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캠핑 스킬로 씹어먹기로 했다

2화

그날 이후로 세상은 검(劍)과 비검(非劍)으로 나뉘었으니, 본좌는 스스로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조차 헤아리기 힘든 처지가 되었었다. 다음날 아침, 전서구를 통해 쏟아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요란했다. 국가능력관리청이라는 관아가 급조되어, 전 국민에게 능력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본좌는 이를 '무림맹의 재림'이라 여겼다. 『긴급 발표: 전투 등급과 비전투 등급으로 국민을 분류합니다.』 『전투 등급자는 던전 공략에 우선 배치됩니다.』 『비전투 등급자는 지원계열로 재편성됩니다.』 세 줄의 알림이 연달아 쏟아지고 나서야 본좌는 겨우 숨을 골랐다. 관아라는 놈은 어찌 이리도 성급한가. 무릇 등급을 나눔에는 예(禮)가 있어야 하거늘, 이는 그저 숫자 놀음이 아니던가. 뉴스 화면 속 앵커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화면 하단에는 '전투형 스킬 보유자, 헌터로 전환 가능' '비전투형 스킬 보유자, 지원계열 재편 예정'이라는 자막이 쉴 새 없이 흘렀다. 화면 한쪽에서는 검을 휘두르는 젊은 사내의 영상이 반복 재생되었는데, 검신에서 시퍼런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실로 장관이었다. '검기를 다루는 자가 지구에도 나왔단 말인가.' 본좌는 부러움 반, 씁쓸함 반의 감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저 사내에게는 등급이 무엇이 나왔을꼬. 분명 상급이리라. 하늘이 저런 자를 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공평치 못한 일이로다. '본좌는 어느 쪽에 서게 될꼬.'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캠프 설영이라는 스킬은 아무리 봐도 검이 아니었다. 궁도 아니었다. 그저 텐트를 치는 재주였다. 하다못해 불이라도 다루는 재주였다면 원소계라 우겨볼 만도 하였을 것을. 본좌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자취방을 나섰다. 좁은 방 안에는 어제저녁 시스템 알림을 확인하며 벽에 붙여둔 종이 한 장이 나부끼고 있었다. 거기엔 '캠프 설영 - 야영지 조성 및 유지'라 적혀 있었는데, 밤새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그 뜻은 변하지 않았다. 캠퍼스로 향하는 길, 곳곳에 붙은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대 헌터 동아리 신입 모집! 검술/궁술/원소계 스킬 보유자 우대'라는 문구였다. 그 옆에는 작은 글씨로 '지원계열은 별도 문의'라 적혀 있었는데, 그 글씨의 크기가 어찌나 작던지 본좌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야 겨우 읽어낼 수 있었다. '참으로 야박한 세상이로다.' 강의동을 지나는데 학생들 몇이 삼삼오오 모여 손바닥만 한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각기 다른 표정이 떠 있었으니, 어떤 이는 환호했고 어떤 이는 낙담했다. 본좌는 그들의 등급이 무엇일지 짐작하며 지나쳤다. 캠퍼스 벤치에 앉아 홀로 김밥을 먹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민아." 돌아보니 한지은이었다. 오랜 벗이자, 유일하게 본좌를 향해 웃음을 잃지 않는 이였다. 그녀는 손에 커다란 도시락 통을 들고 있었다. "뭐 해, 혼자 밥 먹고." "…아무 일도 아니니라." "또 그 말투. 스트레스받으면 더 심해지네, 너." 지은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도시락 통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계란말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는 정갈하게 담긴 나물무침과 불고기까지, 흡사 잔칫상을 축소해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이는 실로 정성이 담긴 상차림이로다." "어제 스킬 뜨고 나서 계속 요리만 했어. 재밌어서."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나? 조리." "조리라 함은…" "요리 스킬. 근데 좀 특이하대. 유니크래." 지은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본좌의 앞에 내밀었다. "먹어봐. 아까 만들었는데 확실히 전보다 맛있어졌어. 스킬 효과인가봐." 본좌는 젓가락으로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순간 혀끝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계란의 부드러움과 짭짤한 간이 조화를 이루며 입안 가득 퍼지는데, 이는 필시 인간의 손끝에서 나올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이는 무공의 극에 달한 요리로다. 가히 소림의 백년 묵은 장(醬)에 비할 만하도다.' "맛있지?" "…과연. 실로 절정의 손맛이로다." 지은이 씩 웃었다. 그 웃음에 본좌는 잠시 두통을 잊었다. 