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건물 로비가 어두웠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치직.
전구 하나가 아예 나가버렸는지, 로비 절반이 그늘에 잠겨 있었다. 안내데스크엔 아무도 없었다. 화분은 시들었고, 우편함엔 뜯지도 않은 고지서들이 삐뚜름하게 꽂혀 있었다. 사람이 사는 건물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여기 관리인은 없나."
내가 중얼거렸다.
"관리인도 이사 나갔을걸요."
서린이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후기 보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 세 달 사이에 반이 나갔대요."
곽윤재가 손목에서 종이 부적을 뜯어 허공에 던졌다.
부적이 파랗게 빛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경계막입니다. 뭔가 있어요."
"뭔가 있다는 거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
"...아직은 모릅니다."
곽윤재는 늘 이런 식이었다. 확신이 없으면 입을 다물었다. 구마원 사람들 특유의 신중함인지, 그냥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린이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한미주씨 방, 15층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더 눌러봤지만 그대로였다.
"이것도 그 뭔가 짓인가?"
"글쎄요. 단순 고장일 수도 있죠."
서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잖아요."
우리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층씩 오를 때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숨이 조금씩 막혔다.
3층을 지날 때쯤엔 그냥 계단을 오르는 게 아니라 물속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곽윤재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저 인간은 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로 이 압박을 못 느끼는 건지 궁금해졌다.
"느껴져요?"
서린이 물었다.
"뭔가 있어. 근데 아까 그 아빠 영혼은 아니야."
나는 손끝으로 벽을 짚었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웠다.
사람 손이 아니라 냉동고 표면을 만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겨울에도 없던 온도인데."
서린이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저 지금 반팔인데, 이거 너무하지 않아요?"
"불평은 15층 가서 해."
9층쯤에서 곽윤재가 걸음을 멈췄다.
"...잠깐."
그가 부적 한 장을 다시 꺼내 계단 벽에 붙였다.
파랗게 빛나던 부적이 곧 흐릿해졌다.
"뭐야, 왜 흐려져."
"모르겠습니다. 원래 이 정도 강도면 훨씬 오래 유지되는데."
곽윤재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들렸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15층에 도착했을 때, 복도 끝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엔 다른 방 문패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절반쯤 되는 문 앞에 신문이며 우유 배달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었다. 사람이 안 사는 집들이었다.
곽윤재가 먼저 들어갔다.
나는 뒤따랐다.
방 안엔 젊은 여자가 있었다.
한미주였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벽을 향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 안은 정돈되어 있었지만 커튼이 죄다 닫혀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갔다. 식탁 위엔 밥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며칠은 손도 안 댄 것 같았다.
"미주씨."
내가 불렀다.
반응이 없었다.
"저 사람 지금 접촉 상태예요."
서린이 낮게 말했다.
"뭔가랑 계속 대화하고 있어요."
"뭐라고 하는지 들려?"
"아뇨. 입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안 나요. 이상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시야가 검게 변했다.
그리고 멈췄어.
어둡다.
역광.
누군가의 뒷모습이 서 있다.
한미주의 아버지, 그 형체다.
하지만 뭔가에 붙잡혀 끌려가는 중이다.
사이렌 같은 게 저 멀리서 울린다.
발소리가 다가온다.
그리고 목소리.
"딸한테 가까이 가지 마."
낯선 목소리다.
형체와는 다른 존재다.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손을 뗐다.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저릴 정도였다.
"뭘 봤어요?"
서린이 급하게 물었다.
"딸한테 가까이 가지 말라고 누가 아빠를 끌고 갔어."
"누가요?"
"몰라. 얼굴을 못 봤어."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재생되는 것 같았다.
한미주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눈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오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들렸다.
"아빠가 위험해요. 아빠를 잡아간 게 이 안에 있어요."
곽윤재가 부적을 들었다.
그의 손이 부적 끝을 꽉 쥐고 있었다.
"잠깐."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저건 미주씨 본인 목소리야. 뭔가에 씐 게 아니라, 진짜 자기 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알아요?"
서린이 물었다.
"영혼 목소리는 겹치는 결이 있어. 저건 순수한 인간의 공포야."
"결이 다르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좀 더 자세히."
"...나중에 설명해줄게. 지금은 시간 없어."
나는 한미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주씨. 아빠가 삼 년 전에 돌아가셨죠."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검은 색이 조금씩 걷혔다.
동공이 서서히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걸 지켜보는 건 매번 기묘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아세요."
"아빠 영혼이 우리 사무실에 왔었어요. 미주씨 찾으려고."
한미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빠가... 정말 왔었어요?"
"응. 근데 여기 오는 길에 뭔가한테 끌려갔어. 그게 뭔지 알아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몰라요. 그냥 요즘 이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요. 사람들이 하나씩 이사 나가요."
"어떤 소리요?"
서린이 물었다.
"긁는 소리요. 벽 안쪽에서. 밤마다 조금씩 커져요."
곽윤재가 방을 둘러보며 부적을 벽에 붙였다.
부적이 붙는 순간 파랗게 빛났다가, 갑자기 검게 타올랐다.
치이익.
매캐한 냄새가 순식간에 방 안을 채웠다.
"이거..."
곽윤재가 처음으로 표정을 무너뜨렸다.
"제 부적이 안 통합니다."
"뭐?"
서린이 눈을 크게 떴다.
"구마원 부적이 안 통한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제 부적은 인간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잡귀에 통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건..."
곽윤재가 말을 멈췄다.
말줄임표가 그의 당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건 잡귀가 아닙니다.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나도 손을 뻗어 벽을 짚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도 아니고, 잡귀도 아니고, 그냥 벽이었다.
평범한 시멘트 벽. 근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나도 아무것도 안 느껴져. 근데 방금 여기서 뭔가 빠져나간 느낌이야."
"빠져나갔다고요?"
"응. 우리가 들어온 타이밍에 딱 맞춰서."
그때 방 안의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서린의 숨이 하얗게 나왔다.
"이거 뭐야, 갑자기."
그녀가 팔로 몸을 감쌌다. 나도 순간 이가 딱딱 부딪히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곽윤재가 다시 부적을 꺼냈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 손이 떨리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 인간, 겁먹은 적도 있구나.
창밖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웃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혼 웃음도 아니었다.
뭔가, 처음 듣는 종류의 것이었다.
소리가 낮게 울리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그 끊김이 더 무서웠다.
"강도윤."
창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불렀다.
또렷하게.
"넌 동류가 아니야."
서린이 나를 붙잡았다.
"저거 방금 도윤씨 이름 불렀어요."
그녀의 손이 내 팔을 잡은 채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영혼도 아니고, 잡귀도 아닌 것이, 내 정체를 알아본 것 같았다.
"동류가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야."
내가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 낮은 웃음소리만 다시 한 번 짧게 울렸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미주는 그 사이 정신을 완전히 차렸는지, 바닥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저게 뭐예요. 저게 아빠를 데려간 거예요?"
"아직 몰라요. 근데 확실한 건, 저게 이 건물에 계속 있다는 거예요."
서린이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다독였다.
곽윤재가 낮게 중얼거렸다.
"구마원 원장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뭘 보고할 건데."
내가 물었다.
곽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 눈빛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짙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곽윤재."
내가 다시 불렀다.
"뭘 보고할 거냐고."
그가 부적을 손에 쥔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윤씨에 대해서요."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서린도 고개를 들어 곽윤재를 쳐다봤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저 아래 도시의 불빛들만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너머 어딘가에서, 아직도 그 웃음소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