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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다음 날 아침, 파출소에 다시 갔다. 어제 밤 순찰 강화한다던 그 파출소였다. 문을 열자 히터 냄새와 낡은 종이 냄새가 동시에 밀려왔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 똑같은 책상. 사람만 바뀌어 있었다. 담당 경관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제 사건, 진술서 접수는 됐는데요." 젊은 경관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얼굴에 아직 졸음이 덜 걷힌 게 보였다. 밤샘 근무였겠지. "이능튜브 계정 신고는 저희 쪽에서 사이버수사대로 넘겼고, 거기서 다시 상급 부서로 넘어갈 겁니다." "그게 얼마나 걸려요?" "보통 이 주에서 한 달." 한 달. 나는 그 숫자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경관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을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한 달이면, 그 안에 방송이 몇 번은 더 켜질 시간이다. '예상했잖느냐.' 머릿속 목소리가 말했다. '거기가 원래 그런 곳이다. 절차라는 이름의 지연.' 그 말에 딱히 반박할 게 없었다. 나는 부서에 있을 때도 그 절차를 몇 번이나 우회했었다. 위에서 시키니까. 윗선의 도장 하나면 이 주가 하루로 줄었다. 서류의 순서가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고, 어제까지 안 되던 일이 오늘 갑자기 됐다. 나는 그 마법 같은 절차를 여러 번 목격했다. 다만 그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 지금은 위에서 시키는 사람이 없다. 대신 내가 직접 해야 했다. "저기,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경관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파출소 문을 나서면서 나는 하늘을 한 번 봤다.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괜히 그런 날씨였다. ---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을 켰다. 책상 위에 어제 먹다 남긴 컵라면 용기가 그대로 있었다. 치울 정신도 없었다. 이능튜브. 검색창에 '투과'를 쳤다. 계정은 접속이 차단된 상태였다. 화면에는 "해당 채널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떠 있었다. 계정이 정지된 것인지, 운영자가 직접 내린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에서 계정 하나 지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나는 알았다. 예전 부서에서 사이버 추적 담당이랑 몇 번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이름은 잊었다.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다만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여전히 선명했다. 계정은 지울 수 있어도 흔적은 못 지운다. 캐시 서버, 후원 내역, 팬 커뮤니티. 나는 팬 커뮤니티 쪽을 팠다. 검색어를 몇 개 바꿔가며 커뮤니티 게시판을 뒤졌다. 능력자 관련 잡담 게시판, 이능튜브 다시보기 아카이브, 폐쇄된 채널 모음집. 하나같이 이름도 없이 숫자만 붙은 계정들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투과의 방송을 캡처해서 돌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취향이 특이한 건지, 이런 채널일수록 팬이 꼭 붙어 있다. 댓글에는 이런 말들이 달려 있었다. [이 자식 목소리 왜 이렇게 흥분함ㅋㅋ] [신고당해서 짜증나서 다음 방송 미룬다는데 진짜냐] [이 각도 어디임 아는 사람?] 인간들의 호기심이 이렇게 쓸모 있을 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중 한 클립에서, 화면 구석에 지도 앱이 잠깐 켜져 있는 게 보였다. 확대했다. 흐렸지만, 위치 표시가 있었다. 다온빌라 근처. 지금 은결과 내가 사는 그 동네였다. 숨이 잠깐 막혔다.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돌려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이 근처에서 방송하고 있었단 거네." 중얼거리는데, 목소리가 또 끼어들었다. '그 정도는 나도 봤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저 남자의 습성이지.' "습성이요?" '저놈은 매번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켠다.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그리고 항상 여성 혼자 사는 원룸을 노린다. 벽이 얇은 오래된 건물, 그런 곳들.' 나는 화면을 다시 훑었다. 방송 시작 시간을 하나씩 확인했다. 전부 밤 열한 시대였다. 날짜별로 정리해봤다.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일요일. 규칙이 있었다. 아마 본인 스케줄에 맞춘 거겠지. 낮에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예전 부서 시절, 프로파일링을 배운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강제로 시켜서 배운 거였다. 새벽까지 자료를 붙잡고 앉아서, 반복되는 범죄자의 습성을 읽어내는 훈련. 그때는 이걸 왜 배우나 싶었다. 현장 나가면 몸으로 부딪히는 게 전부인데. 지금 그 훈련이 처음으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나를 내쳤던 그 부서가 준 게,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 뭘 할 것이냐.' "기다려야죠. 다음 방송을." '그 다음엔 또 누군가의 방에 손이 들어갈 텐데.'