벤치 옆으로 지나가던 학생 하나가 그 웃음을 보고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본좌는 괜스레 어깨를 곧추세웠다. "너는 뭐 떴어? 아까부터 안 알려주더라." 본좌는 잠시 침묵했다. 이 벗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으되, 입 밖으로 꺼내기엔 부끄러움이 앞섰다. 마치 문파의 절기를 은닉하는 제자처럼, 본좌는 애써 시선을 김밥에 두었다. "…캠프 설영." "캠핑?" "그래. 야영지를 짓는 재주라 하더구나." 지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음이 터질 줄 알았는데,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갸웃했다. "오, 그거 괜찮은데?" "…무엇이 괜찮단 말이냐. 검도 아니고 궁도 아니거늘." "던전 공략할 때 베이스캠프 필요하잖아. 지원계열도 중요해. 나쁘게 생각하지 마." "허나 뉴스에서는 전투형이 우선이라 하지 않았느냐." "우선 배치일 뿐이지, 지원계열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잖아. 걱정하지 마." 그녀의 말은 진심으로 들렸다. 본좌는 잠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한겨울 화롯불 곁에 앉은 듯한 온기였다. 헌데 그 온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은의 전서구가 울렸다. 그녀가 화면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뭐냐." "성진이가… 단톡에 뭐 올렸는데." 본좌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기계를 꺼내 들었다. 이 요망한 물건은 어찌 이리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지, 손에 쥘 때마다 본좌의 두통을 가중시키는 원흉이었다. 화면을 켜니 단체 대화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박성진]: 다들 모여! 던전 공략팀 짜자 [최준혁]: 콜! 검사 궁수 있으니 탱딜은 완성 [박성진]: 힐러나 버퍼 있으면 좋은데... 조리 스킬 지은이 어때? [최준혁]: 오 지은이 좋다 [박성진]: 담주 토요일 학교 앞 던전 가보자. 시간 되는 사람만 [최준혁]: 콜콜 본좌의 손가락이 멈췄다.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위아래로 화면을 밀어보아도,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태민이라는 두 글자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예감이 좋지 않도다.' 마치 문파의 대전(大戰)을 앞두고 명부에서 제 이름이 지워진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본좌는 애써 표정을 다잡았으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지은이 옆에서 본좌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태민아, 나 저기 답장 좀…" "괜찮으니라. 답하여라." 본좌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뒤통수는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지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전서구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했다. 본좌는 김밥을 하나 더 입에 넣었으되, 이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절정의 손맛이라 칭송했던 계란말이조차 그저 씹히는 감촉으로만 다가올 뿐이었다. '검을 쥔 자와 화(火)를 다루는 자, 그리고 요리를 짓는 자까지도 부름을 받았거늘, 야영지를 짓는 재주는 어이하여 부름조차 받지 못하는가.' 본좌는 벤치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저 하늘 아래 어디선가 검기를 뿜어내는 사내도 있을 것이요, 화염을 다스리는 여인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본좌는, 텐트를 치는 재주 하나로 이 넓은 세상 어느 자락에 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지은의 답장이 끝난 듯, 그녀의 전서구가 다시 짧게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녀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왜 그러느냐." "…아니, 아무것도." 그녀는 애써 웃어 보였으되, 그 웃음의 끝자락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굽어 있었다. 본좌는 그 미묘한 낙차를 놓치지 않았다. 필시 무언가가 더 있었으리라. '참으로 불길한 예감이로다.' 본좌는 다시 손바닥만 한 기계를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여전히 본좌의 이름이 빠진 대화방이 떠 있었으니, 그 공백이야말로 본좌가 서 있는 자리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증표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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