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매미 소리가 먼저였다.
쨔아아, 낮게 깔리는 울음소리. 그 위로 사람들 발소리가 겹쳤다.
2026년 7월, 서울역 동쪽 광장. 오후 두 시의 열기가 아스팔트에서 그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신발 밑창이 녹아 붙을 것 같은 더위였다. 콧속으로 훅 끼쳐드는 열기, 그다음에야 매미 소리, 그다음에야 사람들.
나는 늦었다.
정확히는 나는 항상 늦었다. 초등학교 입학식도 십 분 늦게 도착했고, 고1 첫날에는 담임이 출석부를 이미 두 번 부른 뒤였다. 열여덟 살 생일에도 친구들보다 삼십 분 늦게 나타나서 케이크가 다 눅어 있었다. 인생의 모든 시작점에서 나는 늘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학원 등록 마감이었다. 3시까지 가야 환불이 안 되는 그 학원. 이번 달 알바비를 통째로 갈아 넣은 그 학원. 뛰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늦으면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엄마는 분명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 표정이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져서, 나는 더 빨리 뛰었다.
광장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역사 앞 계단, 버스킹 공연대, 노점상 냄새. 떡볶이 기름 냄새 사이로 아이 우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누군가는 캐리어를 끌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걷고 있었다. 평범한 오후였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소은아! 손 놔지 마!"
젊은 여자가 소리쳤다. 인파에 밀려 손이 벌어졌고, 아이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학원 마감 시간 같은 건 그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뭐가 됐든, 아이 하나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급했다. 나는 원래 남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마 그것도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공기가 이상했다.
소리 없이. 정말 아무 소리도 없이, 광장 한가운데 공간이 일그러졌다. 마치 물속에서 유리를 보는 것처럼, 배경이 휘어졌다가 다시 펴졌다. 나는 처음엔 열기 때문에 생기는 아지랑이인 줄 알았다. 여름이면 흔히 보이는 그런 것. 그러나 아지랑이는 저렇게 또렷한 경계선을 만들지 않는다.
쩌 억-.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다.
검은 균열이었다. 허공에 뚫린 구멍, 그 가장자리가 타르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균열의 안쪽은 그냥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깊고, 더 무거운 무언가였다. 마치 눈이 그 어둠을 보는 게 아니라, 어둠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
비명이 먼저 터졌다. 그다음에야 나는 그 안에서 뭔가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크르르―.
낮은 울림이 광장을 채웠다. 나는 처음에 그게 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개는 저렇게 크지 않다.
독수리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저런 이빨을 가지지 않는다.
곰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곰은 저렇게 낮게 기지 않는다. 저렇게 관절이 뒤틀린 자세로 몸을 밀어내지 않는다.
검은 털로 뒤덮인 몸통이 균열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 나는 그게 이 세상에 없던 것이라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되는 몸집. 붉은 눈. 발톱이 아스팔트를 긁으며 파고들었다. 아스팔트가, 그 단단한 아스팔트가 발톱 아래에서 종이처럼 갈라졌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려 했지만 인파에 갇혀 서로를 밀어냈다. 넘어지는 사람, 밟히는 사람.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고, 누군가 내 발을 밟았다. 통증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나의 문장만 반복해서 돌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저게 뭐야.
그 한가운데, 소은이라 불린 아이가 혼자 서 있었다. 사람들의 물결에서 밀려나 작은 웅덩이처럼 남겨진 자리. 아이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자기보다 몇 배는 큰 그림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아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뛰었다.
뛰면서도 내가 왜 뛰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평생 아무것도 책임진 적 없는 다리가. 시험에 늦어도, 약속에 늦어도, 심지어 버스를 놓쳐도 그냥 걸었던 다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의 다리를 빌려 쓰는 것 같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느낌으로, 나는 사람들을 밀치고, 넘어지려는 몸을 억지로 세우고, 아이를 향해 달렸다.
흑수리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이 아이를 향했다.
나는 아이를 밀치듯 끌어안고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아니라, 공기 자체가 밀려나는 소리였다.
그다음은 감각으로만 남았다.
귓가에 닿는 축축한 숨. 뜨겁고 비릿한. 마치 방금 도살한 짐승 옆에 서 있는 듯한 냄새였다.
목덜미에 뭔가 파고드는 감각. 뜯기는 감각이라기보다는, 뭔가가 세상에서 나를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아픔이라는 단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크기의 무언가가 목덜미에서부터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손끝이 저려왔다. 발끝까지 저려왔다. 색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처럼, 시야가 하얗게 바스러졌다.
"...도망가."
내가 뱉은 말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목소리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나를 흉내 내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그리고 어두워졌다.
뚜―.
이명 같은 소리 하나가 오래 울렸다. 그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냄새도, 온도도, 무게도. 그냥 그 이명 하나가 세상의 전부였다.
***
눈을 뜬 게 아니었다.
뜬다는 감각조차 없이, 그냥 다시 보였다.
광장이었다. 여전히 광장이었다.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 위에, 조금 떠 있었다. 시점이 이상했다. 눈높이가 원래 내 것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마치 CCTV 화면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이건 화면이 아니라 진짜였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려 했다. 손이 얼굴을 그대로 통과했다.
"...뭐야."
목소리가 이상했다. 울림이 없었다. 마치 이불을 뒤집어쓴 채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이상했다. 목소리는 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머릿속에서 바로 공기로 옮겨지는 것 같았다.
내 몸을 내려다봤다. 반투명했다. 팔도, 다리도, 옷도. 흐릿한 유리 형태로 나를 그려놓은 것 같았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 봤다. 접히긴 했다. 그런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저항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허공을 움켜쥐는 느낌.
나는 아래를 다시 봤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광장 한쪽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검붉은 것이 넓게 번져 있었고, 그 옆에 아이 하나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소은이었다. 아이는 살아 있었다.
쓰러진 사람은, 옷차림이 익숙했다. 지나칠 정도로 익숙했다.
저거 내 옷인데.
그 순간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머리 어딘가가 고의로 그 연결을 늦추고 있는 것 같았다.
치직.
무언가 시야 앞에서 깜빡였다. 형광등이 나가기 직전처럼, 지지직 소리와 함께 시야 한쪽에 사각형 창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그게 눈앞에 뜬 건지, 눈이라는 게 이제 없는데도 뜬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아무튼 보였다. 그게 중요했다.
[상태]
종족: GHOST(고스트)
HP: 0/10 (사망 처리됨)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확인.
네 번째로 읽었을 때야 그 뜻이 이해가 됐다.
사망 처리됨.
나는, 죽었다.
한동안 나는 그 창을 다시 읽고,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었다. 글자가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처럼. 게임에서 흔히 보던 그런 시스템 창이, 왜 지금 내 눈앞에, 아니 내 눈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시야에 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고. 근데 창은 자꾸 거기 있었다. 사라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그냥 냉정하게 그 숫자만 보여주고 있었다.
0/10.
그 숫자가 유독 눈에 밟혔다. 10분의 0.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전히, 정확하게 끝난 숫자.
아래 광장에서는 여전히 비명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흑수리는 아직 그 자리에 서서 붉은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소은이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광장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멍하니 그 장면을 내려다봤다.
내가 죽었다.
그 사실 하나가, 이 반투명한 몸보다도 더 무겁게 나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