3층 조사실로 출석해 달라고 했다. 거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말투였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 끊었다. 구조된 탐색자의 이름은 나중에 들었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협회 조사관이 나를 따로 불렀다는 사실이었다. 조사실은 좁고 형광등이 하나 나가 있었다. 깜빡거리는 불빛 아래, 조사관은 서류 뭉치를 앞에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찰에는 '박준서'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자리에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기를 바랐다. "강도현 씨가 4층에서 견습생을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사관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런데 강도현 씨 등급이 3층 상시 활동 기록만 있는데, 어떻게 4층까지 이동하신 겁니까?" 설아가 옆에서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위험 신호입니다. 자율진화 관련 정보는 절대 노출하지 마십시오." 이런 상황에서까지 잔소리를 하는구나. 알아서 할 테니 좀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답했다. "비명이 들려서 뛰어갔더니 마침 근처였고요." "근처였다고 하셔도, 3층과 4층 사이에는 등급 제한이 걸려 있는 게 정상입니다. 시스템상 강도현 씨의 접근 권한으로는 4층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야 하는데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문이 열려 있었던 것도, 그냥 들어간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전부 빼고 말했을 뿐이다. 조사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지만, 딱히 걸고넘어질 증거가 없었다. 3층과 4층 입구가 붙어 있으니 물리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협회 입장에서는 사람을 구한 사람을 처벌할 명분이 없었다. 조사관은 몇 분 더 서류를 넘기며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몇 번 반복했다. 등급 시스템 오류일 가능성은 없는지, 게이트 관리 인력이 실수로 접근 권한을 잘못 부여한 건 아닌지, 그런 식이었다. 나는 매번 모르겠다고, 운이 좋았다고,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지루한 핑퐁이었지만 지치는 쪽은 나보다 조사관 같았다. "일단은 표창 대상으로 올리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삼켰던 숨을 뱉었다. 위기는 넘겼다. 다행이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내내 뒷목이 뻐근했다. 긴장이란 걸 몸이 먼저 알아채는 모양이었다. 환전 창구로 갔을 때, 윤아영이 벌써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 "들었어요. 4층에서 사람 구하셨다면서요." 목소리에 걱정과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창구 유리 너머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괜찮으셨어요? 다친 데는 없으시고요?" "괜찮습니다." "진짜요?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이시는데." "조사받고 오는 길이라서요." "아, 그거." 윤아영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 조사관들 원래 그래요. 뭐 하나만 특이해도 꼬치꼬치 캐묻거든요. 저도 예전에 등급 심사 때문에 불려가서 두 시간 동안 같은 질문 대답한 적 있어요." "두 시간이나요." "네. 나중엔 그냥 앵무새 된 기분이었어요." 윤아영이 웃으며 서류를 정리했다. "강도현 씨답네요." 그러다 다시 나를 보며 웃었다. "저번에 제가 4층, 5층 도전해보라고 했던 말, 진짜로 실현하실 줄은 몰랐어요." 그 말투에 딴 뜻은 없었지만, 뭔가 뿌듯해하는 것 같아서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사실 위기 상황에 어쩌다 발이 그쪽으로 향한 거지만, 그 오해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굳이 사실대로 말해서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었다. "다음엔 5층도 가시는 거 아니에요?" 윤아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또 어느 날 훅 가시는 거 아니에요? 이번처럼."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몰랐다. 다음번엔 또 무슨 일로 어디까지 가게 될지. 환전을 마치고 창구를 벗어나면서, 결정체 몇 개를 챙겼다. 손바닥 안에서 옅은 청록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루치 벌이라고 하기엔 초라했지만, 그래도 뭔가 남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설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스터, 어제 봉인된 축적치 해제에 대해 보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얘기했잖아. 초기화될 수도 있다면서." "보고하지 않을 경우, 프로토콜 관리 시스템이 이상 반응을 자체 감지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자발적 보고가 오히려 리스크를 낮출 수 있습니다." 가로등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설아의 은빛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밤바람이 조금 차가워서, 나는 재킷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설아를 봤다. "너, 초기화되면 어떻게 되는데. 진짜로." "현재의 인격 데이터가 삭제되고 기본형으로 재설정됩니다. 마스터에 대한 기억과 축적된 판단 패턴도 소실됩니다." "그러니까 죽는 거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유사한 결과입니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런 소리를 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안 했다. 밤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옆을 스쳐 지났다. 아무도 우리 대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했다. 옆에서 인공지능이랑 목숨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하겠나.