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균열이 우리를 완전히 삼키기까지 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몸이 붕 뜨는 느낌, 그다음엔 속이 뒤집히는 감각.
마치 세탁기 안에 들어간 빨래가 된 기분이었다.
어제도 이랬던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눈을 떴을 때 다시 그 붉은 하늘이 보였다.
어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흙이 더 검고, 공기가 더 무거웠다.
숨을 들이쉬면 목구멍이 따끔거릴 정도로 텁텁했다.
발밑의 흙을 밟으니 마치 재를 밟는 듯한 감촉이 올라왔다.
"여, 여기 어디야?"
오채영이 옆에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 혼자가 아니었다.
오채영, 박태산, 사월 하늬, 사월 하람.
5반 전체가 같은 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적어도 다섯 명이 함께라면 어제보다는 나을 거라고,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 어제보다 더 위험한 곳 같은데."
박태산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의 눈이 사방을 훑는 속도가 어제보다 빨랐다.
지형을 보니 확실히 어제보다 등급이 높은 게이트였다.
땅이 갈라진 틈에서 검은 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나는 전생의 지식을 뒤졌다.
이 붉은 하늘, 이 무거운 공기, 이 특유의 탄내 섞인 냄새.
어디서 본 조합인데.
"미고 서식지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말해놓고도 스스로 놀랐다.
내가 이걸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이 순간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고가 뭐야?"
오채영이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과 불안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곤충형 생물. 무리 지어 다니고 사냥할 때 소리를 이용해요. 조심해야 해요."
"니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그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지금 그걸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설명하다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윙, 윙, 윙.
날개 소리 같은 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날갯소리가 겹쳐지면서 공기 자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다."
"뭐가?"
"미고 무리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들 자세를 잡았다.
오채영이 손을 들자 붉은 빛이 손끝에 모였다.
빛은 처음엔 희미했지만 순식간에 형태를 갖춰갔다.
"내가 방어막 칠게!"
신력으로 만든 반투명한 막이 우리 주변을 둘렀다.
막은 마치 비눗방울처럼 얇았지만, 그 안에 서 있으니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이 됐다.
박태산은 기력을 다리에 모아 자세를 낮췄다.
근육이 팽창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월 남매는 서로 등을 맞대고 각자의 힘을 준비했다.
하늬의 손끝에서 요기가 흘렀고, 하람은 조용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다들 실전 경험이 있는 게 느껴졌다.
어제 게이트에서 살아 나온 게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마력총을 꺼냈다.
또 이 미친 물건을 써야 하나.
1이 나오면 아무 소용 없고 100만이 나오면 우리 전부 다 날아간다.
어느 쪽이든 답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거 말고 내가 가진 게 없었다.
가진 게 도박판 슬롯머신이라니, 참 기가 막힌 국가추천이다.
미고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십 마리, 아니 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검은 몸체, 곤충의 다리, 그리고 날개 대신 붙어 있는 얇은 막.
그 막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바로 저 윙윙거림이었다.
소리를 이용해 사냥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눈으로 보니 실감이 났다.
녀석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리를 향해 대열을 좁혀오고 있었다.
오채영의 방어막에 첫 충돌이 있었다.
쿵!
막이 흔들렸다.
막 표면에 파문이 일듯 균열이 번졌다.
"오래 못 버텨!"
오채영이 소리쳤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박태산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기력을 실은 발차기로 미고 한 마리를 날려버렸다.
그의 발끝에서 파직, 소리가 났다.
하지만 곧바로 세 마리가 그를 에워쌌다.
"태산아!"
사월 하늬가 요력을 뿜어 그를 도왔다.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미고들의 다리를 얽어맸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숫자가 너무 많았다.
방어막 안에 있는 우리조차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방어막이 두 번째 충돌에 균열이 생겼다.
쩍, 하는 소리가 났다.
세 번째면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총을 겨눴다.
쏘는 수밖에 없다.
1이든 100만이든, 뭐든 나와라.
제발.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소리가 났지만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뭐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시 당겼다.
찰칵.
또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손이 떨렸다.
이 순간에 오작동이라니.
평생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나.
오채영의 방어막이 세 번째 충돌에 완전히 깨졌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붉은 빛의 파편이 흩어졌다.
미고 무리가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채영 씨!"
내가 소리쳤지만 오채영은 이미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미고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그 끝이 날카롭게 벌어지는 게 보였다.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총구에서 빛이 터졌다.
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주변 지형 자체가 뒤집혔다.
100만이었다.
하필 지금.
왜 하필 지금 이 숫자가.
폭발의 여파로 미고 무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검은 몸체들이 하늘로 튕겨 올라가는 게 마치 폭죽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여파가 우리한테도 미쳤다.
나는 뒤로 나가떨어졌고, 오채영도 폭풍에 휩쓸려 굴렀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으, 으아악!"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방이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미고들은 흩어졌거나 죽었다.
검게 그슬린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다들 살아 있었지만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오채영이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다리를 짚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니, 방금 그거 뭐야?"
"제 총이... 원래 그래요. 조절이 안 돼요."
"조절이 안 되는 총을 왜 들고 다니는데!"
할 말이 없었다.
국가에서 준 걸 어쩌란 말인가.
나도 이 총이 사람 잡을 물건인 줄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면 더 맞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박태산도 다가와 흙을 털며 나를 흘겨봤다.
"덕분에 살긴 했는데, 다음엔 나부터 조준하지 마라."
"조준한 게 아니라 그냥... 나갔어요."
"그게 더 무섭다는 거 알지?"
사월 하늬와 하람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따가웠다.
그때 다시 균열이 열리며 우리를 학교로 돌려보냈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강선화는 이미 교탁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우리가 어디 갔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분필 가루가 손끝에 묻은 채로, 그녀는 우리를 훑어보며 옅게 웃었다.
"다들 살아 돌아왔군."
"선생님, 이게 무슨 수업이에요! 애들 다 죽을 뻔했잖아요!"
박태산이 화를 냈다.
그의 목소리가 교실 벽에 울릴 정도로 컸다.
강선화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봤다.
"살아 돌아왔으면 됐다."
"됐다니요? 이게 안전장치 없이 되는 게 말이 됩니까?"
"이 학원에 완전히 안전한 곳은 없다."
그 말이 가슴을 콱 찔렀다.
안전한 곳이 없다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나는 그제야 이 학원의 진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입학식날 우연이 아니었다.
어제도 오늘도, 전부 계획된 위험이었다.
계획된 위험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그것 말고 다른 표현이 없었다.
교실 안은 여전히 흙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아무도 그 냄새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이 학원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이라는 뜻이니까.
그날 밤, 나는 설아에게 처음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말을 꺼내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무서웠는지, 순서를 정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설아는 조용히 듣더니 말했다.
"위험한 곳이라고 했잖아."
"...맞아. 근데 생각보다 더 위험하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만두면 안 돼?"
"그만두고 싶어도 국가추천이라 못 그만둬."
설아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하얀 손이 유난히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 내가 지켜줄게."
"...고마워."
그 순간만큼은 조금 위로가 됐다.
설아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은 붉은 하늘도, 미고 무리도, 오작동하는 총도 잠시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학원의 진짜 위험은 게이트 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며칠 뒤, 학교 밖에서 다시 확인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