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결말을 아는 신입생

2화

결국 쏘지 못했다. 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이대로 끝인가.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뭐라고 할까. 장례식장에 사람은 몇 명이나 올까. 국가추천으로 입학해서 첫날에 죽는 신입생, 뉴스에 한 줄 나올까. '화제의 국가추천 신입생, 입학 당일 사망' 같은 제목으로. 댓글은 뭐라고 달릴까. '그러니까 방구석에 있었어야지' 같은 말이 달릴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콰직!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떴다. 딥원 유생체 하나가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피 같은 검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이, 신입생. 눈은 뜨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지." 남자였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단단해 보이는,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 오른팔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의수였다. 관절 마디마디가 정교하게 짜여 있고, 그 틈으로 은은한 빛이 흘렀다. "넌 뭐..." "2학년 1반 장세천. 됐고, 뒤로 빠져 있어." 장세천 선배는 팔을 뻗었다. 의수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영력. 나도 아는 힘이었다. 실전에서 처음 보는 거지만. 책에서 본 삽화랑은 차원이 달랐다. 빛이 채찍처럼 뻗어나가며 남은 딥원 유생체들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쿵! 쿵! 쿵! 연달아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이었다.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방금까지 나를 잡아먹으려던 것들이 전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자리 같았다. 아니, 태풍보다 더 정확했다. 태풍은 무작위로 부수지만, 저 채찍은 딥원만 골라서 갈랐다. "허, 허..."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쿵쾅쿵쾅,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았다. "살았다..." "살긴 했는데, 총은 왜 안 쐈어?" 장세천 선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손이 아니라 정확히는 의수 반대쪽, 진짜 손 쪽이었다. "그게, 위력 조절이 안 되는 총이라서요." "뭐?" "1이나 100만밖에 안 나와요. 랜덤으로." 선배는 잠깐 나를 빤히 보다가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사람 놀리는 웃음 같았다. "그거 물건 하나는 미친 걸 받았네. 어느 부서에서 그런 걸 만들어." "저도 몰라요. 배급받을 때부터 이랬어요." "쓰면 쓸수록 재밌겠는데, 그거." "저는 안 재밌던데요." 선배는 피식 웃더니 손을 거뒀다. "뭐 어쨌든 목숨 건졌으니 됐다. 가자." 장세천 선배를 따라 걷는 동안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 게이트, 왜 열린 거지. 입학식날, 강당 한복판에서. 우연일까? 아니면 학교가 일부러 그런 걸까? 설마 신입생들 테스트용으로 게이트를 강제로 열었다는 건가. 그런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게 정상적인 학교인가.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균열 밖으로 나왔다. 균열 밖은 놀랍게도 다시 그 강당이었다. 공간이 이어져 있던 건지, 아니면 순간이동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강당이었다. 다른 신입생들도 하나둘 돌아와 있었다. 다들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다친 사람도 있었고, 멀찍이 서서 벌벌 떠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옷이 반쯽 찢어진 채로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다리를 절뚝이며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막 빠져나온 몰골들이었다. 연단 위의 사람은 태연하게 서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자, 다들 첫 실습을 무사히 마치셨군요. 이제 반 배정을 발표하겠습니다." 실습? 이게 실습이었다고? 예고도 없이 목숨을 걸게 만든 걸 실습이라고 부르나? 그럼 죽었으면 그건 뭐라고 부르는데. '사고'라고 서류에 한 줄 적고 넘기려나.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이 학교, 겉보기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반 배정은 능력 계급에 따라 나뉘었다. 마력, 기력, 영력, 주력, 요력, 신력. 여섯 개의 능력 계통, 그리고 각 능력의 발현 강도와 실습 점수를 합산한 포인트로 등급이 매겨졌다. 포인트가 높을수록 좋은 반, 낮을수록... 말할 필요도 없었다. 1반이 최상위, 그 아래로 순서대로 내려가는 구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단순하고 냉정한 시스템이었다. "1학년 5반, 이서준." 내 이름이 불렸다. 포인트는 형편없었다. 마력은 무한이지만 이번 실습에서 아무것도 못 썼으니까. 총 한 번도 못 쏜 신입생, 포인트 최하위권. 심지어 방금 목숨을 구해준 것도 다른 사람 덕분이었으니, 점수로 치면 마이너스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주변에서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5반이라고?" "5반이면..." 왜들 저런 반응이지? 5반이 뭐가 문젠데. 설마 급식이 부족한 반인가. "5반 담당 교사는 강선화 선생님입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강당 전체가 순간 조용해졌다. 정적. 마치 누가 스위치를 끈 것 같았다. 방금까지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강선화라고? 하필 걸렸네, 저 신입생." "쟤 이번에 죽을 수도 있겠다." 죽을 수도 있다니. 무슨 뜻이지? 방금까지 딥원한테 죽을 뻔했는데, 이번엔 선생님한테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 이 학교는 대체 위험 요소를 몇 개나 심어놓은 거지.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5반 명단이 붙은 게시판 앞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이미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빨간 머리 여자애가 명단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웃고 있었다. "어, 우리 반 완전 개판이네. 신입생 점수들 다 왜 이래." 경상도 사투리였다.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해서, 방금까지의 무거운 분위기랑은 확실히 결이 달랐다. 그 옆에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애가 명단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엔 얼굴이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묘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쌍둥이인가.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서늘했다. 마치 서로 다른 온도의 공기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 니도 5반이야?" 빨간 머리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네, 이서준입니다." "오채영. 신력. 이번에 12만 찍었다." 12만이라니.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같은 반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나. 포인트가 아니라 격차가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용히 죽고 싶다는 표현을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반응이 늦어지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넌 뭔데 그 정도 점수로 여기 왔냐." 잘생긴 남자애가 명단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말투가 딱딱했다. "마력이 무한이라던데요. 근데 이번엔 못 썼어요." "무한이면서 못 썼다고?" "총이 좀... 특이해서요." 남자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명단으로 눈을 돌렸다. 쌍둥이 쪽은 아직 말이 없었다. 둘 다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마치 관찰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게시판 옆 복도에서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무당 복장을 한 여자였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발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바닥을 밟는 게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 같은 걸음이었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그 사람을 알아보고 슬쩍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는 아예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 강선화. 5반 담당 교사이자, 방금 강당 전체를 조용하게 만든 그 이름. 그녀가 나를 지나치며 잠깐 시선을 던졌다. 눈빛이 서늘했다. 마치 뭔가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딥원한테 쫓길 때보다 더 무서웠다. "5반, 내일부터 시작이다."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녀는 사라졌다. 발소리도 없이, 그림자처럼. 시작이라니. 뭐가? 수업이 시작된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시작된다는 건가. 나는 오채영을 돌아봤다. 오채영도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방금까지의 시원시원한 얼굴이 아니었다. "저 선생님 원래 저래요?" "몰라, 나도 오늘 처음 봤다." "근데 왜 다들 저렇게..." "내도 몰라. 근데 소문은 좀 들었다." "무슨 소문이요?" 오채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아무도 듣지 않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학원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라고 카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 균열 안에서 느꼈던 공포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딥원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니. 그것도 담당 선생님이라니. 설마 내일부터 저 사람 밑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거잖아. 나는 명단에 적힌 내 이름과 '5반'이라는 글자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글자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이거 진짜 무슨 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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