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낡은 격납고 같은 던전 내부.
습기 찬 돌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톡, 톡.
일정한 박자로 떨어지는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실시간 시청자 수 12,004명.
화면 구석에 숫자가 초 단위로 갱신됐다.
12,011.
12,038.
숫자는 쉬지 않고 올라갔다.
검은 여우 가면을 쓴 소년이 지하 통로 끝에 섰다.
활동명 블랙폭스.
본명 이도현, 16세.
뒷세계 최상위 파티 '구여신의 성소'의 다섯 번째 멤버였다.
가면 아래로 숨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3계위 게이트 - 심연의 회랑]
[남은 개체 수: 1]
거대한 촉수형 몬스터가 통로를 가득 메우며 다가왔다.
비린내 섞인 습기가 공기를 채웠다.
몬스터의 눈알 같은 돌기가 벽마다 박혀 꿈틀거렸다.
동료들의 채팅창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저건 리아 언니가 잡아야지.
박강철 아저씨 나와요.
블랙폭스는 원래 뒤에서 마법진 그리는 애 아니었나.
쟤 딜 넣는 거 본 적 있나요.
설마 또 못 잡고 도망가는 거 아님.
도현은 그 채팅을 곁눈으로 읽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시든가.
기대 안 하는 게 편하지.
매번 이 지랄인데 새삼스럽지도 않고.
손끝에서 검은 마력이 뭉쳤다.
공기가 그 주변으로만 무겁게 가라앉았다.
촉수 하나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도현은 반쯤 몸을 틀어 피했다.
발바닥이 돌바닥을 미끄러지듯 스쳤다.
그대로 마력탄을 쏘아 보냈다.
퍽.
괴물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다.
검은 체액이 통로 벽까지 튀었다.
한 방이었다.
채팅창이 잠깐 조용해졌다.
와.
지금 뭐임.
저거 방금 뭐 쓴 거야.
[퀘스트 클리어]
[3계위 게이트 - 심연의 회랑 완전 소탕 확인]
도현은 가면 속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숨 한 번 크게 고르지도 않았다.
동료들이 뒤늦게 뛰어왔다.
발소리가 통로 안에 겹겹이 울렸다.
뭐야, 혼자 다 먹었네.
장서윤이 금발 롤머리를 흔들며 투덜댔다.
치마 자락에 먼지가 앉은 걸 신경도 안 쓰는 얼굴이었다.
원래 저래요, 저 새끼.
강리아가 이마의 헤어밴드를 매만지며 말했다.
말투는 무심했지만 시선은 계속 도현을 향했다.
박강철은 아무 말 없이 상의를 벗었다.
근육이 조명 아래 번쩍였다.
관객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박강철 갓강철.
오늘도 근육이 다 해결했다.
저 몸 보면 딜 안 봐도 믿음직.
도현은 그 반응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 먹은 건 난데.
박수는 아저씨가 받네.
이래서 노출이 스킬보다 낫다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카메라 드론이 박강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도현은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렌즈를 돌리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좁은 복도를 지나자 낡은 소파 하나가 놓인 방이 나왔다.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가면을 벗지 않은 채로 목을 뒤로 젖혔다.
이한결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은발에 안경, 실제 시력은 5.0이었다.
장식용 안경이었다.
문을 발로 밀어 닫는 습관까지 여전했다.
오늘 조회수 나쁘지 않네.
한결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쉬지 않았다.
제가 잡은 건데요.
도현이 가면을 벗으며 대꾸했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눈가에 붙어 있었다.
알아. 그런데 화면에 안 잡혔잖아.
한결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말투에 별다른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인기투표 발표 있는 거 알지.
한결이 이어서 말했다.
알아요. 몰랐으면 이상하죠.
도현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코웃음에 가까웠다.
그때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 속보 자막이 떴다.
삐빅. 삐빅.
[속보] 전국 게이트 이상현상 동시 확대 관측
[뒷세계 배포자 등급전, 정부 주도 확대 편성 확정]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장서윤이 입을 벌린 채 화면을 쳐다봤다.
태블릿을 만지던 손도 멈춰 있었다.
저게 뭐예요.
서윤이 물었다.
목소리가 살짝 높았다.
게이트가 전국적으로 커진다는 소린가.
강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헤어밴드를 만지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도현은 팔짱을 끼고 화면을 봤다.
표정이 굳었다.
가면을 벗은 얼굴 위로 조명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이거 시작이네.
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뭐가 시작이야.
한결이 노트북에서 눈을 떼며 물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살짝 섞였다.
이제부터 배포자들 등급 다 갈아엎일 거예요.
지금 상위권 자리 다 흔들릴 텐데.
도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남 얘기하듯 무심한 어조였다.
한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건 또 무슨 뜬소리야.
네가 예언자냐.
예언자는 아니고, 그냥 감이죠.
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감으로 저런 소리가 나와?
서윤이 끼어들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우리 순위 유지하는 것부터 챙겨.
인기투표 삼십 분 남았어.
한결이 대화를 잘라버렸다.
노트북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손짓이 단호했다.
도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되물었다.
안 믿을 거면서 왜 물어보나.
이제 와서 이럴 거면.
정말 다 뒤집히면 그때 후회나 안 했으면 좋겠는데.
대기실 문이 다시 열렸다.
쿵.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강리아가 태블릿을 들고 들어왔다.
투표 마감 십 분 전이에요.
순위 실시간 확인되네요.
리아가 화면을 돌려 보였다.
1위 강리아.
2위 이한결.
3위 박강철.
4위 장서윤.
5위 블랙폭스.
숫자가 실시간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표를 던질 때마다 그래프가 조금씩 움직였다.
도현은 자기 이름 옆의 숫자를 봤다.
다른 넷과 격차가 확연했다.
자릿수 하나가 통째로 차이 났다.
또 꼴찌네.
도현이 피식 웃었다.
익숙한 결과라는 듯 태연했다.
웃을 때가 아닌데.
리아가 무심하게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태블릿 모서리를 두드렸다.
왜, 이번엔 진짜 뭐 있어?
도현이 되물었다.
목소리 끝이 살짝 올라갔다.
리아는 대답 없이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한번 물었다가 다시 뗐다.
그 침묵이 뭔가 이상했다.
한결도 노트북에서 시선을 뗀 채 리아를 봤다.
서윤 역시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방 안에 이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삐리릭.
[구여신의 성소 인기투표 최종 결과 발표 5분 전]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떠올랐다.
숫자가 299, 298, 297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현의 손가락이 무릎을 두드렸다.
느낌이 안 좋았다.
아까부터 계속 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