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20미터 백룡이 된 사원

1화

이름은 강용준. 한빛물류 소속 사원이었다. 이름 가운데 용(龍) 자가 박혀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때부터 별명은 늘 용가리였고, 고등학교 때는 용용이, 대학 때는 그냥 용이었다. 부모는 아들이 크게 되라고 지은 이름이라 했지만, 정작 용준은 물류센터 야간조로 배정받아 지게차 면허를 따는 게 인생의 절정이었던 남자였다. 초등학교 때 담임은 생활기록부에 "성실하나 특출한 재능은 보이지 않음"이라 적었고, 고등학교 때 담임은 "무난함"이라 적었다. 대학 진학은 성적표 숫자가 정해준 대로 흘러갔고, 전공은 물류학과였는데 정작 본인은 왜 그 학과에 갔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원서를 넣었더니 붙었다. 대학 시절 우연히 등록한 합기유술 동아리에서 초단까지 땄고, 취업 후에도 새벽마다 도장에 나가 몸을 풀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좋았다. 흐름을 따라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는 그 감각이, 어쩐지 자신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밀리면 밀리고, 흘리면 흘리고, 버티지 않아도 살아남는 법. 도장 사범님은 늘 말했다. "힘으로 이기려 들지 마라. 흐름을 타면 몸이 알아서 답을 준다." 용준은 그 말을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다. 세상이 그를 어디로 흘려보내려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새해 첫 출근길이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다는 뉴스를 들으며 패딩 지퍼를 목까지 채운 채 집을 나섰다. 입김이 하얗게 퍼졌고, 골목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눈발이 흩날렸다. 여동생 강하나가 문자를 보냈다. "오빠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는 연애나 좀 해봐." 용준은 웃으며 답장을 눌렀다. "너나 잘해라." 그게 그해 첫 문자였고, 나중에 돌아보면 아주 오랫동안 보내지 못할 마지막 평범한 문자였다. 버스는 3분 늦게 왔고, 정류장에는 자신을 포함해 다섯 명이 서 있었다. 교복 입은 학생 둘, 출근 복장의 여자 하나, 어깨에 배낭을 멘 노인 하나, 그리고 용준. 버스 정류장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터졌다.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뼈가 늘어나는 느낌도 아니었고,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도 아니었다. 명치 근처에서 뜨거운 것이 확 퍼지더니, 그다음부터는 통증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그냥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옷이 먼저 찢어졌다. 그다음 피부색이 하얗게 변했다. 손끝에서 비늘이 자라났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용준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부풀어 올랐다. 교복 입은 학생 하나는 넘어졌고, 노인은 배낭을 내던지고 뛰었다. 출근 복장의 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정류장 지붕이 날아갔다. 신호등이 뽑혔다. 근처 편의점 유리창이 통째로 깨졌다. 용준의 몸은 20미터가 넘는 백룡으로 변해 있었다. 흰 비늘이 아침 햇빛에 반짝였고, 등을 따라 뿔이 솟았고, 꼬리는 도로 두 개 차선을 가로질렀다. 근처를 지나던 트럭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도로에 그대로 정차했다. 뒤따르던 택배 트럭도, 그 뒤의 승용차도 줄줄이 멈춰 섰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내 촬영했고, 누군가는 그대로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는 소문이 나중에 돌았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다더라. 용준 본인이 가장 당황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물류회사 사원 강용준이었다. 그런데 몸은 거대한 짐승이었다. 팔다리는 앞다리와 뒷다리로 바뀌어 있었고, 목소리를 내려 하면 사람 말이 아니라 짐승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이거 꿈인가. 회사에 늦으면 어쩌지. 아니, 이 상태로 회사를 갈 수는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뒤섞였다.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차 사이렌이 몰려왔고, 방송국 헬기가 뜨기 시작했다. 뉴스 속보 자막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서울 상공,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출현.' 자막 아래로 앵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왔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어떤 이는 이무기라 했고, 어떤 이는 CG라 했고, 어떤 이는 그냥 망했다고 했다. 경찰관 하나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발포한다!" 발포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그걸 알았지만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도로가 흔들렸고, 숨을 크게 내쉬는 것만으로 근처 가로수가 휘청였다. 이대로 있으면 누군가는 진짜로 다칠 것 같았다. 그 순간 용준을 살린 건 다름 아닌 합기유술이었다. 몸이 통제되지 않을 때는 힘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흐름을 타야 한다고, 도장 사범님이 늘 말했다. 용준은 그 말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몸의 중심을 찾았다. 