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4급 던전은 서울 외곽 그린벨트 한복판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를 외친 곳은, 지도상으로는 분명 논밭이었는데 실제로는 거대한 철제 게이트가 떡하니 서 있었다.
입구부터 규모가 확실히 달랐다.
펜스도 두 겹이었고, 공단 직원 수도 열 명은 넘었다.
게다가 다들 방탄복 같은 걸 걸치고 있었는데, 그냥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각 잡고 무전기까지 들고 있었다.
동네 마트 개업식이랑은 급이 다른 분위기였다.
"이도진 씨, 이쪽으로 오세요."
젊은 담당관이 나를 안내했다.
명찰을 보니 이름이 '박○○'인데, 성만 겨우 읽히고 이름은 코팅이 벗겨져서 안 보였다.
공무원 명찰 관리도 예산이 부족한가 보다.
방탄복 입은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걸 보니 살짝 긴장이 됐다.
살짝, 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별로 긴장 안 됐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정보로만 판단하면 좀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내 심장박동은 평소 라면 끓일 때랑 비슷했다.
"오늘은 저희 팀 세 명이랑 같이 중층까지만 동행하고, 재평가는 거기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담당관이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말투가 딱딱했다.
군대에서 훈련받다 온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방송은 켜도 되나요?"
내 질문에 담당관이 잠깐 멈췄다.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보는 그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예? 아, 네, 규정상 문제는 없습니다."
담당관이 잠깐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정지 시간 동안, 나는 저 사람 머릿속에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지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 표정은 참 솔직하다.
나는 카메라를 세팅하고 방송을 켰다.
[갑자기 방송 켜짐]
[뭔가 심상치 않은데]
[뒤에 사람들 뭐임 공단 사람들?]
채팅창에 벌써 시청자가 3천 명을 넘어가 있었다.
채널이 언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다.
어제까지만 해도 슬라임 요리 브이로그 찍고 있었는데.
[재평가 시험 보러 왔습니다.]
짧게 자막을 올렸다.
[진짜 재평가 받는거임?]
[개기대됨]
[요리 유튜버가 재평가라니 뭔 소리야]
[아니 진짜 저 사람 국가 등급 시험 보러 온 거 맞음?]
댓글들이 빠르게 올라오는 걸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어차피 몇 시간 뒤엔 다들 알게 될 거다.
저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예상 못 했으니까.
*
중층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형광 이끼도 없었고, 공기 자체가 무겁게 눌러 붙었다.
습도가 갑자기 확 오른 느낌이랄까, 마치 목욕탕 탈의실 들어갈 때처럼 축축한 공기가 얼굴에 착 붙었다.
몬스터 밀도가 높다더니, 걸음마다 뭔가가 튀어나왔다.
담당관이 손짓으로 대열을 조정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위험 구간입니다. 다들 긴장하세요."
뒤따르던 직원 하나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나는 속으로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슬라임 젤리로 냉채 말고 뭐 다른 걸 해볼까, 하는.
첫 놈은 늑대 무리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계속 늘어나 열 마리 가까이 됐다.
어둠 속에서 눈알 열 쌍이 동시에 번쩍이는 광경은 확실히 그림이 됐다.
시청자들 반응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았다.
[늑대형 무리 몬스터 - 중급 등급, 무리 사냥, 다수 접근 시 위험도 상승]
시스템 안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읽는 순간, 나는 저게 무슨 배달앱 리뷰창 같다고 생각했다.
'무리 사냥, 다수 접근 시 위험도 상승' — 이거 완전 '리뷰 다수, 배달 시 신중하게' 같은 문구잖아.
동행한 공단 직원들이 즉시 전투 대형을 갖췄다.
방패를 앞세우고, 그 뒤로 창을 든 인원이 서고, 마지막으로 담당관이 후방 지원 자세를 취했다.
군대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그 진형이었다.
"이도진 씨, 뒤로 빠지세요! 저희가 처리합니다!"
그 말을 듣긴 했는데, 늑대 한 마리가 이미 내 옆구리를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럴 리가.
뒤로 빠질 시간이 없었다.
저 늑대는 지금 내 반응 속도를 시험해보려는 게 분명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뭘 판단하기도 전에 허리가 돌고, 마체테가 허공을 갈랐다.
촤아아아악!
한 번의 궤적에 늑대 세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마치 종이를 자르는 소리처럼 깔끔했다.
남은 늑대들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얘들도 나름 판단이란 걸 하는 모양이다.
촥! 촥! 촥!
연속으로 세 번의 참격이 이어졌다.
각각 다른 방향에서 달려든 늑대들이 하나씩 정확히 갈라졌다.
공단 직원들은 무기를 든 채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방패를 앞세운 직원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마지막 늑대가 도망치려는 순간, 나는 발을 앞으로 밀며 몸을 낮췄다.
도망치는 놈을 그냥 보내주면 재평가 시험에서 감점당할 것 같았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촤아아아아악!
허리에서부터 시작된 회전이 마체테 끝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거리도 각도도 완벽했다.
마지막 늑대가 그대로 두 조각이 나며 쓰러졌다.
정적이 흘렀다.
[...............]
