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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한미주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곽윤재는 말없이 사라졌다. 창밖 목소리도 다시 들리지 않았다. 찜찜한 채로 사흘이 지났다. 사흘 동안 나는 그 목소리를 여섯 번쯤 다시 떠올렸다. 잠들기 전에, 라면을 끓이다가, 심지어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도.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신경이 곤두섰다. 사건이 터지는 것보다 조용한 게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이번이 딱 그런 경우였다. "강도윤씨, 오늘 예약 세 건이에요." 서린이 사무실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발가락 사이에 낀 과자 부스러기가 소파 위로 툭툭 떨어졌다. "애기가 이제 접수도 봐주네." "애기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서린이 발가락으로 내 정강이를 툭 찼다. 아프진 않았다.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 얘는 화가 나면 말보다 발이 먼저 나간다. "오늘 세 건이나 있으면 사탕값은 좀 나오겠네." "사탕값이 아니라 월세 걱정을 하셔야죠, 사장님." 첫 손님은 평범했다. 집에서 물건이 자꾸 없어진다는 아주머니였다. 반지, 지갑 속 현금, 얼마 전엔 냉장고에 넣어둔 홍삼액까지 없어졌다고 했다. 목소리에 억울함이 뚝뚝 묻어났다. 나는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럴 때 손가락을 까딱이면 손님들은 뭔가 대단한 걸 보고 있다고 믿는다. 실은 그냥 감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의 팔 할은 감으로 맞힌다. "전생에 도둑맞은 원한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어머, 정말요?" "손자분 방을 확인해보세요." 아주머니의 눈이 커졌다. 이 반응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금 웃는다. 서린이 손님을 배웅하며 낮게 웃었다. "손자가 훔친 거였네요." "뻔하지. 애들이 게임기 산다고 할머니 돈 훔치는 게 어디 어제오늘 얘기야. 홍삼액은 걔가 다 마신 거고." "그건 어떻게 알아요?" "고3인데 학원 끝나고 밤 열두 시에 들어온다며. 그 나이에 그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하겠어. 게임하지." 두 번째 손님은 좀 달랐다. 젊은 남자였는데, 자기 집 냉장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했다. 얼굴이 벌써부터 시체처럼 하얬다. "쿵쿵거려요. 밤마다. 꼭 누가 안에서 두드리는 것 같아요." "녹음해온 거 있어요?" 서린이 물었다. 남자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을 켜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영상을 재생했다. 쿵. 쿵. 쿵.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이거 얼음 만드는 소리 아니에요?" 서린이 무심하게 말했다.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빙기 소리였나 봐요." "확인은 안 해보셨어요?" "무서워서... 냉장고 문을 못 열었어요." 삼만 원짜리 상담이 그렇게 끝났다. 남자가 나가면서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서린이 문을 닫으며 배를 잡고 웃었다. "이건 진짜 웃기다. 제빙기 무서워서 상담 온 거예요." "웃지 마. 저런 손님들 덕분에 우리가 먹고사는 거야." 세 번째 손님이 오기 전, 딸랑, 종이 울렸다. 하지만 손님이 아니었다. 서린이 벌떡 일어났다. 스마트폰이 소파 위로 떨어졌다. "여율님." 방 한가운데, 갑자기 그림자가 뭉쳐 사람 형태를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 어둠을 손으로 뭉쳐 조물조물 빚어낸 것처럼. 키가 크고, 검은 한복 같은 옷을 입은 여자였다. 피부가 창백했고, 눈동자가 은색으로 빛났다. 방 안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간 것 같았다. 실제로 내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여율이었다. 이 동네를 관할하는 신마. "오랜만이네, 강도윤." 여율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저번 그 화재 원혼, 잘 처리했다고 들었다." "저번이 언제인데. 오 년 전 일이야." "나한텐 오 년이 짧아." 여율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마치 처음 보는 곳을 살피듯이. 실은 백 번도 더 왔을 텐데. 서린이 여율 앞에 무릎을 반쯤 꿇었다. 여율이 올 때마다 서린은 저런다. 나는 안 그러는데. "신마님, 요즘 관할 구역에 이상한 게 돌고 있는 거 아세요?" "안다." 여율이 짧게 답했다. "그래서 왔다." "뭔데." 나는 물었다.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영혼도 아니고, 잡귀도 아닌 것." 여율의 눈이 나를 향했다. 