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다음 방송을 기다린다는 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른 방법 있어요?" '있지.' "뭔데요." '네가 그렇게 애처럼 싫어하는 방법.' 나는 그 대답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최반장. 목소리가 그 이름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딱히 틀린 예상도 아니었다. --- 최반장은 여전히 그 부서에 있었다.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삼 년째. 핸드폰 화면에 그 번호를 띄워놓고, 나는 한참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통화 버튼 하나 누르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인가 싶었다. 전화를 걸기 전, 손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넌 어차피 여기 안 맞아." 그 말이 지금도 목 안쪽에 박혀 있었다. 삼 년이나 지났는데, 잊혀지지도 않고 흐려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신호가 세 번 울리고 받았다. "여보세요." 낮고 건조한 목소리. 삼 년 전과 똑같았다. 살짝 목이 잠긴 것 말고는 변한 게 없었다. "저예요, 강진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화기 너머로 다른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인 모양이었다. 여전히 바쁜 그곳. "……오랜만이네."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이라니, 네가." 비웃음 같은 게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비웃음에 익숙했다. 삼 년 전에도 저 톤으로 몇 번이나 나를 상대했으니까. "'투과'라는 이능튜버, 부서에 자료 있죠?" 다시 침묵. 이번엔 좀 더 길었다. "그건 왜 물어." "제가 아는 사람이 피해자예요." "그래서 뭘 원하는데." "신상, 능력 특성, 예전 전력. 뭐든." 최반장이 낮게 웃었다. "강진우, 넌 나갔잖아. 그런 자료 요청할 자격 없어." 정확한 말이었다.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이제 그 부서의 사람이 아니고, 자료를 요구할 명분도 자격도 없었다. "그럼 넘겨줄 수 있는 사람 알아요?" "……." 대사가 아니라 진짜 침묵이었다. 나는 그 침묵을 기다렸다. 몇 초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체감으로는 훨씬 길었다. 협상이랄 것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뭘 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였으니까.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격도, 명분도, 예전의 소속도. 있는 건 다급함뿐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그걸 알고 있었다. "만나서 얘기해." 최반장이 마침내 말했다. "내일 저녁, 예전 그 자리."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통화가 끝난 게 아니라, 뭔가 다시 시작된 느낌이었다. --- 예전 그 자리. 부서 뒷골목에 있는 국밥집이었다. 최반장이 회의보다 그곳에서 더 많은 지시를 내렸던 곳. 간판도 안 바뀌었을 거다. 주인 할머니도 그대로겠지. 삼 년이면 사람이 바뀔 만한 시간인데, 그 동네는 유독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삼 년 만에 다시 그 문을 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창밖을 보다가 은결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밤도 좀 무서운데, 옆방 계셔요?] 짧은 문장인데, 그 안에 담긴 게 많이 느껴졌다. 나는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저 짧은 한 줄 속에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버텨왔는지가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네,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답장을 보내고 나서, 나는 창밖을 다시 봤다. 빌라 앞 골목에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낡은 배선이라 그런지 몇 초 간격으로 껐다 켜졌다 했다. 그 불빛이 벽에 그림자를 만들었다가 지웠다가 하는 걸, 나는 이유 없이 오래도록 지켜봤다. 밤이 오면 투과가 또 방송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오늘은 화요일도 목요일도 일요일도 아니었다. 규칙대로라면 오늘 밤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그 규칙이 절대적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사람이란 원래 규칙을 어기면서 사는 존재고, 저런 인간일수록 예측을 벗어나는 순간에 더 흥분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 최반장을 만나기 전에, 오늘 밤을 무사히 넘겨야 했다. 하지만 뭔가, 자꾸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서늘함이었다. 감각이라기보다는 예감 같은 거였다. 부서에 있을 때, 이런 느낌이 든 날은 항상 뭔가 터졌었다. 마치 누군가 이 동네를,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창문 커튼을 조금 더 닫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은결의 방과 내 방 사이, 그 얇은 벽 하나가 오늘 밤 유일한 방어선이었다. '그 얇은 걸 믿을 거냐.' 목소리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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