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려 했는데, 저런 대답을 들으면 그게 잘 안 됐다. 기본형으로 재설정된다는 말은,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설아는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목소리도, 말투도, 저 뻣뻣한 존댓말도, 전부. "보고하지 마." 결국 그렇게 말했다. "규정 위반의 책임은 마스터께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상관없어. 어제 니가 그 결정 안 했으면 그 견습생은 지금 없어. 그거면 됐어." 설아는 다시 짧게 침묵했다. 이번엔 계산하는 침묵도, 결정하는 침묵도 아니었다. 그냥, 뭔가를 받아들이는 침묵 같았다. 몇 초 정도였지만, 그 몇 초가 평소 설아의 반응 속도에 비하면 길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보고를 보류하겠습니다. 다만 위험 요소가 남았다는 점은 유의하십시오." "어떤 위험 요소." "어제 마스터가 사용한 힘의 흔적입니다. 자율진화는 시스템 외부의 체계이기 때문에, 강한 힘의 사용은 아카시크 레코드에 비정상 파동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 파동은…" 설아가 잠시 말을 골랐다. "3년 전 마스터의 멘토를 죽인 개체, 경계 없는 마충의 파장과 부분적으로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걸음이 멈췄다. "뭐라고?" 주변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지나가던 오토바이 소리도, 가로수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도, 다 뒤로 밀려나고 설아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남았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분석 중입니다. 다만 원종 몬스터는 차원의 간극을 통해 이동하며, 강한 이형의 힘에 반응해 위치를 옮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어제의 사건이 그 개체의 주의를 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필. 견습생을 구한 대가로, 3년 전 박승리 씨를 죽인 그놈이 다시 이쪽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웃기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원한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놈을 찾아 헤맨 3년을 아무 실마리 없이 흘려보냈다. 전단지처럼 소문을 뿌려보고, 유사 사건 기록을 뒤지고, 협회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도 봤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이제 처음으로, 실마리 비슷한 게 생긴 거였다. "그럼 잘됐네." 나는 짧게 말했다. "위험을 자초하는 발언입니다." "알아. 근데 3년 동안 아무것도 못 찾았어. 지금 뭐라도 다가온다면, 그게 위험이든 뭐든 상관없어." 설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담금빛 금색 눈동자에 가로등 불빛이 비쳐서 반짝였다. 사람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의 눈빛만큼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았다. "마스터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상의 후에 결정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알았어."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알았다니까."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밤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십 분 남짓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파이프를 벽에 세워두고, 나는 결정체 몇 개를 손바닥 위에 늘어놓았다. 며칠 동안 모은 것들이었다. 미세한 축적치.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숫자. 청록빛이 도는 것도 있고, 옅은 회색빛이 도는 것도 있었다. 각각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이걸 다 모아봤자 뭐가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모아뒀다. 뭐든 쌓이면 언젠가는 쓸 곳이 생기는 법이었다. 싱크대에 물을 받아 손을 씻고, 냉장고에서 대충 남은 반찬을 꺼내 저녁을 때웠다. 하루종일 조사받고, 창구에서 잡담하고, 걸으면서 무서운 얘기까지 들었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씻고 나서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 설아가 아카시크 레코드를 다시 훑다가 조용히 알린 한마디가 있었다. "마스터. 협회 쪽에서 다음 달 정기 등급 재평가 대상자 명단에 마스터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나는 결정체를 만지던 손을 멈췄다. "그게 뭔데." "협회가 주관하는 대형 심사입니다. 통과하지 못하면 등급이 강등되고, 통과하면 더 깊은 층 접근 권한이 열립니다. 마스터의 최근 이상 행동들, 즉 4층 이동과 견습생 구조 사건이 이 심사 대상 선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필 지금. 자율진화도 아직 제대로 파악 못 했고, 마충의 흔적이 다가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협회 심사까지 겹쳤다. 나는 손바닥 위 결정체를 다시 내려다봤다. 옅은 청록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심사 방식은 어떻게 돼."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거 기록상, 등급별 실전 평가와 이론 평가가 병행되며, 심사 위원단 앞에서 직접 게이트 진입 및 처리 능력을 시연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원단 앞에서." "네." "그럼 자율진화 쓰다가 걸리면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다 정말 정신없이 바빠지겠다. 나는 결정체를 손에 쥔 채 천장을 바라봤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 희미하게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설아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대신 그 금빛 눈동자만 어둠 속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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