[뭐 지금 이거 몇 마리를 몇 초에]
[다시보기 각. 슬로우로 다시 봐야 함]
[담당관 표정 봐라 완전 굳음ㅋㅋㅋ]
[아니 저거 무슨 검술 애니에서 나올 법한 동작 아니냐]
[방금 프레임 끊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저렇게 빠른거임??]
채팅창은 이미 폭발한 지 오래였다.
동시 시청자가 갑자기 만 명을 넘겼다는 알림이 떴다.
알림 소리가 계속 울려서 나중에는 알림을 무음으로 바꿔놨다.
나는 마체테를 툭툭 털며 숨을 골랐다.
딱히 힘든 느낌은 없었다.
그냥 매일 하던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오히려 아침에 도마에 파 써는 것보다 덜 힘들었다.
"저... 이도진 씨."
담당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딱딱하던 말투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이거, 지금 이 동작 다 본인이 직접 훈련하신 겁니까?"
"아뇨. 그냥 됐어요."
짧고 무심한 대답이었지만, 담당관의 얼굴은 더 하얘졌다.
옆에 있던 직원 하나는 아예 마스크 밑으로 입을 벌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로또 당첨 번호 확인하다가 숫자 하나 놓친 사람 같았다.
"방금 그건 국가지정 전문 탐사자 최상위 등급 기준에서도 흔치 않은 동작이었습니다."
담당관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어 말했다.
"저희끼리는 저걸 '거합 참격형'이라고 부르는데, 등록된 사례가 전국에 열 손가락 안입니다."
거합 참격형.
처음 듣는 명칭이었다.
이름은 되게 멋있는데, 정작 방금 내가 한 건 그냥 몸이 알아서 움직인 결과라는 게 좀 부끄러웠다.
"그게 뭔데요?"
"검을 뽑는 그 한 번의 동작에 모든 힘을 집중해서 여러 대상을 동시에 절단하는 방식입니다. 훈련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영역이라, 보통은 특수 적성으로 분류됩니다."
특수 적성.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단어였다.
아마 어릴 때 학교 적성검사에서 '요식업 종사자 적합'이라는 결과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요리사가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검사 항목이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담당관의 시선이 슬쩍 내 왼쪽 귀로 향했다.
루비 귀걸이가 그 자리에서 은은하게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담당관은 뭔가 말하려다 멈추고, 다시 삼켰다.
저 반응, 뭔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저 귀걸이, 혹시 무슨 아이템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그냥 예쁘길래 산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예쁘길래 산 게 아니라 던전에서 주웠지만, 대충 비슷한 맥락이니까 괜찮다.
담당관은 내 대답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더 캐묻지도 않았다.
공무원의 미덕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일단... 오늘 재평가는 통과입니다. 등급은 상부에 보고해서 다시 조정될 예정이고요."
[상부 보고]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그냥 '보고'라고만 했으면 됐을 텐데, 앞에 '상부'가 붙으니까 갑자기 뭔가 대단한 서류철에 내 이름이 적히는 느낌이었다.
공무원들 용어 선택 센스는 확실히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
그날 방송 클립은 몇 시간 만에 SOOP 인기 영상 상위권을 전부 장악했다.
댓글 중 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다.
[저 방금 그 던전 클립 보고 옴. 이 정도면 국가급 인재 아니냐]
[이 사람 진짜 요리 유튜버인거 맞아?]
[검술 학원에서 사부한테 사사받은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담당관 반응 보니까 진짜 저 정도가 흔한 일이 아닌가봄]
[나만 저 늑대들 순삭당하는 거 다시 봤냐]
나는 방송을 종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함보다는 뭔가 이상한 예감이 더 강하게 들었다.
담당관의 표정, 상부 보고라는 말, 그리고 귀걸이를 쳐다보던 그 눈빛까지.
전부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데, 그걸 맞춰보면 그림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옷도 안 갈아입고 소파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천장을 보고 있으니까 오늘 벌어진 일들이 순서대로 재생됐다.
늑대 열 마리, 거합 참격형, 담당관 얼굴이 하얘지던 순간까지.
남들 눈엔 대단해 보였겠지만, 나한테는 그냥 손이 먼저 나간 일일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국가던전관리공단 발신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이도진 님, 등급 재조정 및 특수 적성 확인을 위해 공단 본청 출석을 요청드립니다. 출석 일시는 별도 안내드리겠습니다.]
출석 요청.
국가기관이 이렇게 정색하고 사람을 부르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평소엔 우편함에 세금 고지서나 오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급이 달랐다.
뭐지, 이거.
좋은 예감은 아니었다.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특수 적성 확인'이라는 문구가 자꾸 눈에 밟혔다.
확인이라는 게, 결과가 좋으면 그냥 통보로 끝날 텐데 굳이 사람을 오라고 부르는 걸 보면 뭔가 더 복잡한 절차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슬라임 젤리 냉채를 꺼내 그냥 한 입 먹었다.
지금은 배가 고픈 때였으니까.
불안하다고 밥을 굶으면 그게 더 손해다.
젤리를 씹으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엔 문자가 아니었다.
발신자 표시가 뜨지 않는 부재중 전화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걸려오는 그 전화를 보면서, 나는 오늘 하루도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