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영매사 하겠습니다

5화

시체.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관리인의 입에서 나온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나는 관리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은 뒤늦게 따라왔다. "기다려요, 도윤씨!" 서린이 뒤따라오며 소리쳤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때렸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로비는 경찰차 불빛으로 붉고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회전하는 사이렌 빛이 유리벽에 반사되면서, 로비 전체가 이상한 색으로 일렁였다. 제복 경찰들이 통제선을 치고 있었다. 노란 테이프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한 명이 나를 막았다. 손바닥이 내 가슴 앞에 딱 붙었다. "관계자예요." "관계자면 신분증 보여주세요."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주민등록증은 지갑 어딘가에 있었지만, 그걸 보여준다고 관계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영매사 명함이 신분증이 될 리도 없고. "저 위에서 죽은 사람이랑 얘기했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간 정신병원행일 뿐이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여보내주세요.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곽윤재였다. 그가 경찰에게 뭔가 카드를 보여줬다. 코팅된 카드에 적힌 글자가 잠깐 눈에 들어왔는데, 정확히 뭐라 쓰여 있는지는 읽을 틈이 없었다. 경찰이 미묘한 표정으로 카드와 곽윤재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통제선을 열었다. "구마원은 경찰이랑도 통하는구나." 나는 곽윤재를 지나치며 낮게 말했다.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정부 쪽에 저희 조직이 등록돼 있어서요." 곽윤재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원래도 표정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턱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게 티가 났다. "피해자, 누군지 압니까." "모르는데. 왜." "오늘 아침, 실종 신고된 여성입니다." 실종된 아내였다. 남자가 우리에게 말했던 그 사람. 그 남자의 축 처진 어깨와, "제 아내를 찾아주세요"라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늦어 있었던 거다. "그럼 남편은." "조사 중입니다. 지금은 참고인 신분입니다." 15층에 올라가자 통제선이 더 촘촘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피 냄새 비슷한 걸 느꼈다는 착각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그냥 소독약 냄새였다. 한미주가 씌었던 그 방, 바로 건너편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한 위치였다. 문 앞에 감식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문틀이 하얗게 빛났다. 서린이 발끝으로 서서 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안 보여요. 사람이 너무 많아." 곽윤재가 낮게 속삭였다. "목이 돌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면으로." 서린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자기 목을 손으로 감싸듯 만졌다. "그거 사람 힘으로는..." "불가능하죠." 곽윤재가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 같았다. "현장에 들어갈 수 있어?" 나는 곽윤재에게 물었다. "제가 부탁하면 가능은 합니다. 왜요." "만져보고 싶은 게 있어서." 곽윤재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 접촉 능력 얘기, 사실이었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곽윤재가 잠시 나를 살피더니, 감식반장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낮았고, 감식반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곽윤재가 다시 뭔가를 말했다. 카드 같은 걸 또 보여줬다. 오 분쯤 걸렸다. 돌아온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삼십 초 드리겠습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 시신 외엔." 방 안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사진을 찍던 플래시도 멈췄고, 감식반원들이 벽 쪽으로 물러나 나를 지켜봤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했다. 나는 숨을 참았다. 바닥에 여자가 누워 있었다. 목이 완전히 뒤로 돌아가 있었다. 얼굴이 등 쪽을 향한 채, 두 눈은 뜨여 있었다. 그 눈이 천장을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자기 등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서린이 문밖에서 눈을 가렸다. "삼십 초입니다." 감식반장이 말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녀의 손목에 닿았다. 차가웠다. 얼음보다는 덜하지만, 사람의 체온이라고 하기엔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순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멈췄어. 어둡다. 방 안, 불이 꺼져 있다. 여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 누구 있어요?" 대답이 없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선다. 발소리가 조심스럽다. 뒤에서 뭔가 다가온다. 형체가 없다. 그냥, 검은 공백 같은 것. 그것이 그녀의 목을 잡는다. 손가락이랄 것도 없다. 그냥 어둠이 목을 감싼다. 비명이 나오려는 순간, 목이 돌아간다. 뚝. 소리는 없다. 대신 정적만 남는다. 여자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그 공백이 말한다. "미안하다. 넌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낮은 목소리다. 창밖에서 들었던, 내 이름을 불렀던 목소리와 같다. 억양도, 말의 속도도 똑같다. "강도윤한테 전해라." 공백이 방을 나서며 말한다. 문이 스스로 열리고, 다시 닫힌다. "동류가 아닌 걸 증명해야, 살려준다고." 손을 뗐다. 숨이 턱 막혔다. 목구멍이 좁아진 것처럼 숨이 잘 안 넘어갔다. 서린이 급하게 다가왔다. "뭘 봤어요? 얼굴이 왜 그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침을 삼키려 했는데 삼킬 게 없었다. "뭐랬어요." 곽윤재가 물었다. 목소리에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 방금 삼십 초가 다 됐는지 감식반이 우리를 밀어냈다. 누군가 "나가주세요" 하고 팔을 잡아 끌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겨우 숨을 골랐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온 것처럼 뛰었다. "그게 나한테 메시지를 남겼어." "뭐라고요." 서린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동류가 아닌 걸 증명하라고." "동류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영혼은 나를 동류로 인식했다. 그건 5년 전 화재 사고 이후로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죽은 사람들도, 원한을 품은 것들도, 나를 만나면 다 똑같이 반응했다. 자기들과 같은 존재를 만난 것처럼. 그런데 저 검은 공백은 정반대로 말했다. 동류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산다고. 말이 안 됐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것과 반대였다. 곽윤재가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의 경계심과는 다른, 뭔가를 확인하려는 시선이었다. "강도윤씨. 방금 그 발언, 우리 원장님이 들으면 아주 흥미로워하실 겁니다." "무슨 뜻인데." "구마원이 오랫동안 찾던 게, 딱 그런 존재였거든요." "뭘 찾았는데." 곽윤재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등을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보고부터 하겠습니다." 말줄임표를 남기고, 그는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서린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저 사람 지금, 도윤씨를 그 뭐시기 존재랑 연결하려는 거 아니에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등 뒤 통제선 너머, 감식반이 시신을 흰 천으로 덮는 소리가 들렸다. 천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귓가에 남았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 비상등이 갑자기 꺼졌다. 탁. 하나씩, 하나씩 불이 꺼져 나갔다. 감식반원 하나가 "뭐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손전등을 켜려는지 부산스럽게 뭔가를 뒤졌다. 서린이 내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바로 위 등이 꺼지기 직전,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강도윤." 바로 등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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