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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학교 앞 카페에서 은결을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창가 자리에 앉은 은결이 먼저 보였다. 얼굴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내가 앉자마자 은결이 스마트폰을 내 쪽으로 밀었다. "이거 계속 퍼지고 있어요." 댓글 수가 어느새 천 단위로 늘어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는데 손목이 뻐근했다. 누군가는 내 얼굴을 확대해서 올렸고, 누군가는 다온빌라 위치를 콕 집어 댔다. 지도 캡처 화면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골목 이름, 건물 색깔, 심지어 편의점 위치까지. "이 사람들 뭐예요, 왜 이렇게까지……" 은결이 말끝을 흐렸다. "저희 어떻게 해요." "일단, 계정 신고부터 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고 몇 개로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이미 캡처가 캡처를 낳고, 그 캡처가 또 다른 커뮤니티로 퍼지고 있었다. 불이 옮겨붙는 걸 손으로 끄는 기분이었다. '세상 참 빠르구나.' 머릿속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네가 그놈 하나를 상대하는 사이, 이제는 수천 명이 널 지켜보게 됐다.' "조용히 좀 해요." 작게 중얼거렸더니 은결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저요?" "아,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도움 되는 말은 못 해줘요?" 은결이 스마트폰을 다시 가져가며 물었다. '도움? 도움은 이거다. 이제 넌 숨어서 움직일 수 없다.'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 대신 커피를 한 입 마셨다. 뜨거웠다. 입천장이 데는 느낌이 나서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이 상황에서도 뜨거운 건 뜨거운 거였다. 은결이 테이블 위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니요." 내가 바로 답했다. "저 때문이에요. 문 부수고 들어갈 때 누가 찍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도, 애초에 제가 방송을 시작한 게……." "됐어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말을 끊었다. 은결이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원인을 떠넘기며 시간을 버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최반장이 보낸 자료 파일을 다시 열었다. "이거 봐요." 화면을 은결에게 보여줬다. [한계: 정신적 부하로 연속 유지 3분 이내, 신체 접촉 시 능력 강제 해제 가능성 존재] "이 사람 능력, 삼 분 이상 못 써요. 그리고 접촉하면 풀려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예전에 조사한 자료가 있어서요." 애매하게 넘겼다. 은결이 더 묻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지금 캐물을 정신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다행이었다. 대신 화면을 다시 봤다. "그럼 다음에 또 오면, 삼 분만 버티면 되는 거예요?" "버티는 게 아니라, 붙잡아야 해요. 접촉만 하면 능력이 풀려요." "근데 그 사람, 되게 빠르고, 잡기 힘들었잖아요." 은결의 말이 맞았다. 어제 밤, 나는 거의 운으로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의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뭔가 미끄러운, 잡히지 않는 표면을 붙잡으려던 느낌. 다음엔 운에 맡길 수 없었다.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어떤 방법이요?" "아직 몰라요." 솔직하게 답했더니 은결이 헛웃음을 지었다. "믿음직스럽네요, 진짜." "칭찬으로 들을게요." --- 카페를 나오는데, 몇몇 사람이 우리를 쳐다봤다. 은결의 얼굴을 알아본 건지, 사진 속 얼굴과 대조하는 눈빛이 오갔다. 옆 테이블에 앉은 대학생 둘이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우리 시선이 마주치자 급히 내려놓는 것도 보였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슬쩍 우리 쪽으로 향하는 것도 보였다. "저희, 좀 눈에 띄네요." 은결이 작게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건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아요, 잠깐은." 대답이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익숙해질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익숙해지면 안 되는 종류의 시선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어떤 여자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이미 무언가를 녹화하려는 듯 붉은 점이 떠 있었다. "저기,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저 인터넷 기자예요." 