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인정 많은 집행관

3화

노준혁의 오피스텔은 도심에서 삼십 분 거리, 재개발이 미뤄진 골목 안쪽에 있었다. 낡은 간판들이 반쯔 떨어져 나간 상가 사이로 좁은 도로가 이어졌다. 가로등 하나는 깨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깜빡거리기만 했다. 이도현은 서은하를 부축한 채 계단 앞에 섰다. 곰팡내가 밴 계단이었다. 벽지는 누렇게 변색됐고, 손잡이는 습기에 미끄러웠다. 한 층. 또 한 층. 이도현은 서은하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뿔 주변 피부가 아까보다 더 부어 있었다. 검붉은 혈관이 관자놀이까지 뻗어 있었다. 숨소리는 거칠었고, 걸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조금만 더." 백서준이 반대편에서 서은하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목소리도 갈라져 있었다. 서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닦을 힘도 없어 보였다. 3층. 이도현이 문 앞에 섰다. 낡은 철문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마다 녹이 슬어 있었다. 노크할 필요도 없었다. 문이 먼저 열렸다. 노준혁이 문 안쪽에 서 있었다. 반백의 머리, 마른 체구, 눈매만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래된 담배 냄새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뭘 데려왔어."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이도현이 서은하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현관을 지나 거실 소파에 그녀를 앉혔다. 백서준이 곧바로 옆에 붙어 앉았다. 노준혁은 문을 닫고 팔짱을 낀 채 서은하를 내려다봤다. 시선이 이마의 뿔에서 멈췄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마인이군."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우호형이에요." 백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우호형은 존재하지 않아." 노준혁의 목소리가 낮았다. "기록상 그래." 정적이 흘렀다. 이도현은 벽시계를 확인했다. 자정을 넘긴 12시 12분. '접촉 시점부터 48시간.' 머릿속에서 조항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특이현상대책과 시행령 15조. 마인 발견 시 48시간 내 제거 또는 확보 보고 의무. 미이행 시 담당 집행관은 은폐죄 및 직무유기죄로 처벌. 최고 형량은 7년. 최소 파면. 이도현의 위장이 조여들었다. 〈오늘 밤 11시 47분부터 시계가 돌고 있다.〉 남은 시간은 47시간 35분. 숫자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노준혁이 소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낡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담배를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보고 안 했지." "안 했어요." "48시간 규정, 알지." "알아요." "그런데 데려왔다." 노준혁의 눈빛이 이도현을 훑었다. 위아래로, 천천히. 평가하는 눈빛이었다. "너 원래 이런 놈 아니잖아." 이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스스로도 왜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규정대로였다면 진작 보고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안 했지.〉 서은하가 갑자기 몸을 웅크렸다. 목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은하!" 백서준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서은하의 뿔에서 검은 기운이 실처럼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늘었지만 점점 굵어졌다. 방 안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창문에 서리가 앉았다. 유리 표면을 타고 흰 결정이 번지듯 퍼져나갔다. 노준혁이 담배를 내려놓고 서은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손끝이 서은하의 피부에 닿는 순간, 그가 미간을 좁혔다. "통제가 안 되고 있어." "왜요?" 이도현이 물었다. "변이 초기엔 마력이 폭주해. 안정제가 없으면 이틀 안에 자기 마력에 잡아먹혀." 노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이틀." 그 말이 방 안에 오래 남았다. 이도현의 시야에 또 알림이 떠올랐다. 【특이현상대책과 알림. 미보고 경과 시간: 00:26:13. 신속한 이행을 통해 특별 포상금 혜택을 놓치지 마세요.】 이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포상금. 마인 확보 성공 시 지급되는 특별 포상금은 3천만 원. 동생 유학 자금으로 부족했던 정확한 그 액수였다. 〈그 돈이면 동생이 원하던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 돈이면 이 지긋지긋한 일을 조금 덜 지긋지긋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반면, 마력 안정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특이현상대책과 내부 창고에만 있었고, 승인 없이 반출은 불가능했다. 안정제 없이 두면 서은하가 죽는다. 보고하면 포상금이 들어온다. 대신 서은하는 즉결 처리된다. '둘 다 죽는 거잖아.' 이도현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두통이 뒤통수까지 번져 있었다. 노준혁이 이도현을 향해 말했다. "안정제 구할 방법 하나 있어." "뭔데요." "위험해." "뭐데요." 노준혁이 담배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으로 케이스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저 애 열이나 떨어뜨려." 서은하의 몸에서 냉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다. 백서준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의 손도 서서히 얼어붙는 듯 굳어갔다. "은하야, 나 좀 봐." 백서준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 손바닥에 닿는 피부가 얼음장 같았다. 서은하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이도현은 손바닥에 다시 인장을 그렸다. 이번엔 압축진이 아니라 온열진이었다. 손끝에서 열기가 뭉쳐졌다. 따스한 청록색 빛이 방을 덮었다. 빛이 서은하의 몸을 감싸는 순간, 검은 기운이 조금씩 옅어졌다. 서은하의 몸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어깨의 떨림도 멎어갔다. 노준혁이 손목을 놓고 물러섰다. 이마에 밴 땀을 소매로 닦았다. "임시방편이야. 오래 못 가." "얼마나요." "몇 시간.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도." 숨을 돌리는 사이, 이도현의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지지직- 방 안 모두의 시선이 그의 허리춤으로 쏠렸다. "이도현 집행관. 본부입니다. 위치 추적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즉시 응답 바랍니다."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그 사무적인 톤이 오히려 더 서늘했다. 이도현의 손끝이 굳었다. 위치 추적. 그가 착용한 요원 배지 안에는 위치 신호기가 내장돼 있었다.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물건이었다. 지금은 몸에 붙은 폭탄 같았다. 무전 응답을 하지 않으면, 신호기 자체를 확인하러 온다. 노준혁이 낮게 말했다. "배지 벗어." "그럼 은폐 확정이에요." "이미 확정이야, 인마." 노준혁의 목소리엔 웃음기조차 없었다. "넌 마인을 신고하지 않고 데려왔어. 이 시점부터 넌 이미 규정 위반자야. 배지를 차고 있든 안 차고 있든 똑같다." 이도현은 배지를 내려다봤다. 손끝이 배지 표면을 훑었다. 〈벗으면 신호가 끊긴다.〉 〈신호가 끊기면 본부는 최후 위치를 기점으로 수색을 시작한다.〉 〈벗지 않으면 지금 이 위치가 그대로 노출된다.〉 둘 다 답이 아니었다. 이도현은 무전기 스위치를 껐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뚝 끊겼다. 노준혁이 창밖을 내다봤다. 블라인드 사이 좁은 틈으로 시선을 던지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골목 어귀, 검은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시동을 끄지 않은 채였다. 배기구에서 흰 연기가 느리게 올라오고 있었다. 운전석 쪽 창문이 반쯤 내려가 있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이쪽 건물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