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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신고는 3급 하급 마물, 배회형이라고 접수됐다. 접수 시각 오후 11시 42분. 등급 낮은 잡무였다. 이도현은 그렇게만 생각했다. 무전기를 목에 걸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흘깃 봤다. 자정까지 18분. '금방 끝난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오래 방치된 습기와 쓰레기가 뒤섞인 냄새. 젖은 시멘트벽을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물웅덩이가 찰박거렸다. 부서진 셔터 하나가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그 앞에 웅크린 그림자가 보였다. 이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손끝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지직- 손바닥에 옅은 청백색 인장이 떠올랐다. 기초 마력 조작술, 3단 압축진. 각성자 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기술이었다. 하급 마물 하나 잡는 데 이 이상은 필요 없었다. '이 정도면 3분 안에 끝난다.' 그림자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 들려온 건 마물의 울음이 아니었다. 비명이었다. 날카롭고 짧았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도현의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인장을 유지한 채로 뛰었다. 발소리가 좁은 골목 벽에 부딪혀 울렸다. 탓, 탓, 탓- 골목을 돌자 눈에 들어온 건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하급 마물 사체 두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몸통이 반으로 갈라진 채였다. 검은 체액이 시멘트 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미 누군가 처리한 뒤였다. 이도현의 눈이 좁아졌다. '하급 마물 두 마리를 이렇게?' 그리고 그 앞에, 웅크린 소녀 하나가 있었다. 이마 위로 뿔이 돋아 있었다. 검은 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 매끈한 표면이 골목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피부는 창백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동자 안쪽에서 작은 불씨가 타는 것처럼 흔들렸다. 교복이 찢겨 있었다. 소맷단이 뜯긴 자국을 따라 피가 배어 있었다. 서은하. 이도현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역 관할 학교 명단에 있던 이름. 평범한 고등학생. 각성 이력 없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도현의 머릿속에서 규정 조항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특이현상대책과 시행령 12조 3항. 마인으로 변이한 인체는 현장 즉결 제거 대상으로 분류함.】 기계적인 문구였다.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문장이었다. 손이 먼저 반응했다. 마력이 손끝에 모였다.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훈련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지지지직- 인장이 다시 떠올랐다. 아까보다 더 진하게. 그때 누군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백서준이었다. 이도현은 그 얼굴을 알았다. 서은하와 같은 학교 교복.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어깨가 크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려 관자놀이를 타고 목까지 이어졌다. "물러나요." 목소리가 떨렸다. 다리도 떨렸다. 무릎이 살짝 꺾일 듯 흔들렸다.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은하를 등 뒤로 완전히 가리듯 자세를 낮췄다. "규정입니다." 이도현이 낮게 말했다. 손바닥의 인장이 더 밝게 타올랐다. 청백색 빛이 골목 벽을 물들였다. "이 앤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백서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 손을 펼쳐 이도현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저 마물들, 은하가 저 죽인 거예요. 절 지키려고." 이도현의 눈이 백서준의 팔을 훑었다. 찢어진 소매 사이로 붉게 부어오른 상처가 보였다. 마물의 발톱에 긁힌 자국. "제가 먼저 습격당했어요. 은하가 안 왔으면 저 지금 여기 없어요." 서은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였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컥, 컥, 짧은 숨이 목구멍에서 끊겼다. 뿔 주변 피부가 파랗게 부어 있었다.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몸 전체가 통제되지 않는 마력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어깨, 등, 무릎, 전부 미세하게 떨렸다.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다. '죽이지 않았다.' 이도현의 목구멍이 좁아졌다. 침을 삼켰다. 마른침이 넘어가지 않았다. 손끝이 떨렸다. 규정은 명확했다. 인명 피해 여부는 판단 기준이 아니었다. 변이 자체가 기준이었다. 시행령에 예외 조항은 없었다. 이도현이 몸담은 조직에서 세 번 이상 강조된 원칙이었다. '인간을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인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처리 사유다.' 훈련받은 대로였다. 규정집 첫 장에 박제된 문구였다. 마력 인장이 손바닥에서 완전히 형성됐다. 압축진 3단. 방출하면 반경 5미터가 소멸한다. 서은하도, 백서준도, 이 골목의 셔터와 벽까지 전부. 백서준이 두 팔을 벌렸다. 서은하를 완전히 가리듯 몸을 던졌다. "쏘려면 저부터 쏘세요."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다. 눈빛이 정면으로 이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이도현의 시야가 흔들렸다. 어지러웠다. 골목의 풍경이 물결처럼 일그러졌다.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삐이- 낯선 기억이, 아니, 낯설지 않은 기억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장면.' 기억 속에서도 누군가가 자신 앞을 막아섰었다. 같은 골목. 같은 자세. 같은 대사. '쏘려면 저부터 쏘세요.' 똑같은 문장이 다른 시간, 다른 순간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이도현의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뒤통수 쪽에서 뭔가가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왜 이 장면을 알고 있지.' 이도현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인장이 손바닥 위에서 흐트러지며 사그라들었다. 청백색 빛이 서서히 옅어지다 완전히 꺼졌다. 백서준은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채였다. 자세를 풀지 않았다. 이도현이 손을 내렸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서은하가 처음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붉은 눈동자가 이도현을 향했다. 초점이 흐렸다. 뭔가에 짓눌린 듯한 눈빛이었다. 골목 저편에서, 아주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일정한 박자였다. 서두르지 않는, 그러나 확실하게 가까워지는 소리였다. 이도현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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