놀랍게도 그 거대한 몸에도 중심이라는 게 있었다. 척추를 따라 흐르는 어떤 축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은 것 같았다. 몸무게 20톤이 넘는 짐승도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용준은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 축을 붙잡은 순간 몸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날개는 없었지만, 몸을 뒤틀며 밀어내는 근육의 파동만으로 공중에 떠오를 수 있었다. 세상이 놀랄 일이었지만, 용준 본인이 제일 놀랐다. 나는 순식간에 도시 상공으로 떠올랐다. 아래로 서울이 작아졌다. 한강이 실처럼 보였고, 빌딩들이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흩어지는 게 보였다. 헬기 한 대가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나는 그 헬기를 향해 딱히 위협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봤는데, 오히려 헬기는 더 멀리 물러났다. 그게 더 나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그냥 북쪽으로 몸을 틀었다. 도심에 계속 있다가는 자신도, 다른 사람도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와중에도 회사 생각이 났다. 첫 출근길에 이 무슨 사고냐. 지각계는 어떻게 써야 하나. 사유란에 뭐라고 적어야 하나. "본인 신체가 갑작스레 거대 백룡으로 변이하여 출근이 불가하였음"이라고 쓰면 팀장이 믿어줄까. 인간이 그럴 때가 있다. 세상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출근 문제를 걱정한다.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짐승의 목소리로 한 번 크게 울었는데, 그 소리에 아래쪽에서 또 한 번 비명이 터졌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한 시간쯤 날았을까, 산세가 험한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어디쯤이었다. 도시의 불빛과 소음이 사라지고, 눈 덮인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졌다. 몸의 통제가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사람이 없는 산악지대로 방향을 잡았다. 바람을 가르는 감각도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흐름을 타면 된다. 사범님 말이 맞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폐허가 된 사당 하나였다. 기와가 절반쯤 무너져 있었고, 단청은 색이 다 벗겨져 회색에 가까웠다. 주변 나무들은 온통 눈에 파묻혀 있는데, 그런데도 사당 지붕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은 이상한 자리가 있었다. 마치 그 자리만 온도가 다른 것처럼. 나는 그 이상한 위화감에 이끌려,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 채로 그곳을 향해 방향을 꺾었다.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하강했다. 거대한 몸을 사당 앞마당에 억지로 눕히다시피 내려앉았다. 마당 흙바닥이 움푹 꺼졌고, 담장 일부가 무너졌다. 그 소란에 사당 문이 벌컥 열렸다. 안에서 나온 것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었다. 허름한 한복 차림에,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빗자루를 떨어뜨리고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어, 어어……." 노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게 다였다.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입술은 몇 번이나 벙긋거렸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노인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짐승의 울음뿐이었다. 목을 낮추고,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게 몸을 웅크려봤는데도 노인은 여전히 사색이었다. 그 순간 사당 안쪽, 무너진 문틈 사이에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작고, 하얗고, 서늘한 기운이었다. 마치 냉기가 걸어 나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살갗이라는 게 있었다면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노인이 문틈을 등지고 서며 소리쳤다. "설, 설연님! 이게, 이게 대체 뭡니까!"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갈라졌다. 노인은 그 존재를 지키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섰다. 빗자루는 이미 발치에 떨어진 채였다. 나는 그제야 이 사당이 완전히 버려진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안에 뭔가가, 혹은 누군가가 있었다. 사당 지붕에 눈이 쌓이지 않았던 이유도 그제야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미 나를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눈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눈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발소리를, 아니 발소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기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발소리를 듣는 순간, 이유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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