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윤하은.
채널을 새로 팠다.
프로필 사진은 흑발 단발, 병약해 보이는 미소녀 일러스트풍 셀카였다.
닉네임을 정할 때 도현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여동생 이름 좀 빌려 쓰는 거지.
어차피 본인이랑 안 겹치면 그만이었다.
채널 소개란도 채워야 했다.
도현은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다 대충 문장을 완성했다.
[처음 게이트에 도전하는 평범한 여자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평범한 여자는 아니지만, 뭐 어때.
어차피 아무도 모르니까.
첫 방송 예고 문구도 올렸다.
[뒷세계 첫 도전 - 조용히 살아남기]
댓글은 세 개였다.
누구세요.
관심없음.
망한 것 같은데.
도현은 그 댓글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내렸다.
예상은 했다.
댓글 수 세 개, 시청자 수 그보다 적을 게 뻔했다.
뭐, 시작이 늘 이렇지.
도현이 목을 가볍게 풀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잘될 리가 없잖아.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 앞에 앉은 건 도현이 아니라 윤하은이었다.
목소리를 한 톤 높이고 살짝 떨리게 조절했다.
호흡도 얕게, 손끝도 살짝 흔들리게.
안녕하세요, 윤하은입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해요.
많이 무서운데, 그래도 해볼게요.
실시간 시청자 수 4명.
숫자가 좀처럼 늘지 않았다.
3명, 4명, 3명, 4명.
새로고침을 걸어놓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만 움직였다.
도현은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4명이면 4명이지 뭐.
어차피 처음부터 잘될 리가 없잖아.
댓글창에 하나가 더 올라왔다.
힐끔 보이는 척, 목소리 톤은 그대로.
병약한데 왜 게이트 들어가요.
도현은 대답 대신 화면 쪽으로 시선을 살짝 떨궜다.
윤하은답게, 조금 슬픈 척.
살아야 하니까요.
댓글이 잠깐 조용해졌다.
됐다, 이 정도면 그림 나온다.
뒷세계 진입구는 시청 외곽의 낡은 지하철 폐역이었다.
녹슨 셔터 너머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콘크리트 벽엔 곰팡이가 얼룩덜룩했다.
바닥에는 깨진 타일 조각이 굴러다녔다.
[게이트 등록 확인 - 신규 배포자 윤하은]
[던전 무작위 배정 개시]
안내음이 울렸다.
도현은 카메라를 든 채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쿠구구궁.
주변 풍경이 일순 뒤바뀌었다.
돌바닥, 낮은 천장, 습한 공기.
곰팡이 냄새 대신 젖은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 물기가 촥촥 밟혔다.
[등급: 1계위 - 초입 회랑]
[신규 배포자 클래스 지급 - 랜덤 뽑기 진행]
화면에 회전하는 룰렛이 떠올랐다.
전사, 마도사, 궁수, 힐러, 도적 등 여러 아이콘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콘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도현의 눈이 하나씩 훑었다.
전사면 그럭저럭, 마도사면 편하겠고, 궁수도 나쁘지 않고.
뭐 뜰지 몰라도 상관없지.
도현이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클래스 상관없이 다 때려잡을 건데.
딸랑.
[클래스 확정: 저주받은 병약자 - 히든 계열]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같은 문구가 그대로 떠 있었다.
혹시 오류인가 싶어 화면을 두 번 더 눌렀다.
바뀌는 건 없었다.
[클래스 상세]
[모든 기본 스탯 -30% 고정]
[체력 감소 상태 상시 유지]
[특수 조건 미해금]
이거 완전 벌칙 아니냐.
도현이 카메라를 향해 조용히 웃으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와, 이건 진짜 운도 지지리도 없네.
전사도 아니고, 마도사도 아니고, 궁수도 아니고.
하다못해 도적도 아니고.
저주받은 병약자라니.
카메라 밖으로 표정이 안 잡히게 조심했다.
윤하은의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어, 저 클래스가 좀 안 좋게 나왔네요.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요.
댓글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 저런 클래스도 있어.
첫 방송부터 망했네.
병약자면 그냥 나가야 하는 거 아님.
시청자 수가 오히려 3명으로 줄었다.
망한 소리가 절로 나올 만했다.
도현은 댓글을 보며 속으로 되물었다.
이게 진짜 최악인가.
스탯창을 다시 열어봤다.
특수 조건 미해금이라는 문구가 눈에 걸렸다.
조건이 있다는 거잖아.
도현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특수 조건: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전투 승리 시 해금]
뭐야, 이거 죽기 직전까지 몰려야 열리는 거잖아.
도현이 미간을 좁혔다.
미친 조건이네, 진짜.
일반 배포자였다면 이 조건 자체가 사형선고였다.
체력 10%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끝난다.
하지만 동시에 계산이 굴러갔다.
체력 10% 이하는 도현에게 별거 아니었다.
원래 실력으로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충분했다.
이거 오히려 나한테 쉬운 조건인데.
도현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남들한테는 벌칙이고, 나한테는 통행증이고.
이런 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회랑 안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움직였다.
작은 슬라임형 몬스터였다.
1계위에서 나올 법한 최약체였다.
몸통이 젤리처럼 흐물거리며 바닥을 튕겼다.
색깔은 흐린 청록색, 눈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저거부터.
도현이 카메라를 슬라임 쪽으로 돌렸다.
윤하은의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무서운데 한 번 싸워볼게요.
일부러 몸을 웅크리고 뒷걸음질 쳤다.
슬라임이 튀어오르며 덤벼들었다.
퍽.
체력바가 순식간에 깎였다.
90퍼센트, 60퍼센트, 30퍼센트.
댓글창에 반응이 붙었다.
와 저거 그냥 맞아주네.
피하지도 못하나.
저러다 죽는 거 아님.
일부러 맞아준 것도 있었다.
조건을 채워야 했으니까.
한 번 더 튀어오르는 슬라임을 향해 도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체력바가 다시 깎였다.
20퍼센트.
숨소리를 일부러 거칠게 내뱉었다.
카메라 각도는 여전히 윤하은의 얼굴을 벗어나지 않았다.
체력 10%.
[특수 조건 달성 임박]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슬라임이 마지막 돌진을 준비했다.
몸통이 부풀어 오르며 다음 도약을 위한 자세를 잡았다.
도현은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손끝을 가볍게 움직였다.
작고 여린 손짓처럼 보이게, 그러나 정확하게.
손목 각도, 힘의 방향, 타이밍.
전부 계산이 끝난 움직임이었다.
삐빅.
[체력 9% - 특수 조건 충족]
[클래스 해금 진행 중...]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다.
도현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굳었다.
뭔가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