은색 눈동자가 나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구마원 부적이 안 먹히는 것." "그건 나도 봤어." "그게 이 동네에서 벌써 세 명을 데려갔다." 서린의 표정이 굳었다. "데려갔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사라졌다. 영혼도 안 남고, 몸도 안 남고." 여율이 손가락을 들었다.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완전히 지워졌다는 뜻이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사무실 밖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만 잠깐 들렸다가 멀어졌다. 나는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뜯지는 않았다. 이런 얘기 들을 땐 손이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구마원은 뭐래." "구마원은 나한테 말을 안 해. 그쪽이랑 나는 사이가 안 좋으니까." 여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비웃음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한테 온 거군." "넌 인간이지만 영혼과 동류로 인식된다. 구마원 쪽 인간들이랑은 결이 다르지." 여율이 나를 똑바로 봤다. "넌 그게 뭘 보고 있을지도 몰라. 다른 사람은 못 보니까." "내가 그 사건을 조사하라는 거야?" "조사가 아니라, 그냥 부딪치면 알게 될 거다." "그거 좀 무책임한 말 아니야?" "난 신마다. 인간에게 친절할 의무는 없다." 여율이 몸을 돌렸다. 그림자가 다시 그녀를 감쌌다. "조심해라. 그건 너를 알아본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남기고 여율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방 안 온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서린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신마님은 항상 저렇게 무섭게 말하고 가요. 좀 힌트를 자세히 주면 안 되나." "익숙해져. 저게 저 사람 스타일이야." 나는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박하 맛이었다. 씹지 않고 그냥 굴렸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이게 도움이 된다. 세 번째 손님이 도착했다. 이번엔 나이 든 남자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셔츠 앞자락이 비뚤게 채워져 있었다. 아마 급하게 나온 모양이었다. "저기, 좀 급한 일인데요." "뭔데요." "제 아내가... 이틀째 실종됐어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서린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신고는 했냐고 물었다. 남자는 했지만 경찰이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했다. 지구대에 가서 신고서를 썼는데, 담당 형사가 '가정불화 아니냐'는 식으로 물었다고 했다. 남자의 눈에 순간 분노가 스쳤다. "그런데 왜 여기로 오셨어요?" 나는 물었다. 영매사 사무실은 실종 사건과 안 맞았다. 이런 손님은 흔치 않았다. "아내가 사라지기 전에 이상한 걸 말했어요." 남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누가 엿듣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무실 안을 한 번 둘러봤다.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른다고. 이 동네에서." 서린과 내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율이 남긴 말이 다시 귀에 울렸다. *넌 그게 뭘 보고 있을지도 몰라.* "부인 사시는 곳이 어디예요?" 나는 물었다. 남자가 주소를 말했다. 그 오피스텔이었다. 한미주가 살던 그 건물.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거기, 최근에 또 이상한 일 있었어요?" "관리인이 그러던데, 요 며칠 사이에 세 세대나 갑자기 이사 나갔대요. 짐도 안 챙기고, 도망치듯 나갔다고." 숫자가 맞았다. 여율이 말한 세 명. 나는 서린을 봤다. 서린도 나를 봤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가보자." 내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를 냈다. 서린이 부적 다발을 챙겼다. 손이 조금 빨랐다. 얘도 긴장한 거다. 남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 우리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니 당연했다. "저기,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일단 같이 가시죠. 상담비는 나중에 받을게요." 건물에 도착했을 때, 관리인이 우리를 막았다. 팔을 뻗어 입구를 가로막는 자세였다. "거긴 지금 못 들어가요." "왜요." "경찰이 통제 중이에요. 15층에서 시체가 나왔대요." 건물 앞에 세워진 경찰차의 붉고 푸른 불빛이 우리 얼굴 위로 번갈아 지나갔다. 서린의 손에서 부적 다발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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