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탄환은 무공을 모른다

1화

낡은 오피스텔 복도에 발소리가 없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복도 끝 창문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강도현은 문 앞에 섰다. 손목시계가 밤 11시 58분을 가리켰다. 표적은 안에 있었다. 3주 동안 밥 먹듯이 확인한 동선이었다. 몇 층에 사는지, 몇 시에 나가고 몇 시에 들어오는지, 담배는 몇 개비를 피우고 어느 편의점을 이용하는지까지 외웠다. 사람 하나를 지우기 위해 들인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이 새끼 생리 주기까지 알겠다. 문고리를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았다. 이런 걸 보안이라고 걸어놓고 사는 놈이 있나. 허탈한 웃음이 잠깐 스쳤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며칠을 들였는데, 애초에 잠그지도 않았다면 그 시간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소파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자였고, 뒷돈으로 사람 목숨 몇 개를 사고판 이력이 있었다. 의뢰인은 그 목숨 중 하나의 유족이었다. 누구세요.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택배요. 강도현이 대답했다.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시간에 무슨 택배. 남자가 일어서려는 순간 강도현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소음기가 달린 총구가 남자의 이마를 겨눴다. 소포 확인하실 시간입니다.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입술이 뭐라고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강도현은 그 표정을 몇 번이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 비슷했다. 억울함, 부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포. 타앙. 낮고 짧은 파열음이 거실을 채웠다. 남자가 소파 위로 무너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죽은 남자 위로 쏟아졌다. 강도현은 총구를 내리며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11시 59분이었다. 일 분 남았네. 딱 맞췄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장을 정리했다. 지문 하나, 섬유 하나 남기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장갑을 벗지 않은 손으로 소파 위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창문 커튼을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남자가 밟았던 슬리퍼도 똑같은 각도로 맞춰놓았다. 특수부대에서 배운 게 몸에 새겨져 있었다.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쳐주고 사람 지우는 법까지 가르쳐준 조직이었다. 정작 그 조직이 그를 버렸다는 게 아이러니였지만. 뭐 어쩌겠나.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니까. 버린 놈 욕할 시간에 다음 일 받을 궁리를 해야지.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골목을 걸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 습관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다음 일을 받을 수 있었다.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속보] 전 세계 12개 지역, 정체불명의 '균열' 동시 발생. 정부, 긴급 대책본부 가동. 강도현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뭔 소리야 이건. 기사를 넘겨봤다.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검은 구멍 같은 것이었다. 하늘을 찢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가장자리가 일렁이며 빛을 흡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울, 뉴욕, 도쿄, 베이징. 지구 곳곳에 똑같은 균열이 동시에 열렸다는 내용이었다. 군이 접근을 시도했지만 균열 근처에서 이상 증상을 보인 병사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영화 홍보라도 되나. 걸음을 옮기며 계속 스크롤했다.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물리학자는 시공간의 이상 현상이라 했고, 종교학자는 종말의 징조라 했다. 아무도 원인을 몰랐다. 아무도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다들 그럴싸한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결국 아는 척하는 게 직업이구나. 강도현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뭔지는 몰라도 나랑 상관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을 벗어났다.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가 라디오를 켜놓고 있었다. 뉴스 채널이었다. 균열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기사님, 저거 뭐라고 생각하세요. 강도현이 물었다. 딱히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택시 안 침묵이 길어지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몰라요. 나라가 알아서 하겠죠. 기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강도현은 픽 웃었다. 다들 그러시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편의점 불빛, 술 취한 사람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배달 오토바이. 세상이 뒤집힐 조짐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 몸에서 화약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균열 관련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도배되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균열 크기가 커지고 있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몇몇 균열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제보도 있었다. 어떤 목격자는 균열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봤다고 주장했다. 군의 통제선이 확대됐다. 뭔 일이 벌어지긴 하겠구나. 잠이 왔다. 강도현은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몸이 이상했다. 뭔가 조여드는 느낌이 가슴 한복판에서 시작됐다. 숨이 턱 막혔다. 뭐야 이거. 몸을 일으키려는데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방 안 풍경이 사라졌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던 아침 햇살도, 어제 벗어놓은 옷가지도 전부 지워졌다. 대신 허공에 반투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명천(明天) 시스템에 접속되었습니다.] 강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이거 뭔데. [특이 개체 강도현. 계약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허공의 글자가 계속 떠올랐다. 강도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세게 감았다가 다시 떠봤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장난하나. 혼자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봤다. 글자에 손이 닿지 않았다. 홀로그램 같은 것이라기엔 촉감마저 없었다. 손가락이 글자 사이를 그냥 통과했다. 이게 최신 기술인가, 아니면 내가 미친 건가. 뭐가 됐든 일단 반응은 해봐야겠지. 계약이라니, 조건이 뭔데. 말을 던져봤다. 대답이 없었다. 몇 초 뒤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질문은 무시됩니다. 계약은 강제입니다.] 강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완전 갑질이네. 야, 계약이라는 게 원래 쌍방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혼잣말을 던졌지만 시스템은 대답할 필요를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3초 후 전환이 시작됩니다.] 뭐라고. [2] [1] 방 안의 공기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천장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강도현은 침대를 붙잡았다. 손끝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시야가 다시 하얗게 번졌다. 이거 도망갈 데도 없잖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어제 뉴스에서 본 그 구멍, 그거였구나.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