명함을 내밀었다. 받지 않았다. "아니요." 내가 바로 잘랐다. "잠깐이면 되는데. 이능튜브 몰카 사건, 피해자 입장 듣고 싶어서요." "싫습니다." 짧게 답하고 은결의 손을 잡아 옆길로 방향을 틀었다. 손이 닿는 순간, 은결이 잠깐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눈이 동그래져서, 마치 처음 손을 잡힌 사람처럼. "죄송해요, 급해서." "아, 아니요. 괜찮아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뒤에서 기자가 뭔가 더 물으려는 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빨리했다. 은결도 보폭을 맞췄다. 몇 블록쯤 걷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그제야 은결이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진짜 기자예요?" "몰라요. 상관없어요. 어느 쪽이든 우리 얘기 들을 필요 없으니까." "근데 이러면, 인터뷰 거절한 것도 또 캡처될 것 같은데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 다온빌라로 돌아오는 길, 최반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 인터넷에서 난리 났던데. 조심해라.] [뭘 조심해요.] [네가 그놈 하나만 상대하는 줄 알았지?] 그 문장에 발걸음이 멈췄다. 은결이 몇 걸음 앞서 걷다가, 내가 멈춘 걸 알아채고 돌아봤다. "왜요?" "잠깐만요." 손짓으로 은결을 붙잡아두고, 다시 화면을 봤다. [무슨 뜻이에요.]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다. 삼십 초, 일 분, 이 분.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이 쌓였다. 최반장은 원래 답장이 빠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 처음이었다. 한참 뒤, 문자가 하나 더 왔다. [투과, 그놈이 왜 그렇게 안전한지 생각해본 적 있어? 삼 년 전에 우리가 접촉했는데도 왜 아무 조치도 없었는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삼 년 전이라는 숫자가 머리에 콱 박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확히 말해요.] 최반장의 답장은 늦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왔다.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화면을 켜고 꺼졌는지 몰랐다. 은결이 옆에서 뭐라고 물었지만,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다시 얘기해. 전화로는 못 해.] 그 한 줄이 전부였다. '전화로는 못 한다.'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전화로 못 할 이야기가 뭘까. 도청을 걱정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얼굴 보고 말해야 할 만큼 심각한 이야기인가. '뭐가 됐든.' 머릿속 목소리가 낮게 말했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짧은 게 아니지.' 그건 나도 알았다. --- 밤이 되었다. 은결의 방 벽 너머로, 라디오 소리가 낮게 들렸다. 무섭다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나서, 나도 벽 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등에 닿는 벽이 서늘했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능튜브 앱을 열었다. 투과의 계정은 여전히 정지 상태였다. 빨간 배너로 '이용 정지된 계정입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그런데 새 계정이 하나 보였다. 닉네임: 투과2. 프로필 사진도, 이전 계정과 똑같은 필터를 씌운 흐릿한 사진이었다. 구독자는 벌써 삼백 명을 넘겼다. 계정을 새로 만든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방송 예약이 걸려 있었다. 오늘 밤 열한 시. 제목: [진짜 재밌는 거 준비함, 기대해라] 어제 밤 채팅창에서 봤던 그 문장 그대로였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손이 차가워졌다. 계정을 클릭했다. 예고 화면에 흐릿한 배경이 떠 있었다. 다온빌라, 우리 건물의 외벽이었다. 화질이 낮았지만, 옥상 난간의 특유의 페인트 벗겨진 자국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건물이 확실했다. 그 순간, 최반장의 문자가 다시 겹쳐 떠올랐다. '삼 년 전에 우리가 접촉했는데도 왜 아무 조치도 없었는지.' 이건 단순한 몰카범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이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었다. 삼 년이나. 그 시간 동안 이 투과라는 놈은 조용히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뜻이었다. 시계를 봤다. 밤 열 시 사십분. 스무 분 후, 그놈이 다시 이 건물에 나타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준비됐느냐.' 머릿속 목소리가 물었다. "아니요." 솔직하게 답했다. "근데 가야죠." 벽 너머로, 은결의 라디오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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